1985년 11월 남극 바닷속을 탐사하고 나온 이동화(오른쪽)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

- 강풍·눈보라 속 체감온도 -20도
- 생리현상도 텐트 안에서 해결
- 수중 생명체 조사하러 다이빙
- 바닷 물속은 그야말로 얼음장
- 36일간 탐험 마치고 귀국길 올라

1985년 11월 16일, C130 허큘리스 수송기는 남극 킹조지 섬의 칠레 마쉬기지 활주로에 미끄러지듯 착륙했다. 한국남극관측탐험대와 남극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눈 덮인 광활한 얼음 땅, 그 위에 한국 사람들이 발을 딛고 섰다. 오랜 기다림 끝에 코끝이 찡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사진을 담당한 나는 제일 먼저 비행기에서 내렸다. 공식적인 한국인 남극탐험대 방문 1호가 된 셈이다. 남극의 싸늘한 공기가 폐부를 찔러 왔다. 거대한 냉동 창고에 들어간 기분이랄까.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남극 땅을 밟자마자 나는 내 발등 사진을 찍었다. 대한민국 탐험대 최초로 남극 땅을 밟은 발, 그걸 증거로 남길 속셈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일행은 돔형 텐트 6개와 식량 등의 짐을 나눠 들었다. 칠레기지로부터 추천받은 숙영지 중 5㎞ 정도 떨어진 곳을 택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호된 남극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남극은 추위보다 바람이 무서운 땅이다. 초속 30m의 블리자드에 눈보라까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영하 5도의 날씨라도 바람이 불면 금세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로 떨어졌다.

　대원들이 애써 친 돔형텐트 6개 중 2개가 간밤에 매섭게 몰아친 블리자드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4개의 텐트, 그 비좁은 곳에서 생활해야 했다. 물론 추위 때문에 생리현상도 텐트 안에서 해결했다. 텐트 바닥 밑에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다 용변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다음 텐트 바닥 천을 다시 덮었다. 그나마 냄새가 나지 않은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금방 냉동이 되니 그런 것이다.

　탐사는 계획대로 두 팀으로 나눴다. 총 17명의 남극탐사 대원 중 빈슨매시프 등반팀은 모두 7명. 허욱 등반부대장, 권오한, 이찬영, 허정식, 김진원 대원과 보도기자 2명이 포함됐다. 홍석하 대장의 탐사팀은 장순근, 최효, 오기세, 나, 홍재욱, 김희경, 김재철, 김동완으로 이뤄졌다. 남극기지의 타당성 조사가 주임무로 맡겨졌다.

남극에서 이동화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

　윤석순 단장과 홍 대장은 미리 만들어 간 페넌트를 가지고 킹조지 섬의 각국 기지를 방문했다. 칠레 마쉬기지, 동독기지, 중국 장성기지, 러시아기지 등등…. 이에는 미수교국까지 포함됐다. 친선 방문이었지만 정보는 꼼꼼하게 기록했다. 각 나라의 기지운용 방식과 그들이 연구하는 분야 등 무엇이든 챙겼다. 이 기록이 토대가 돼 3년 뒤 세종기지가 탄생했다. 등반팀은 해발 4897m의 빈슨산을 정복하는 코스였다. 산악인들로 구성된 등반팀은 혹한과 고산증, 불면증을 이겨내고 세계 6번째로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에 올랐다.

　수중 탐사는 내 몫이었다. 남극 바닷속 생명체를 조사하고 샘플을 채취하는 일이었지만 생명을 건 탐사였다. 나름 스킨스쿠버 다이빙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극지 다이빙은 경험이 없었다.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 주의할 점이 무언지 정보가 전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남극해를 탐사한 미국인 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당시에는 드라이 슈트가 없었다. 그래서 후커시스템이라 불리는 장비를 착용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일종의 머구리와 흡사했다. 미국인 톰은 물속에서 십여 분 견디다가 나가자는 수신호를 하며 물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한 번 잠수에 40분20초을 견뎌냈다. 미국인 톰도 혀를 내둘렀다.

　남극의 바닷속은 상상 이상이었다. 정말 차가웠다. 세 차례나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용기가 아니라 위험천만한 만용이었다. 남극의 바닷속에는 생면부지의 남극 물고기와 생물, 원시 그대로의 무성한 바다 숲이 있었다. 탐험대 깃발을 수중에 꽂고 촬영을 하면서 기록을 남겼다. 우리가 이곳을 다녀갔노라는 증거였다.

　동행했던 해양연구소의 최효 박사는 기상 관측기를 설치하고 기후 관측을 시작했다. 지질학자 장순근 박사는 주변을 다니며 암석을 채취했다. 관측탐험대는 이렇게 산과 바다 등을 샅샅이 뒤졌다. 전방위의 탐사는 민간 주도의 남극관측탐험에 대한 국제공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국제공인은 우리나라가 남극조약에 가입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1986년 11월 28일 세계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했다. 2년 뒤인 1988년에 마침내 세종기지를 세울 수 있었다.

　탐사 한 달이 가까워지자 식량과 부식이 떨어지고 말았다. 나름 준비를 했지만 경험이 부족했고, 준비도 완벽할 수는 없었다. 여러 부분에서 미흡함이 드러났다. 그중에서 가장 예측이 크게 빗나간 게 바로 식량과 부식 문제였다. 어쩌겠는가. 우리는 칠레기지에 가서 돈을 주고 겨우 식량과 부식을 조달할 수 있었다.

남극탐험 기념 남극우체국 소인.

　남극관측탐험팀은 각자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기념으로 국내에서 미리 준비한 우리나라 남극우체국 소인이 찍힌 남극 탐험 기념엽서를 전 세계 남극 관계자에게 발송했다. 이 기념엽서는 남극에 오기 전에 체신청을 설득해 만들었다. 남극우체국장을 새로 임명하고 국가 소인까지 받았다. 이 소인은 현재 우정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우리가 남극 땅을 밟은 것이 늦었지만 그래도 기회가 있음을 발견했다.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우리의 몫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된 것은 큰 성과였다. 남극탐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남극 기지를 빨리 세워야 한다는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지를 어디에 세울 것인가 하는 새로운 숙제를 들고 왔다.

　36일간의 탐험이 끝이 났다. 현지를 떠나면서 남극의 그 순수함이 내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언젠가는 다시 오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 이런 다짐이 실현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