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화(수송기 앞 왼쪽)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가 1985년 11월 16일 C130 허큘리스 수송기를 타고 남극 킹조지섬 칠레 마쉬기지에 내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남극에 미친 부산사나이, 이동화(56). 그는 1985년 11월 16일 한국남극관측탐험대원으로 C130 허큘리스 수송기를 타고 눈 덮인 남극 킹조지섬에 가장 먼저 내렸다. 탐험대에서 사진 촬영과 수중 탐사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게 평생 남극과 인연이 됐다. 그는 부산에서 남경엔지니어링토건을 운영하면서 남극 세종과학기지 부두와 장보고과학기지 건설에 참여했다. 남경(南京)이라는 회사 이름도 남극의 수도라는 뜻. 본지는 이 대표의 남극 도전기와 못다 한 이야기를 매주 한 차례 연재한다.

- 사전지식도 없이 무턱대고 결정
- 남극정보 무지에 황당제안 속출
- 자료 수집에만도 꼬박 2년 걸려
- 노숙 훈련하다 간첩 오인받기도

- 남극기지 건설을 위한 기초조사
- 박태준·정주영 회장이 거금 쾌척
- 전두환 전 대통령도 곧바로 허가
- 1985년 11월 드디어 장도 올라

27세의 혈기왕성했던 1983년,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해양소년단연맹 지도자로 활동했다.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줄 모험 거리를 찾는 것이 나의 관심사였다. 무인도 탐험과 낙동강 뗏목탐사는 9번이나 했다. 국내에서 더 새로운 도전 거리를 찾기가 힘들어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에베레스트 등 히말라야 유수의 고봉을 차례로 정복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산악인이 죽음을 무릅쓰고 감행한 고산 정복기는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나는 고산 등정에 흥미를 갖지 못했다. 이미 남들이 한 일이기 때문이다. 해양소년단연맹은 산악인에게 새로운 탐험대상을 자문했다. '사람과 산' 발행인 홍석하 대표, 코오롱 등산학교 허욱 교장, 허정식, 이찬영 씨 등이 그들이다. 지금은 각 분야 원로가 됐고, 일부는 유명을 달리했다.

탐험 대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얘기는 아마존 밀림에서부터 안데스 산맥을 넘어 전 지구를 넘나들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인이 된 김현리 해양소년단연맹 사무총장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남극'이라는 단어, 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문제는 남극 탐험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곳을 어떻게 청소년을 이끌고 가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청소년 대신 해양소년단연맹 지도자, 산악인과 함께 도전하는 것. 돌이켜보면 이 결정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다. 세종기지, 장보고기지 등 남극에 관한 모든 것의 단초가 됐다.

대상이 정해지자 자료조사에 들어갔다. 당시 남극에 관한 정보라 해봐야 백과사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황당한 제안이 난무했다. "남극으로 나가는 오징어잡이 원양어선을 이용하자. 고무보트로 상륙했다가 원양어선이 귀국할 때 같이 돌아오면 되지 않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설사 고무보트로 상륙했다 치자. 날씨가 나빠 오징어배가 제때 오지 못하면 그냥 사지로 떨어진다. 남극해협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낙하산으로 뛰어내리자는 안까지 나왔다. 그러면 돌아올 땐 어떡하고? 정보가 그만큼 부족했다.

좌충우돌 끝에 미국의 극지전문가이드 회사를 알게 됐다. 이 회사를 통해 비로소 제대로 된 극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2년 뒤 남극으로 떠나기까지 주고받은 팩스는 상자 몇 개가 될 만큼 방대했다. 준비물을 챙기고 유사시 대처방안을 세웠다. 지금은 뉴질랜드나 호주를 거치는 코스가 이용된다. 당시 그걸 몰라 미국을 거쳐 칠레 푼타아레나스에 도착, 남극으로 들어가는 보급품 수송기를 이용했다.

후원자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탐사계획을 알리고 협조를 부탁했다.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고 많은 산을 놔두고 하필 펭귄만 사는 남극이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래도 신선해 보였는지 탐험계획을 보도해 주었다. 뜻이 있으면 길은 열리게 마련. 보도를 본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해양소년단연맹 윤석순 총재(현 극지진흥회 회장)를 청와대로 불렀다. 윤 총재는 남극 탐험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검토해 보겠다는 대통령의 답변이 떨어졌다.

이후 자금 문제가 술술 풀렸다.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과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거금을 쾌척했다. 돈이 모이자 그야말로 순풍에 돛이었다. MBC가 기자 4명을 특파하겠다고 나섰다. 극지연구소의 전신인 한국과학기술원 산하 해양연구소 장순근, 최효 두 명의 과학자도 동행하기로 했다.

훈련은 1년가량 걸렸다. 여름에 국도나 시골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서울~부산을 도보로 오가다가 지치면 어디서든 잠을 청했다. 풍찬노숙이었다. 행색이 그러하니 영락없는 간첩 모양새였다. 당연히 간첩 신고로 여러 번 조사를 받았다. 취재진 4명을 포함해 총 17명으로 탐험대가 꾸려졌다. 주된 임무는 남극기지 건설을 위한 기초조사. 남극 최고봉 빈슨산 정복과 남극 수중 해양생물 조사가 덧붙여졌다.

준비를 마치고 정부에 탐험허가서를 제출했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힘든 시절. 결재 순서를 마냥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마음을 졸였지만 기우였다. 윤석순 탐험대 단장이 직접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최고통수권자 단 한 사람의 사인으로 허가서를 손에 쥐었다. 1985년 11월,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