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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부산고용노동청 고용센터에서 50대 구직자들이 구직 상담을 하고 있다. 홍영현 기자 hongyh@kookje.co.kr |
- 퇴직금으로 아파트 대출 청산
- 연금 받아도 생활비 조달 막막
- 자영업 3년 이내 휴·폐업 다반사
- 노동자 91% "계속 일하고 싶다"
- 노후준비 여력 없어 '그림의 떡'
- 퇴직연금 활성화·시장 확대 지적
- 저소득층 개인연금 보조금을
내년에 정년퇴직하는 백모(54) 씨는 요즘 밥맛을 잃었다. 불안한 노후 때문이다. 퇴직 후 그가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수입은 월 29만 원의 개인연금 뿐이다. 그는 그래서 국민연금 조기수령 신청을 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57세가 되는 2017부터 미리 받을 수 있다. 정상적으로 하면 62세부터 연금을 받게 되나 지급시기를 5년 앞당기는 것이다.
연금을 5년 조기수령할 경우 연금액이 연 6%(월 0.5%)씩 총 30% 삭감된다. 이렇게 해서 그가 받게 될 연금은 월 84만 원. 정상수령액(120만 원)보다 36만 원이 적다. 백 씨의 수명을 80세로 가정하면(현재 한국인 평균 수명은 79.5세) 총 2억4192만 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정상수령액(총 2억7360만 원)과 3168만 원의 차이가 난다. 불이익은 이 뿐만이 아니다. 조기수령 도중 필요경비를 제외한 사업소득과 근로소득, 임대소득의 합산액이 월 198만 원(2014년 기준) 이상 생기면 연금 지급이 정지된다. 또 조기수령하고 있는 상태에서 발생한 장애에 대해선 장애연금을 받을 수 없다.
백 씨가 이 같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연금을 조기수령하려는 것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개인연금에다 조기수령할 국민연금을 합쳐도 그의 예상수입은 월 113만 원에 불과하다. 반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2명의 교육비를 포함한 생활비로 현재 매달 들어가는 돈은 300만 원가량. 지금 시점으로 계산해도 월 187만 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국민연금을 조기수령할 3년 후면 자녀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물가도 올라 적자가 늘어날 게 뻔하다. 은퇴 후 다른 일자리를 구하거나 자영업을 해 돈을 벌더라도 적자를 메우기 어렵다. 게다가 자영업을 하다 실패하면 쪽박을 차기 십상이다. 로또 당첨과 같은 아주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는 은퇴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퇴직금으로 아파트 구입 융자금 등 빚을 갚고, 집을 지금보다 작은 평형으로 줄여 아이들 교육비를 마련할 예정"이라면서 "그러나 생활비는 어떻게 조달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베이비 부머, 은퇴 준비 취약
백 씨처럼 6·25 이후 출산 붐이 일던 시기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의 다수가 은퇴빈곤층으로 추락할 위기에 처했다. '정년 60세 연장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1960년생까지는 더욱 위태롭다. 정년을 55세로 잡을 경우 1955~1960년생 베이비 부머들은 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는 시기(61~62세)까지 6~7년의 소득공백기를 갖게 된다. '60세 정년' 적용을 받는 1961~1963년생 베이비 부머들도 63세에 연금을 받게 돼 퇴직 후 3년의 소득공백기를 피할 수 없다. 국민연금 조기수령 신청자가 속출하는 이유다.
베이비 부머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건 소득공백기에 자녀 대학 학자금과 결혼자금 등으로 목돈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 같은 문제는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지난해 도시지역 거주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50대의 경우 현재 또는 장래에 가장 불안하게 생각되는 요인으로 자녀 교육·진로·결혼을 1순위로 꼽은데서도 드러난다. 이 연구소의 박지승 수석연구원은 "이 때문에 베이비 부머들은 자신을 위한 노후자금을 별도로 준비하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같은 조사에서 50대 응답자의 53.4%가 은퇴 후 경제생활 수준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반면, 실제 준비 정도는 100점 만점에 47.5점으로 아주 취약한 수준이었다.
이런 현실은 베이비 부머들을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50대 임금노동자 중에서 이직 경험이 없는 500명을 대상으로 퇴직 후에도 계속 일하고 싶은지를 조사한 결과, 91%가 그렇다고 답한데 반해 완전 은퇴하고 싶다고 밝힌 사람은 5.5%에 불과했다고 박 연구원은 전했다. 실제 지난해 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고령화와 고용정책 보고서'에 우리나라의 실질은퇴연령은 남성 71.4세, 여성 69.9세로 멕시코(남성 71.5세, 여성 70.1세)와 더불어 조사대상국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수가 은퇴빈곤층으로 전락
하지만 50대 장년층을 위한 일자리가 크게 부족한 데다 일자리를 찾더라도 고용상태가 불안정해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 현재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2.7%로, OECD 회원국 평균치인 15.8%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특히 퇴직 후 자영업에 투신한 사람 중 절반은 3년 이내에 문을 닫는 등 생존비율이 25%로 매우 낮다. 이런 퇴직자들은 은퇴빈곤층 수준을 넘어 극빈층으로 급전직하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베이비 부머들의 은퇴 준비를 돕는 다양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박 연구원은 "베이비 부머들이 퇴직금을 한꺼번에 소진하지 않고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제도를 활성화하고 퇴직연금시장을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2005년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면서 연금의 3층 보장체계(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를 갖추었지만 실제 세 연금 모두에 든 사람은 적기 때문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최성민 연구원은 "개인연금 가입자는 중·고소득층에 집중돼 있다"면서 "저소득층도 개인연금에 가입해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조금 지급 등의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국민연금 신규 수령액 은퇴 전 소득 18.1% 그쳐
- 국제기구 권고 30% 크게 미달, 사적연금 강화 소득대체율 제고
우리나라 정년퇴직자들이 은퇴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낮은 연금 소득대체율 때문이다. 연금 소득대체율은 은퇴 전 소득 대비 은퇴 후 받는 연금 수령액의 대체 수준을 파악하는 지표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국제노동기구 등 주요 국제기구에서는 70~80% 수준의 연금 소득대체율을 권고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들의 평균 연금 소득대체율은 63.6%로, 이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연금 소득대체율은 OECD 평균치를 훨씬 밑돈다. OECD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연금 소득대체율은 42.1%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최성민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연금 3층 보장체계의 틀은 갖추고 있지만 연금 소득대체율이 국제기구 권고치의 절반 수준에 머무는 등 보장기능이 매우 취약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3층 보장체계 가운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국제기구 권고수준(30%)에 많이 뒤진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 신규 수급자의 소득대체율은 18.1%이며, 오는 2020년 21.2%, 2030년 23.2%, 2040년 22.3%, 2050년 21.7%로 오르내리다 2060년에는 21.5%로 떨어질 전망이다.
퇴직연금 역시 선진국에 비해 도입시기가 늦어 초보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퇴직연금에 의한 소득대체율은 35년 가입 기준으로 12.5%로, 국제기구 권고수준(30%)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개인연금의 가구당 가입률도 2007년부터 평균 20% 수준으로 정체돼 있는 상태다. 특히 연금저축의 10년 후 가입 유지율은 52.4%로, 개인연금을 노후자금으로 활용하는 비율이 저조한 실정이다.
최 연구원은 "OECD 회원국들을 보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이 상호 대체재로 작용하며, 사적연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이기 위해선 사적연금 활성화를 통한 내실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