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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빈곤' 벼랑에 선 50대 <상> 은퇴 늦추기 사활 건 사람들

기댈언덕은 연금뿐 그마저 쥐꼬리… '정년 연장'엔 기업들 냉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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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부산 연제구 연산동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사에서 한 연금 가입자가 연금 수령에 관해 상담하고 있다. 홍영현 기자 hongyh@kookje.co.kr
- 부산, 타지역보다 불황 타격 커
- 교육비·부모 봉양으로 적자인생
- 회사 그만두면 생계마저 막막

- 비정규직 법·제도마저 차별대우
- 용역업체 바뀌면 근로조건 추락

- 지역 124개사 '정년지원금' 활용
- 비중 0.11%… 임금피크제 갈등

부산 A사에 재직 중인 조모(57) 씨는 요즘 걱정이 태산 같다. 올해 정년을 맞지만 은퇴 준비는 고사하고 퇴직 후 생활비조차 마련하기 힘든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만 원 남짓한 월급을 받아 고교 2학년과 대학 3학년생 자녀 2명의 교육비에 장모까지 봉양하느라 매달 적자를 쌓아가고 있다. 불어난 빚이 현재 1500만 원에 이르는 데다 4000만 원짜리 전세방에서 지내는 등 남의 집을 전전하고 있다. 정년퇴직하면 자녀들의 상급학교 진학은 물론 생계마저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직 기댈 수 있는 구석은 국민연금인데, 그 또한 불입기간이 짧은 데다 불입액도 적어 현행 국민연금법상 수령연령(62세) 전해까지 연금을 붓더라도 수령액이 45만 원에 불과하다. 그는 "현재 하루하루 살기도 어렵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더 암담해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 씨의 직장 동료들도 비슷한 처지다. 그는 "동료들의 대다수가 빚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며 "희망 없는 인생들"이라고 말했다. A사 노동자들은 최근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정년 연장 등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A사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직종에 따라 55세와 57세로 정해진 정년을 일괄적으로 65세로 연장하는 협상안을 사측에 제시할 예정이다. A사 노조위원장은 "정년이 연장되지 않으면 퇴직 후 길거리에 나앉을 동료가 대다수"라며 "정년 연장을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정년 연장, 올 임단협 주요 현안

오는 2016년(노동자 300명 이상 기업)과 2017년(노동자 300명 미만 기업) 단계적으로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고령자고용촉진법)'이 지난해 4월 제정됐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불황의 타격을 더 많이 받은 부산의 노동자들에겐 '기다리기에 너무 먼 미래'다. 지역 기업들이 지난 수년간 경영난을 이유로 인력 충원을 기피해 노동자들이 고령화하면서 '60세 정년' 시행 전에 퇴직하는 사람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부산지역 기업들의 임단협에서 정년 연장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부각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다. 한진중공업노동조합(2노조)에 따르면 2011년 1370명에 달했던 노동자 수가 구조조정 사태를 거치면서 현재 780명으로 줄었다. 이 가운데 60% 이상이 50대로 올해 70여 명, 내년에 120여 명이 정년(57세)퇴직한다고 노조는 전했다. 김외욱 2노조위원장은 "지난 5년간 충원을 안 하는 바람에 노동인력의 고령화가 심화됐다"며 "정년을 60세로 조기 연장하는 문제가 올해 우리 회사 임단협의 최대 현안"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예 '정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정년 60세 의무화'는 정규직에만 해당되는 '남의 일'인 까닭이다.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어 안정된 고용을 보장하는 '정년'이란 말은 '꿈의 단어'다. 대표적으로 용역업체에 고용된 청소 노동자들에게서 이런 '파리 목숨' 노동인생을 여실히 목격할 수 있다. 원청업체에 노동자를 공급하는 용역업체가 바뀌면 하루아침에 근로조건이 추락하기 일쑤다. 지난해 3월 용역업체가 교체된 뒤 정년이 2년 줄면서 10여 명이 해고돼 한동안 갈등을 빚었던 동의대 청소 노동자들이 그 한 예다. 신라대 청소 노동자들도 최근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근로조건이 개악되자 대학과 새 용역업체에 직접 고용 및 기존 단체협약안 유지를 요구하며 학내 사범대 건물 6층 옥상에서 농성 중이다.

■'정년 60세' 비정규직은 남의 일

   
55세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전환에서도 배제된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비정규직으로 2년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6가지의 예외 조항이 있다. 고령자고용촉진법상 '고령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그 하나인데, 이 법 시행령(대통령령)에 명기된 고령자의 연령이 55세 이상이다.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이국석 위원장은 "비정규직 자체가 비참한 신세이지만 그중에서도 비정규직 고령자의 설움은 더 크다"면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어 노동인력도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데 법과 제도는 이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정년 연장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냉랭한 편이다. 정년을 폐지하거나 60세 이상으로 1년 이상 연장한 사업주에게 해당 노동자 1인당 월 30만 원씩 1, 2년간 지원하는 '정년연장지원금' 제도 시행 실태에서 잘 드러난다. 부산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정년연장지원금을 받고 있는 부산지역 기업이 2011년 44곳에서 지난해 124곳으로 약 3배로 늘어났지만 전체 기업 수(고용보험 가입업체 기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0.11%로 미미한 수준이다. 게다가 노동계 등의 반대로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에 '임금피크제 시행'을 명시하지 않았는데도 정부는 관련 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사용자에 편중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재하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장은 "임금피크제는 꼭짓점 나이를 언제로 할 것인지, 임금삭감률을 연령별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가 쟁점인데 사용자가 이 제도를 인건비 절감에 유리한 방향으로 적용하려 하기 때문에 임금피크제에 반대한다"면서 "관련 법에도 없는 제도 시행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김윤태 고령사회인력정책과장은 "이 제도는 2006년부터 시행해 오던 것이며, 관련 법에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해명했다.


# 지역기업 정년 평균 57.9세…57세 이하 41.2%

- 獨 등 선진국 65세 이상 의무화
- 美·英 특수직종만 나이 제한
- 국민연금 수령·퇴직 일치시켜야

부산지역 기업의 평균 정년은 57.9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년이 57세 이하인 기업도 41.2%에 이르는 등 상당수를 차지했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첫 실시한 정년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60세가 조사대상 245개사 중 75개사(31.3%)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55세로 62개사(25.8%)였다. 이어 58세 47개사(19.6%), 57세 25개사(10.4%), 56세 12개사(5%) 등의 순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기업 현장의 실제 정년은 이번에 조사된 평균 정년보다 훨씬 짧은 53세(인구주택총조사 기준)다. 구조조정 등 설정된 정년을 '무늬'로 만드는 변수가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일본은 1998년 자국 내 모든 기업의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했다. 당시 93.3%의 기업체가 이미 '60세 정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일본은 더 나아가 지난해부터 정년을 65세로 늘렸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현재 정년이 각각 67세와 66세이며, 덴마크는 최근 정년을 67세로 연장했다. 호주는 현행 67세인 정년을 70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는 항공기 조종사 등 일부 특수직종을 제외하고는 아예 정년이 없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나이로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민주노총은 올해 임단협에 앞서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기본 방침을 정했다.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지급연령이 65세로 늘어나는 우리 현실과 일치시켜 소득공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 유장현 교육선전부장은 "이 방침 아래 올해 임단협에서 정년을 최소한 60세로 조기연장하도록 사용자들에게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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