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자택 인근 골목에서 동양채권 CP 피해자모임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뉴시스

　#1. 50대 가정주부 조모씨는 동양증권에서 가입한 CMA 통장을 재발급 받으라는 연락을 받고 가까운 지점을 방문했다. 조씨는 영업 PB로부터 단 한 번도 원금과 이자가 밀린 적 없는 좋은 상품이 있다며 기업어음 가입을 권유받았다. 대학생 두 자녀의 학자금이라 망설였지만 재계 50위권 안에 드는 건실한 기업이니 안심하고 맡겨도 된다고 해 3개월간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동양인터내셔녈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한푼 두푼 아껴 모은 목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조씨는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절망하며 누구에게 하소연 해야하냐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2. 익명을 요구한 한 30대 여성은 여유자금 1000만 원을 들고 동양증권을 찾았다. 곧 퇴직을 앞두고 있어 여유자금을 불려 아이들 학원비에 보태볼까하는 생각에 돈을 넣었다. 그녀는 가입당시 "그저 믿고 맡겨도 되는 좋은 상품",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손해날 일이 없는 상품"이라는 PB 추천만 믿고 회사채를 샀다. "대기업이 설마 망하겠느냐며 투자를 적극 권유하는 직원 말만 철썩같이 믿고 가입했는데 몇개월 만에 알토란같은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분통을 떠뜨렸다. 더욱이 자기가 투자한 돈이 동양그룹 부실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이용됐다는 사실에 더 분노했다.

이번에도 결국 개미들만 피눈물을 쏟았다. 지난 2일 동양증권 여의도지점은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에 투자했다 돈을 날린 개인투자자들의 아우성으로 가득찼다. 실패로 끝난 '이 위험한 베팅'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는 모두 5만명에 육박한다. 쪽박 개미들이 9일엔 금융감독원으로 몰려가 "금감원이 제대로 관리·감독업무를 하지 않아 피해규모를 더 키웠다"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완전 판매에 따른 피해를 보상받기는 어렵다. 이미 LIG그룹·웅진그룹·STX그룹 등에서 반복된 부실채권 피해가 또다시 반복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예방책은 없는 것일까? 결국 '깐깐하고 똑똑한 투자자'가 되어야만 돈을 벌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 "단 석달만 투자해도 7~8% 금리 준다" 달콤한 유혹
CP는 기업이 자금조달을 하기위해 주로 3~6개월 만기로 발행하는 단기채권이다. 이사회 승인을 받지 않고 발행할 수 있으며 발행 한도도 없다. 동네 문방구에서 약속어음 용지를 구입해 대표이사 도장만 찍으면 마음대로 발행할 수 있다는 의미로 '문방구 어음'으로 불릴 정도다.

회사채 역시 기업이 직접 돈을 구하려고 발행하는 채권이다. 보통 만기는 1~3년이고 증권사의 실사를 받아야 하는 등 CP에 비해서는 발행이 까다롭다.

회사채와 CP 모두 기본적으로 시중 은행권보다 단기간에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주목받았다. 동양그룹이 발행한 채권의 99% 이상이 개미 투자자에게 팔린것은 역시 이 같은 금리의 유혹때문이다. 동양증권은 부실 징후가 보이는 계열사가 발행한 채권을 7~8% 후반대의 고금리를 내세워 시중자금을 흡수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기본적으로 고수익을 약속하는 만큼 분명 위험이 수반되는 상품이다. 이번 동양 사태로 피해를 본 대부분의 개인들 역시 '신용등급이 낮아질수록 금리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동양'이라는 간판에 대한 막연한 신뢰와 8%대 고금리 보장이라는 감언이설에 솔깃해 묻지마 투자를 했다가 낭패를 보게 됐다. 더욱이 회사채나 CP는 예금자보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돈을 모두 날릴 수도 있다.



■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형광펜 표시 부분 사인했다 날벼락　
한 경제신문이 보도한 '동양레저 CP 편입자산 상품설명서'를 보면 맨 위쪽 편입자산 항목에 '(주)동양레저 기업어음 증권[신용등급 B-↓(투기등급) / 고위험]이라고 적혀있다. 투자 유의사항에는 '신용등급이 B에서 B-등급으로 떨어졌으며…지속적인 당기순손실이 발생해 자본총계는 -3233억 원…완전자본잠식 상태임으로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임'이라고 돼있다. 그 아래에는 '본인은 기업어음증권을 취득함에 따라 발생할수 있는 위험에 대해 설명을 들어 상품특성과 위험요소 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동 기업어음증권 취득에 동의합니다'라고 돼 있다.

이어 직접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쓰고 서명하는 난이 마련돼 있다. 결국 이 상품설명서에 사인하는 순간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다. 서류상으론 완벽하기 때문에 판매회사에 아무런 법적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동양그룹 회사채와 CP를 구입한 개인 투자자들은 대부분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노인이나 주부였다. 증권사 직원이 "형광펜 표시된 곳에 이름을 적고 서명만 하면 된다"는 말을 믿고 아무 생각없이 사인한 것이다. 꼼꼼하게 읽어봤다면 이 무시무시한 상품 투자를 포기했을 것이다.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는 상당수는 이같은 설명서를 본적이 없다거나 창구에서 제대로 읽어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상품 설명서에 '고위험'이라고 뚜렷이 명시돼 있고 피해자 대부분이 직접 서명했다면 불안전판매로 인정받을수 있는 길이 사실상 없다. 결국 현명한 투자자가 되려면 수능 공부하듯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모르는 내용은 끊임없이 질문해 스스로 리스크를 줄였어야 한다.



박상협 동부증권 PB는 "많은 개인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법정관리까지 가지 않고 워크아웃 선에서 끝나면 투자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서 문제가 비롯된 것"이라며 "통합도산법에 따르면 기업의 경영자인 총수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경영권을 지키는데 유리해진다. 이러한 법적문제를 알지 못하는 개인투자자들이 증권사 직원의 얘기만 믿고 투자했기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 신용등급 과신도 금물…CP·회사채 몰빵은 거덜의 지름길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회사채와 CP투자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신용등급이라며 "무조건 높은 표면금리만 좇을 것이 아니라 신용등급을 잘 살펴서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박 PB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신용평가사는 회사가 공시하는 재무제표만을 기준으로 신용등급을 매기기 때문에 재무제표에 오류가 있다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개인들은 이 신용등급에 따라 투자를 하게 되는데 사실상 이는 개인투자자를 위한 등급이 아닌 기업의 신용도와 안정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금회수가 가능한지의 여부를 따지는 지표여서 이 자료만 보고 투자를 했다가는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신용평가사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또 AAA 등급 기업의 회사채의 경우 은행이자율보다 실질이자율이 낮아 굳이 투자할 명분이 없다.

박 PB는 회사채와 CP에 안정적으로 투자하기 위해서는 "시장 상황에 따라 지속해서 신용등급이 바뀌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지켜봐야 하고 회수율 분석, 부외부채(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부채), PF(프로젝트파이낸싱)대출 확인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회사와 관계된 CP와 회사채의 만기가 많이 몰린 시기엔 투자를 피하라고 조언했다.

신한금융 투자 관계자 역시 "투자하려는 기업의 신용등급, 향후 유동성 위험 여부, 실적악화 여부, 보증기관의 보증 여부 등을 두루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면서 "CP나 회사채에 여유자금 전액을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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