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부산 동래구 온천동 한 아파트 발코니 난간대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여전히 에어컨을 가동하는 가정이 많아 전기요금 걱정이 늘고 있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 새 전기료 체계도 허점

- 누진제 6→3단계로 축소 땐
- 월 사용량 200㎾h 이하 가구
- 평균요금 상승 … 재검토해야

# 산업용 특혜 줄여야

- 전체 사용량 58% 달하지만
- 가격은 주택용 82%에 불과
- 이제는 요금 인상도 고려를

8월분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든 부산지역 가정에서 누진제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우려했던 전기요금 폭탄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정부가 다음 달 중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전기요금 개편에서 불합리한 누진제를 반드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기요금이 꾸준히 오르는 동안 누진제는 주택용 요금에만 적용돼왔다. 누진제는 1973년 1차 석유 파동(오일쇼크)을 계기로 산업체의 생산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가정의 전기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현행 누진제는 전기 사용이 많고 적음에 따라 ㎾h 당 요금차이가 최대 11.7배나 되면서 서민 가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에어컨을 하루 1~2시간 켰다고 해서 한 달 전 요금보다 2~3배나 더 요금을 내야 해 수긍하기 어렵다는 비난을 받았다. 현행 전기요금 누진제 구간 설정도 시대착오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경제 수준 향상과 에어컨 보급 확대 등 국민 1인당 전기 다소비 시대에 맞지 않다. 가령 에어컨을 조금만 틀어도 평소 전기요금의 2~3배 요금 폭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여름, 겨울이면 전기요금 논란이 일고 있지만 정부와 한국전력은 개편하겠다는 입장만 밝힐 뿐 이해관계가 첨예한 만큼 실제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데다 이달 들어서도 여름 날씨가 이어지면서 전기요금 개편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도 힘을 보태면서 새누리당 에너지특별위원회는 지난달 전기요금 개편안을 발표했다. 새누리당 에너지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전기요금 개편안에 따르면 현재 6단계인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3단계로 축소된다. 소비자의 62%가 몰려 있는 월 사용량 200~600㎾h 구간에는 단일 요율을 적용한다. 당정은 현행 6단계에서 1단계 200㎾h 이하, 2단계 200㎾h 초과 600㎾h 이하, 3단계 600㎾h 초과 등 3단계로 개편하기로 했다. 200㎾h 초과 600㎾h 이하 구간에 대해서는 단일 요율을 적용함으로써 중산층 가구 전기요금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다. 당정은 3단계 중에서도 900㎾h 이상의 전기를 사용하는 고소득층 가구에 대해서는 전기요금 부담을 지금보다 크게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87%의 대다수 국민이 몰려 있으며 소비가 많은 200~600㎾h구간에 단일 요율을 적용해 서민들에게 더 많은 전기요금을 걷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면서 "전기를 아껴 쓴 서민은 전기료 부담이 커지고 전기를 펑펑 쓴 가구는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달 전기 사용량이 200㎾h 이하인 1인 가구, 저소득층은 누진제 개편 이후 전기요금이 오히려 오를 전망이다. 현행 요금체계에서는 1, 2단계 구간 요금이 각각 ㎾h당 59.1원, 122.6원이지만 두 구간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요금이 122.6원 선으로 통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에너지 과소비 억제 차원에서 전기를 많이 쓸수록 부담이 늘어나도록 한 누진제 취지와도 어긋난다. 또 새누리당이 전체 전력 사용량의 절반을 넘는 산업용 전기의 요금은 그대로 놔두고 주택용 전기요금 단계만 손을 본다는 데 대해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산업용 전기 판매단가는 주택용의 82% 수준(주택용 112.61원/㎾h, 산업용 92.83원/㎾h)으로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을 쓰고 있다. 또 산업용 전력 사용량은 58%로 주택용(14.59%)의 4배나 된다.

전문가들은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안을 제대로 손보고 산업용 전기요금도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산 경실련 차진구 사무처장은 "전기요금 체계개편은 여러 차례 추진됐지만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산업용은 놔두고 중산층과 서민 부담을 증가시키는 개편안은 향후 다시 손질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