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샐러리맨의 신화'인 강덕수(63·사진) STX그룹 회장이 결국 쓸쓸히 퇴장하게 됐다.
STX조선해양 이사회가 9일 박동혁 대우조선해양 부사장과 류정형 STX조선 부사장(조선소장)을 새 이사로 선임하기로 의결하면서 강덕수 현 대표이사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강 회장의 퇴장으로 국내 재계순위 20위 내 대기업 중 창업 1세대 기업은 하나도 없게 됐다.
강 회장은 이날 이사회에서 "경영상의 책임을 지고 채권단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사임했다.
지난 5일 경영진추천위원회가 만장일치로 박동혁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추천했을 때도 강 회장은 그룹 정상화에 대한 굳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채권단은 같은 날 STX계열사인 포스텍에 대한 지원을 계속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긴급회의를 소집해 강 회장을 압박했다. 포스텍은 STX 지배구조에서 최정점에 있으며 강 회장이 지분 87%를 가진 대주주인 만큼 퇴장 결심을 굳히게 했다.
이로써 강 회장의 샐러리맨 신화도 막을 내리게 됐다. 강 회장은 1973년 쌍용양회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30여 년간 쌍용그룹 회사원의 길을 걷다 쌍용중공업 재무책임자(CFO)까지 올랐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쌍용중공업이 매물로 나오자 강 회장은 사재를 털어 인수,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후 2001년 사명을 STX로 바꾸고 대표가 됐다.
이후 강 회장은 2001년 현 STX조선해양인 대동조선 인수를 시작으로 지속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확장했다. 2002년엔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를 끌어들인 데 이어 범양상선(현 STX팬오션·2004년), 아커야즈(현 STX유럽·2007년)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또한 STX엔파코(현 STX중공업), STX건설, STX다롄 등을 창업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2001년 2605억 원에 불과했던 그룹 매출액은 지난해 18조8300억 원으로 증가하며 10년 만에 급성장했다. 재계순위도 13위에 올랐다.
하지만 2008년 전 세계를 덮친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이 위축되고 조선업까지 어려워지면서 그룹 전체에 유동성 위기가 닥쳐왔다. STX그룹의 위기는 지난해부터 이야기돼오다 지난 3월 초 STX팬오션 공개매각 추진과 함께 수면으로 떠올랐다. STX팬오션과 STX건설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상태가 됐고, 지주사인 ㈜STX를 비롯해 조선해양, 중공업, 엔진, 포스텍은 사실상 모두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다.
한때 M&A의 귀재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강 회장도 결국 '승자 저주의 덫'에 걸려들면서 경영무대에서 쓸쓸히 사라지게 된 셈이다. 조선업계는 강 회장의 퇴진으로 STX그룹의 해체가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