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가운데)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 기재부, 나홀로 '고난의 행군'

"재정, 금융정책, 부동산 정책이 정책조합의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8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금융안정을 위해서도 여러 정책 당국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이다."(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같은 날 '거시건전성과 통화정책' 국제세미나에서)

지난 8일의 이 같은 발언들은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금리인하 압박에 김중수 한은총재가 화답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에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는 11일 이전부터 이번에는 금리가 인하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이 높았다. 경기부양을 위해 17조 원 규모의 추경예산안까지 편성하고 나선 정부는 그동안 이번 달에 기준금리를 인하해줄 것을 기대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압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김 총재는 이날 금통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외부의 금리인하 압박이 금리결정에 중요 변수가 안 됐다"고 단언하면서도 "서로 정책 시차도 다르고 정책을 선택하는 시기가 다를 수 있겠지만 같은 방향으로 간다는 면에서 정책조화는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기획재정부에 이어 이날 한은도 경제전망 수정치를 발표하면서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경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같지만 이에 대한 해법을 내놓으면서 정부와 한은의 '정책공조' 인식차이가 크다는 것이 금통위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소식이 전해지자, 기재부에선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의 침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 조직은 한 배를 타야하는데 국민들에게 불협화음을 빚는 것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현 부총리는 이날 '직원 편지'에서 "경제란 게 자로 재고 저울로 달기 힘들다 보니 기관마다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정부 내에서는 상황인식이 일치해야 추진동력이 생긴다"고 밝혔다. 취임 3주를 맞아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글이지만 한은의 금리동결에 대한 섭섭함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한은의 엇박자 공조로 인해 막대한 추경 지출을 한 뒤에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정부와 한은 간의 책임공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총재는 이에 대해서는 "한은의 판단에 대해 절대로 우리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통화정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득과 실을 비교해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제 한은의 지원사격 없이 경기부양을 위한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한다. 한은은 이번 금리동결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과시했지만 정부와 한은 간 '찰떡공조'는 기대할 수 없게 돼 향후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