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위기 선진국 '제로 금리'
- 이자율 높은 한국 등 돈 몰려
- 대기업 환율부담 전가 우려
- 지역 車부품 업체 등 초긴장
선진국의 양적완화 정책에 풍부해진 글로벌 유동성이 한국 외환시장을 강타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13개월 만에 1100원 선을 무너뜨리며 본격적인 '원화 강세' 시대로 접어들었다. 국제적인 경기 침체와 국내 경기둔화 속에서 환율 하락은 수출은 물론 내수에도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율 왜 하락하나
'심리적 마지노선'인 1100원이 무너진 원·달러 환율은 1090원 선마저 위협하고 있다. 30일 원·달러 환율은 1091.5원에 장을 마감했다. 전거래일보다 4.3원 떨어졌다.
원화 절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중국 위안·달러 환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는 등 아시아 주요국 통화가 동반강세를 보이고 있다. 선진국이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통화정책 완화에 나선 영향이 가장 크다. 이렇게 풍부해진 달러의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금리 프리미엄'이 높아진 아시아 신흥국가로 몰렸다. 사실상 제로금리인 선진국과 달리 중국 6.00%, 한국 2.75%, 대만 1.88%, 태국 2.75% 등으로 아시아 금리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원·달러 환율은 세계 주요국 통화 중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이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 탓도 있다. 수출 비중이 크다 보니 세계 경제상황이나 환율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면 변동 폭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수출뿐 아니라 내수도 악영향
환율 하락은 무엇보다 경제성장의 견인차인 수출에 타격을 줘 그대로 경제성장에 악재로 작용한다.
한국은행은 2010년 내부 자료에서 환율이 10% 하락하면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4%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이 내놓은 우리나라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3.2%)가 들어맞는다고 가정하면 환율이 1100원 안팎에서 1000원 아래로 내려가면 성장률은 2%대로 주저앉는다.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 경쟁력은 떨어지나 내수에는 도움이 된다'는 전통적 공식도 흔들리고 있다. 대체로 환율이 내려가면 수입물가를 낮추고 소비자 물가 하락을 불러와 소비 진작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공식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10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원리금 부담과 고용 부진으로 국내 소비자의 구매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정책실장은 "가계의 소비 여력이 많이 약해져 환율 하락의 내수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매력을 좌우하는 상용근로자 명목임금 증가율은 제조업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에 못 미치고 있다.
■지역업체는 더 괴롭다
부산업체들은 대부분 2, 3차 밴더여서 환율 하락에 당장 직접적인 타격은 받지 않는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원청업체의 고통은 그대로 하청업체에 전가된다. 지역 주력산업인 자동차부품업계는 원화 가치 상승이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거는 중소 부품업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바람을 타고 최근 미국 바이어들이 중국에서 부산으로 유턴하고 있는 신발업계도 걱정이 크다. 자재 구매와 납품을 모두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원화가치 상승분만큼 비싼 값에 재료를 사서 싼값에 납품하는 결과를 초래해 마진 감소가 현실화될 전망이다.
신발산업진흥센터 관계자는 "OEM(주문자상표부착) 생산이 많은 부산신발업계는 원화 가치가 폭락한 IMF 외환위기때는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혜를 봤지만, 이번에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질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극심한 수주난에 시달리고 있는 조선기자재업계도 환율 인하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주요 거래처인 국내 대형 조선소의 단가 압력 인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당장 일감이 없는데 원화 가치 상승으로 인한 가격경쟁력 약화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자조 섞인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업계는 장기적으로 해양플랜트전시회와 연구개발특구 지정 등에 따른 분위기 반전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반면 기계류 등 일부 수입업체는 환율 인하로 인해 이익을 볼 전망이다. 에어부산 등 항공사도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대표적인 수혜 업종이다. 그렇지만 그 폭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