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방송인이 집필한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남기'란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저자와 40대 장남이라는 공통분모도 있고, 혹시 도움이 될까하는 마음에 단숨에 읽었던 것 같다. 장남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 중 '형제간에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다', '마흔살이 넘어서 남의 밥을 얻어먹고 다니면 안된다. 남을 위해 쓸 줄도 알아야 된다', '형제간에 도와줄 때는 쥐도 새도 모르게 하고, 동생에게 돈을 빌려주느니 차라리 그냥 줘버려라' 등의 문구를 보면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필자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괴감을 느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개최된 전국경제인연합회 포럼에서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이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면서 대기업의 장남 역할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남인 대기업이 잘되면 동생 격인 중소기업도 잘된다는 논리였다.
정부가 계속해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 왔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동반성장이 멀지 않은 미래에 사회 전반에 자리잡을 것으로 믿지만, 대기업이 아직까지 장남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남아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최근 몇몇 재벌 계열사가 MRO(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사업을 확대하면서 중소기업과 사업영역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대기업 MRO업체의 우월한 지위남용 등의 문제가 나타나면서 중소 유통상이나 납품업체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최대 기업이 이달부터 MRO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장 다른 대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동반성장을 위한 통 큰 양보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 이면을 보면 동생을 도와주기 위한 장남으로의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정치권에서 계속해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들어 대기업을 압박해왔고, 지난달 25일 공공기관의 소모성 자재 구매시 중소 납품업자와의 우선 계약체결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기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철수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논리로 보면 대기업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동반성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은 그들이 주력할 수 있는 전문 업종이나 신사업 분야에 특화하고, 중소기업에게 양보할 수 있는 분야는 기꺼이 양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야 말로 장남인 대기업이 동생인 중소기업에게 베풀 수 있는 덕목이 아닌가싶다.
동생 역시 형의 고마움을 알고 잘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일이다.
부산경제진흥원 경제동향분석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