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떠드는 국방은 적보다 무섭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지구촌 곳곳의 전쟁 소식으로 전쟁이 결코 먼 나라의 일이 아님을 실감케 하는 요즘이다. 아웅산 테러 때 합참의장을 구한 일부터 아프간 피랍사건 당시 인질을 구출해내며 한미 양국에서 11개의 훈장을 받은 전설적인 인물인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예비역 중장)은 최근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1세기에도 이런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 놀랍다”는 기자의 말에 “그런 인식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무뎌진 안보의식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최근 두 전쟁을 보면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최강임에 틀림없지만 민주주의 사회인만큼 다양한 의견이 있고, 남의 전쟁에 어디까지 개입하고 희생할 것인가는 계산이 틀리다”면서 “다만 우리나라에는 2만8000명의 주한미군이 와 있고, 3만 명의 가족이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 거기서 오는 억제력이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두고 세계여론이 이스라엘에 우호적이지 않은 점에 주목하면서 “남북관계에서도 북한이 남침을 해오느냐, 어디서 빌미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미국내 여론도 갈릴 것”이라면서 “반드시 도덕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9·19 군사합의 무효화에 대해서도 “북한이 반칙을 해온 것은 맞지만 명확하게 선을 넘었다고 판단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대응으로 정부가 일부 효력정지를 선언한 데 대해선 “애매한 부분이 있다. 차라리 작년 무인기 침투 때 하는 게 낫지 않았나 싶다”면서 아울러 “우리가 굳이 폐기 ‘선언’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말했다. 자칫 외부에 우리가 긴장을 고조시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9·19 합의 때문에 훈련이 힘들어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어야 하는데 사실은 많은 지휘관들이 안 한 것”이라며 “전 정부의 분위기나 코로나, 군 인권 등의 문제로 훈련 수준이 매우 저하됐다. 그것부터 빨리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하마스 같은 기습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9·19를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9·19 합의를 폐기하면 하마스 같은 기습 공격은 걱정 안해도 되는 거냐”고 반문하며 “훈련을 제대로 시키고, 장비를 제대로 주는 게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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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1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국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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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의 무기 수준에 대해선 “전투기나 이지스함 같은 것은 좋은데 분대나 소대급에선 총이 고장나고 무전이 안 된다”면서 그는 “현직에 있을 때도 장병 슬리퍼 하나 바꾸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다”면서 군에서 훈련 여건, 기초 장비, 동원 훈련 등에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장군이 27사단장 시절 부대를 방문한 군수사령관 앞에서 병사들의 슬리퍼를 개선해달라며 슬리퍼를 입에 물고 시위한 일화는 유명하다. 전 장군은 또 군이 부상 당했을 때 치료해주는 등 ‘의무예산’이 “미국은 6%인데 우리는 고작 0.4%”라며 “이런 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장군은 지난 8월 미 육군협회 석좌위원으로 위촉돼 미국에서 협회 활동과 강연, 연구 활동을 하고 귀국하는 등 예편 후에도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전세계 122개 지부, 회원 100만 명을 둔 미 육군협회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이 위촉된 것은 처음이다. 전 장군은 한미 양국의 군인과 대중들에게 한미관계와 동맹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전 장군은 부산에도 홍법사를 고리로 인연을 맺어 일 년에 몇 차례 찾고 있다.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군 방침에 반대해 유엔사 참모장에서 해임됐던 싱글러브 장군 생전에 우연 찮게 연락이 닿았는데 그의 딸인 데브라 여사가 매년 부산 홍법사를 방문하는 것을 알게 돼 같이 찾게 됐다고 한다. 2016년 주한미해군사령부가 부산으로 이전한 이후 홍법사에는 미 해군 1000여 명이 다녀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호국영령을 위한 추모제를 지내는 홍법사는 미군들이 한국 전통문화를 배우고 교류하는 장이 됐다고 한다.
한편 동물자유연대 이사로 활동하는 전 장군은 지난해 사육 곰 22마리를 구조해 미국으로 보내는 등 동물복지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는 “젊어서는 사람을 보호하고, 나이 들어서는 동물을 보호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면서 “여생은 동물복지를 위해 살고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