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의사 113주기 추모식서
- 보훈처장 “유해발굴 본격화”
- 부산서 영면한 독립운동가
- 안 여사 서훈문제도 전향적
- “공적 입증할 사료 찾겠다”
국가보훈처가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본격 나서기로 한 가운데 부산에서 사망한 안 의사의 여동생 고 안성녀 여사의 독립운동 공적도 적극 수집하기로 해 그동안 ‘묻혔던’ 서훈이 빛을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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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인 안성녀 여사의 후손들이 소장중인 안 의사 아들 준생씨의 장례식 모습. 1954년 11월 부산 중앙성당에서 치러진 이날 장례식 사진에는 베일에 가려졌던 안성녀 여사(왼쪽에서 네번째)의 실존 모습이 유일하게 나와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신문 DB |
보훈처는 26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박민식 보훈처장,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 독립유공자 유족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의사 순국 113주기 추모식을 가졌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이 자리에서 “의사 순국 113년이 됐지만 아직 유해를 찾지 못했다”며 “사료를 모으고 주변국과 협력해 유해를 하루빨리 조국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특히 안 의사 저술이나 유해 관련 자료의 발굴 등에서 일본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해결할 과제 중 하나가 여동생 안 여사의 서훈 문제다. 지난 3일 안 여사의 손자 권혁우 광복회 부산남구연합지회장은 서울지방보훈청사를 방문, 박 처장을 만난 자리에서 지금까지 수집된 안 여사의 공적 관련 증언 자료 등을 전달하고 서훈 신청을 완료했다.
안 여사는 오빠인 안 의사 의거 후 중국으로 도피해 광복 직전까지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동안 체포나 수감 기록 등 공적을 입증할 공식 자료가 없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내려와 정착한 안 여사는 1954년 영도 청학동에서 생을 마감했고, 이후 1974년 남구 용호동 천주교 묘지로 이장됐다. 안 여사의 묘가 부산에 있다는 것은 2005년 국제신문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지면서 안 여사의 삶을 재조명하는 움직임도 일었다.
안 여사는 독립군의 군복 수선과 제작, 독립자금과 문서 전달 등 독립운동을 했고, 일본 경찰에도 체포돼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여사의 며느리이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오항선 여사도 생전 시어머니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고 증언했다.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원 심옥주 박사는 이날 “주한일본 공사관 통관문서에 보면 안중근 의사 일가 전체가 감시 체포 고문의 대상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조마리아 김아려 안성녀 여사 등 일가 전체가 독립운동에 헌신했는데 여성 운동가의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받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 보훈처장은 이날 국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안중근 의사 일가 중 많은 분이 이미 독립운동 공적이 인정된 만큼 안 여사의 공 또한 의심치 않는다”면서 “다만 아직까지 적확한 사료가 발굴되지 않아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료 발굴에 최선을 다해 안 여사는 물론 독립운동에 헌신한 모든 분들 한 분도 빠짐 없이 제대로 예우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