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전 북한 외무상이 작년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해외 외교관의 잇단 망명에 연루돼 숙청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파장을 두려워하는 북한 해외 주재관의 대규모 이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4일 북 소식통의 말을 빌려 리 전 외무상이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 시기가 “작년 여름부터 가을 무렵”이라고 전했다.

리용호 전 외무상은 영국 주재 북한대사와 북핵 6자 회담 북측 수석 대표를 역임한 ‘미국통’으로, 2016년 외무상에 취임했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보좌했으며, 하노이 담판이 결렬되자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대미협상을 주도했던 김영철 당시 통일전선부장 중심의 대남라인이 물러나고, 리 전 외무상 등 정통 외교 라인이 대미 외교의 전반에 나서면서 오히려 입지가 강화됐다.

2019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의 리무진에 동승하는 등 신임을 과시했다.

2018년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 두번째)이 북한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리용호 북 외무상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2019년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외무상에서 경질됐으며, 2020년 4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3차 회의에서는 국무위원에서도 파면됐다. 당시 해외 주재 북한 외교관들의 잇따른 국외 망명에 책임을 지고 경질됐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요미우리는 리 전 외무상 처형 전후로 북한 외무성 관계자 4, 5명이 잇따라 처형됐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숙청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이번에 처형된 이들이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어떤 문제에 연루된 게 아니냐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은 2016년 이곳에서 근무하던 태영호 당시 공사(현 국민의힘 국회의원)가 한국으로 망명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태 의원은 당시 대사관에서 현학봉 대사에 이어 서열 2위였다.

이번 사태 이후 숙청된 외무성 관계자와 가까운 외교관 중 일부는 자신도 처형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대규모 망명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북한 당국은 국외 근무 외교관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리 전 외무상 처형 보도와 관련해 “2020년 4월 이후 북한 매체에서 보도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처형 등의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