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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3> 남과 북을 잇는 조선학교

남북 가르기 없는 재일동포 학교… 민족얼로 日 탄압 맞서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1-13 20:06:28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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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국 염원 담겼던 ‘조선학교’
- 해방 후 탄압 속 인가 받았지만
- 무상교육 제외 등 차별 계속
- 62개교 학생 7000명만 남아

- 이북 교육에 외면했던 한국민
- ‘몽당연필’‘봄’ 등 단체 결성해
- 체제 뛰어넘는 마음으로 후원
- 평화·통일로 가는 길 제시해

사진을 보면, 교실 창으로 하늘이 보이고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아이 옆으로 길게 떨어져 있다. 책상 두 개, 의자 두 개, 학생 두 명. 몇 학년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교 교실이다. 교탁에는 오늘의 당번은 소아라고 적혀있다. 두 명이니까, 모레의 당번도 소아일 것이다. 교실 뒤쪽 사물함은 20칸, 같이 공부할 친구를 기다리는 마음에 햇빛이 오래 머물렀다. 책상은 한 개로 줄어들까, 세 개로 늘어날까.
지난해 11월 필자를 포함한 방문단 일행이 일본 큐슈조선중고급학교를 찾았을 때 펼쳐진 학예제 모습이다. 이들 재일동포의 존재와 삶은 분단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사진가 최우창 제공
지난해 11월 부산동포넷의 18차 조선학교 방문단으로 찾았던 일본 야마구치 초중급학교이다. 32명 아이들이 유치원·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나뉘어져 있었는데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년도 있었다. 분홍색 신축건물 현관에‘우리말 딱친구’라는 표어가 있었다. 타이어가 줄을 지어 박힌 운동장에서 한두 글자가 빠진 듯한 그 글을 오랫동안 읽었지만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었다. 우리말 단짝친구, 우리말을 많이 쓰자는 뜻이라고 치마저고리를 입은 앳된 모습의 선생님이 알려주었다.

몇 년 전 부산작가회의 주최 윤동주 문학기행에서 조선학교 졸업생을 처음 만났다. 오사카의 삼겹살집이었는데, 한국말을 너무 잘해 놀랍다고 하자,‘조고’졸업생이며 자녀들도 그 학교에 다닌다는 것이다. 조선이라는 용어는 식민지 전 조국의 명칭이며 자신은 남과 북 어느 한 곳도 선택하지 않고 통일 조국을 기다린다고 했다. 조선학교를 다니는 게 무슨 마음인지도 몰랐던 때지만, 남과 북 어디도 선택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헝클어지면서 부풀어 올랐다. 그들이 과거인지 미래인지 잠시 헷갈리기도 했지만 나는 그 이후‘조고’를 잊은 적이 없다.

강당 무대 위에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한 줄로 선 사진이 있다. 큐슈조선중고급학교 학예제 장면이다. 학년별로 노래하거나 상모춤을 추거나 사물놀이와 가야금 연주를 했다. 재능이 있는 한 명의 공연이 아니라 학년 전체가 어울리는 깔끔하고 진지한 무대였다. 강당 앞 게시판에는 최우창 사진가가 찍은 학생들 사진이 전시돼 있었고 학생들의 글이 있었다. 가고시마에서 자란 한 학생은 친구들과 함께 일본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 말을 하자 아버지는,‘네가 있을 자리는 가고시마가 아니다. 조선학교가 너의 보금자리다’라며 조선학교 입학을 권했다. 입학 후 7명으로 시작한 기숙사 생활은 언니와 둘만 남게 되고 언니마저 졸업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학생은 기숙사를 나왔지만, 가고시마로 돌아가지 않았다. 가고시마에 있는 어머니가 후쿠오카로 와서 학생과 지내게 된 것이다. 조선학교는 가족이 힘을 모아 지켜야 하는 소중한 곳이었다.

■꿋꿋이 버텨온 우리 동포

또 다른 조선학교인 야마구치 초중급학교 교실에서 수업하는 동포 학생과 교사.
인터넷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진이 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학생 얼굴 위로 눈물이 흐른다. 많이 울어 얼굴이 붉게 부은 여학생도 보인다. 한 갈래로 머리를 묶거나 단발을 한 순하고 소박한 얼굴들이다. 이들은 곧 ‘부당판결’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가행진을 할 것이다. 고교무상화지원정책에서 조선학교만 제외된 후 자주 보는 사진이다. 이후 조선학교와 학생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1심 결과 오사카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패소했다. 2013년부터 일본 지방 정부들도 차별에 가세했다. 유치원과 초중급학교에 지급되던 보조금의 일부 혹은 전액을 삭감했다. 각종학교, 외국어학교라도 문부과학대신이 지정한 학교라면 지원 대상이 된다고 결정했음에도, 조선학교만 제외된 것이다. 그 사실을 들었을 때 조선학교 학생과 보호자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법원이 내린 판결들은 얼마나 동포를 두렵게 했을까.

김금희의 단편‘마지막 이기성’에는 재일코리안인 홋카이도 출신 유기코가 등장한다. 유기코의 가족 중 한 명은 너의 피에는 더러운 것이 있다는 일본인의 말을 듣고 은둔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에서 유학을 간‘내’가 학과에서 받은 차별로 1인 시위를 하려 하자 유기코는 이렇게 문제를 키우는 건 남아있는 우리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두려워한다. 차별을 드러내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것이다. 조선학교 학생과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 두려운 건 이 차별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 게 다를 뿐.(‘마지막 이기성’의 유기코는 시위가 아니라 배추를 심는 방식으로 투쟁에 참여하고 성과를 얻는다.)

일본의 조선학교 탄압은 해방 직후부터 시작된다. 해방 후 귀국을 미뤘던 부모들이 만든 국어강습소가 조선학교로 발전하자 연합국총사령부는 폐쇄령을 내렸고, 동포사회는 유명한 한신교육대투쟁으로 학교를 지켜냈다. 일본 정부의 탄압과 간섭이 계속되자 동포들은, 자주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각종학교로 전환해 인가를 받았다. 인가 후에도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은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났다. JR정기통학권 할인율 차별과 대학수험 자격문제가 대표적이었다. 그때마다 동포사회는 차별에 맞서 학교를 지켜왔고 지금의 위기도 극복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배제와 차별의 결과 160여 곳 조선학교는 62개교가 남았고 4만 명이던 학생도 이제 7000명.

■분단이 남긴 또 하나의 아픔

18차 방문단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큐슈조선학교 운동장에 차려졌다. 작은 의자와 테이블이 펼쳐지고 작은 화로도 놓였다. 옆 테이블에 이 학교 졸업생 김정배 선생이 있었다. 타가와군(田川郡)의 휴가 묘지와 기타큐슈시(北九州市) 오다야마 묘지를 안내한 분이었다. 휴가 묘지는 일본인의 집안 묘지이다. 화강암 납골묘가 무리지어 있고 그 앞에는 개와 고양이의 무덤이 앙증맞게 꾸며져 있다. 그 묘지 가장 구석에 베개만 한 돌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석탄을 캐다 나온 쓸모없는 돌(보타석)이라고 한다. 글씨 하나 새기지 못한 그 돌로 삶과 죽음을 증명한 사람들이 있다. 타가와 근처 탄광이나 제철소에서 사망한 조선인 노동자들이다. 아파 죽었는지 맞아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삶 역시 일본인 묘지 구석에 몰래 묻힌 죽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다야마 묘지도 마찬가지다. 해방 후 겨우 목선을 구해 귀국길에 올랐던 사람들이 태풍에 휩쓸려 와카마쓰 해변으로 떠내려왔다. 누군가 그들을 2㎞ 떨어진 오다야마 시립묘지 구석에 매장한 곳이 조선인 조난자 묘역이다. 펜스와 옹벽으로 둘러싸인 채 발목까지 풀이 무성한, 비석 하나 없는 묘지였다. 휴가 묘지의 37명 오다야마의 80명, 그들 이름은 하나다. 조선인. 그들은 그 이름으로 식민지 시대의 차별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뜨거운 노래를 불러/내 가슴을 그대에게 바친다’.오다야마 조선인 조난자 위령비 옆에 선 강영환 시인의 추모시이다. 부산민예총이 세운 솟대도 부산을 바라보고 있다. 헌주와 헌화를 마친 뒤, 양일동 소리꾼은 접신이라도 한 듯 내 고향이 어디인지 나도 이제 모르겠다고 절규하고 맨발로 진혼무를 춘 김경미 춤꾼의 흰 종이 한삼은 넋들의 염원을 하늘에 전했다.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을 돌아가지 않은 재일동포들이 안내하고 부산 사람들이 위로한 것이다. 우리가 분단 상태로 있으니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해요. 김정배 선생의 목소리가 떨리고 눈이 젖어들었다.

조선학교는 조총련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학교였고 북한의 지원을 받아왔다. 그 이유로 오랫동안 우리의 외면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대부분 학교에서는 한국적을 가진 학생이 더 많다고 한다. 국적이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차별에 맞선 민족의 정체성이 중요한 것이다.

서울에는‘몽당연필’이, 부산에는‘봄’이 조직돼 조선학교를 후원한다. 일본 안에서 남과 북을 잇고 일본 밖에서도 남과 북을 잇는 조선학교는 이미 분단 이데올로기와 그 체제를 넘어 평화와 통일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영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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