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가
- 한일 갈등 증폭 시발점으로 봐
- 철거 땐 관계 개선 도움되겠지만
- 국민 정서상 불가능한 일
- 정부,제3국 중재위 수용 땐
- 대법원 강제징용 문제 판결
- 국제법 위반 인식 여지 남겨
- 한일 정상 담판·특사 비상식적
- 아베, 한국에 ‘답 갖고 오라’
- 우방국에 할 말·태도 아냐
- 국민·기업 힘모아 대응해야
이수훈(65) 전 주일대사는 2016년 12월 부산일본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한 것이 한일 관계 악화의 시발점으로 분석했다. 그는 “소녀상 해법이 한일 관계에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지만 “국민 정서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의 일방적 수출 규제를 ‘경제 전쟁’으로 규정했다. 그는 “우리가 피해자이고 일본이 먼저 걸어온 싸움이어서 ‘우리 정부가 잘못했다’는 주장은 선후가 바뀐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7년 10월 문재인 정부 초대 주일대사로 임명된 이 전 대사는 한일 관계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지난 5월 퇴임했다.
이 전 대사는 퇴임 이후 언론과 처음 단독인터뷰를 23일 국제신문과 가졌다.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경남대 북한대학원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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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의 초대 이수훈 전 주일대사가 23일 국제신문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한일 관계가 악화된 원인은.
▶한일 간의 불행했던 과거사로부터 이어진 문제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의 위안부 합의,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이 직접 원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갑자기 나빠진 것이 아니다. 한일 관계는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12년 8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크게 악화됐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악화 일로를 걸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한일 관계를 악화시킬 만한 특별한 무엇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위안부 합의 검증 결과 발표 당시 일본의 반발이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데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을 빌미로 경제 보복에 나선 배경은 무엇인가.
▶위안부 합의 검증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서 한일 간의 합의 과정과 결과를 다 들여다봤다. 이때 우리 정부의 입장은 ‘합의를 지킨다’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에 추가적인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위안부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 회복을 우리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반발 강도도 세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10월에 대법원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이 나오고, 11월에는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을 결정하면서 한일 관계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경제 보복으로 표출된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을 강행할 것이라는 징후가 있었는데도 우리 정부가 소홀하게 판단했다는 비판이 있다.
▶법원 판결 이후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총체적인 대응 노력을 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 입장에서 징용 문제는 위안부 문제 못지않게 어마어마한 문제다. 피해자 규모도 크고, 구성도 다양하다. 피해자 공감도 있어야 한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일본은 단계별로 바로 넘어갈 수 있지만 우리는 국민과 소통도 해야 한다. 굉장히 조심스럽게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 ‘우리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는 할 수 있지만,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다.
또 한일 교류는 2017년 초 우리가 아닌 일본 정부의 일방적 조치로 중단됐고, 그 상황이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 부산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문제가 빌미가 됐다. 그때 일본 정부는 주한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고, 한일 간의 고위급 경제 협의체, 한일 어업협정 등 한일 간의 모든 경제·사회 분야 협의를 중단시켰다. 한일 통화스와프도 중단됐다.
-그러면 부산 소녀상 철거가 한일 관계 해법이 될 수 있나.
▶한일 관계의 큰 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불가능한 것 아니냐. 정부와 부산시 경찰 및 동구청까지 나서 부산에 강제징용노동자상 설치를 막는 데 애를 먹었고,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통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반도체와 삼성전자는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경제를 상징한다.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겠다는 의도다. 그래서 이것은 경제전쟁이다. 일본이 접을 것 같지 않고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일본이 추가 조치를 취하면 우리 정부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한층 더 통제하기 힘든 경제전쟁으로 가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일본은 강제 징용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제3국을 통한 중재위원회 구성을 수용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도 중재위 제안을 검토했지만 일본이 일방적 경제 보복 조치에 나서면서 스스로 걷어찼다. 또 우리 입장에서 중재위 판결을 받으면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처럼 인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문제가 있다. 피해자는 빠른 배상을 원하지만 중재위 판결은 2, 3년 이상 걸린다. 결론이 나더라도 한일 양국이 승복하겠느냐는 문제도 있다.
-한일 정상 간 담판이나 특사 파견도 거론된다.
▶비상식적인 제안이다. 불과 한 달 전에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얼마든지 회동할 수 있었는데도 아베 총리가 응하지 않았다. 특사라는 것은 대통령 사절단이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특사를 보내나. 일본이 특사를 받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아베 총리가 우리 정부에 “답을 갖고 오라”고 했다. 우방국한테 할 말도 아니지만, 그런 식의 태도를 갖는데 어떻게 특사를 보내나.
-해법은 무엇인가.
▶일본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 지금 갑과 을이 바뀌었다. 우리가 피해자고 상처받은 쪽인데 일본에서 우리가 잘못한 것처럼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곤란한다. 아베 일본 총리가 끊임없이 강공으로 나오면 국제사회의 여론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조치는 자유무역 질서와 관련된 것이다. 곧 미국 기업에도 파급이 간다. 일본이 평정심을 찾아야 한다. 이런 상황은 우리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일본이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응하고 있다. 이때는 국민과 기업이 불편해도 같이 힘을 모으고 단합을 해서 대응을 해야 하는 단계다. 내부에서 서로 손가락질할 그런 상황이 아니다.
박태우 기자 ya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