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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시민 힘으로 <7> 원전안전 분권

원전재난 등 특수상황땐 자치입법이 중앙법률 우선돼야

  • 국제신문
  •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  |  입력 : 2018-02-27 19:40:25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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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원자력안전위 중심 대응체계
- 사고땐 서울서 내려와 현장지휘
- 정작 원전인근 9곳 지자체장
- 갑상선 방호약 배포권한도 없어
- 골든타임 확보 실패 가능성 커

- 현장 잘 아는 지방정부 나섰던
- 日 후쿠시마 교훈 반면교사로
- 시·도 감시센터 설치도 급선무

영화 ‘판도라’의 배경은 부산이다. 영화에서처럼 핵발전소 사고의 직접적인 위험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대상도 부산 시민이다. 그런데도 부산시는 핵발전소 비상 상황이 발생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핵발전소와 관련한 권한 대부분이 중앙정부에 집중된 탓이다. 미국과 일본 등 방사능 유출 사고를 겪은 나라는 대부분 원전 안전에 관한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현장 중심의 안전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영구 정지된 부산 고리 1호기 원전 전경. 국제신문DB
■원전은 부산에, 관리는 중앙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정부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EPZ·Emergency Planning Zone)을 확대, 세분화했다. 이에 따라 원전 중심으로부터 반경 8~10㎞이었던 EPZ는 예방적 보호조치구역(PAZ·Precautionary Action Zone)과 긴급보호 조치계획구역(UPZ·Urgent Protective Action Planning Zone)로 구분됐다.

원전 5㎞ 이내 지역인 PAZ는 방사선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사전에 한곳에 집중돼 있는 주민이나 시설물을 분산하는 등 예방적 주민보호 조치가 시행되고, UPZ는 원전에서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주민보호 대책을 사전에 마련하기 위해 설정하는 구역이다.

UPZ는 지역마다 그 범위가 다른데, 부산의 경우 원전에서 20~22㎞를 설정했다. 이에 따라 기장군과 울주군만 해당하던 과거에 비해 EPZ 내에 있는 지자체 수가 급증했다. 부산시는 기장군 금정구 해운대구가, 울산은 울주군을 비롯해 중·남·동·북구 등 모든 기초단체가 포함됐다. 경남 양산까지 EPZ 내로 들어와 총 3개 광역지자체와 9개 기초단체가 EPZ에 포함됐다.
   
보호 대상도 급증했다. 부산의 경우 보호 대상이 1만 9000여 명에 불과했지만, 50만 2000명으로 늘었다. 재해 약자도 8개 학교(2480명)에서 98개 학교(5만8490명)로, 병원 등 복지시설도 10곳(772명)에서 34곳(6354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대규모 인원을 대피시키고, 재난 취약 계층을 보호할 국가 차원의 보호 지침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또 많은 지자체에 대한 재난관리 지휘계통도 이원화돼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9개 구·군에 대한 전반적인 재난관리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서 하지만, 인근 지자체로 흩어져 대피한 주민과 학생에 대한 구호지원은 행정안전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원전 안전 관련 사무가 현장이 아닌 중앙정부와 규제기관에 집중된 것도 문제다. 국내 핵발전소와 관련한 정보는 대부분 원안위에서 취급한다. 부산시와 기장군도 원안위에서 제공한 정보만 제한적으로 받아볼 수 있다. 원자력안전법상 국내 원자력 시설 관리 업무가 중앙정부 사무로 집중된 탓이다. 지자체가 원안위를 거치지 않고 상업용 발전소의 정보를 직접 수집할 수 있는 통로는 없다.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현장으로

   
원전 안전에 대한 독점적 권한은 국민의 불신만 키웠다. 2012년 2월 고리원전의 외부 전원이 끊기고 비상 디젤발전기가 가동되지 않아 냉각 시스템이 12분간 멈춘 사고가 발생했다. 이때 한 달간 은폐 의혹이 있었다.

지난해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방사성 물질을 무단 폐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지만, 정부와 원안위는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지방정부와 지역주민의 감시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은폐 시도나 무단 폐기는 미연에 방지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 관리가 제대로 될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현행법에 따르면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원안위 사무처장이 현장지휘센터장을 맡게 돼 있다. 센터장은 갑상선 방호약품까지 주민에게 배포하고 복용하는 부분까지 사고와 관련한 거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센터장이 서울에서 내려오는 동안 재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또 센터장이 현장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다수의 지자체를 제대로 지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원전 안전 권한이 현장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재난 발생 때 현장 중심 지휘체계로 일원화하고, 원자력안전협의회·지역방호협의회 등에도 지자체와 관계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전 관련 회의결과 등 각종 정보를 지방정부에 제공하는 한편,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에 시·도 감시센터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고 발생 때 긴급히 배포되야 할 갑상선 방호약품은 시·도지사나 구청장·군수가 재량으로 배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공감을 얻는다.

부산시 이장희 원자력안전팀장은 “현재 한국의 원전 재난대응 체계는 의사결정 과정의 비효율성, 높은 골든타임 확보 실패 가능성, 보여주기식 외형 확장 등의 문제점을 보인다”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준 가장 큰 교훈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난 수습을 위해서는 현장을 잘 아는 지방정부가 판단과 지휘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앙정부는 지원과 조정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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