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의회는 17일 일명 '소녀상 조례안'(부산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안) 심의를 위한 상정을 보류했다. 지난 2월 말 정명희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이 발의한 조례안이 3월 임시회에서 상정 보류된 데 이어 이번에도 상정 자체가 불발되면서 시민단체 '소녀상을 지키는 부산시민행동' 측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갈등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17일 오전 부산시의회 앞에서 '소녀상을 지키는 부산시민행동' 회원들이 일명 '소녀상 조례안'(부산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안)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는 이날 오후 조례안 심의를 할 예정이었으나 상정을 보류했다. 이진수(자유한국당·동래3) 위원장은 "문희상 대일 특사가 일본으로 가는 날에 외교적으로 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조례를 심의하기보다는 특사단 방일 이후의 한일 양국의 상황을 보면서 재상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일 양국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일본 언론에 불법조형물(도로교통법상 불법점용)에 대한 합법적인 관리로 와전돼 정부의 향후 위안부 재협상 등에 부담이 될 우려도 있어 완성도 있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례안 상정이 보류되자 소녀상을 지키는 시민행동 관계자들은 시의회에서 "새 정부가 시작하자마자 일본과의 외교에 저자세를 보였다"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조례안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은 7조 1항의 2에 '피해자에 관한 조형물·동상 등 기념물 설치·지원 및 관리사업을 개인, 법인 또는 단체가 수행하는 경우 시장은 예산의 범위 내에서 경비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논란의 본질은 '소녀상의 위치'다. 정 의원과 시민단체는 조례안을 통해 현재 실정법상 불법조형물인 동구 일본 영사관 앞 소녀상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법적 관리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반면 시의회는 지원 조례인만큼 법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시에 소녀상을 기부채납한 뒤 합법적인 관리대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외교적 마찰을 우려한 시가 심의 과정에서 소녀상의 위치를 이전할 가능성이 커 시민단체는 기부채납 없는 조례안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조례안에 상위법에 명시된 기념사업의 성격과 범위, 장소 등을 정할 수 있는 '심의위원회'가 빠져 있는 것도 논란거리다. 조례안이 원안 통과되면, 누구나 소녀상 같은 조형물을 협의 없이 특정 장소에 설치한 뒤 시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어 또 다른 외교적,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정길 기자 yjk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