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20일 열리면서 여론의 눈길이 다시 법원으로 쏠렸다. 특검 수사 대상 가운데 삼성전자 이재용(49) 부회장이 거물급 재계 인사라면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을 제외하고 정·관계 최고위급이다. 모두 현 정부의 실세로 꼽혔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영장 심사 결과는 이 부회장에 못지않게 특검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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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의 '설계자'로 거론된 김기춘(왼쪽)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용우 기자 |
서울중앙지법 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이날 심사에선 구속 여부를 놓고 특검팀과 변호인 간 치열한 법리 공방이 벌어졌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의 혐의를 뒷받침해주는 정황을 이미 상당수 확보했다. 특검팀은 지난해 12월 26일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을 구속했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를 모른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반면 특검팀은 그가 재직 시절 김 전 장관으로부터 블랙리스트에 관한 보고를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수사를 앞두고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정황도 있다. 특검팀이 김 전 실장 자택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사설 CCTV 영상과 휴대전화는 상당량의 정보가 삭제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일부 증거 인멸을 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힌 바 있다. 증거 인멸 가능성은 도주 우려와 함께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중요한 사유다.
조 장관은 청와대 정무수석 재직 시절인 2014년 6월부터 2015년 5월까지 김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블랙리스트의 '산실'로 의심되는 곳이다.
법원이 혐의 부인의 고의성과 증거 인멸 우려가 크다고 볼 것인지, 아니면 변호사로 활동했던 법률가인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는 점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방어권 보장 측면을 중시할지 주목된다.
법원은 지난 19일 새벽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구속영장 발부에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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