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원직 제명·가택연금·군부 박해
- 독재에 맞선 민주주의의 역사
- IMF·아들 비리로 임기말 고통
- 수평적 리더십, 문하생 키운 사표
- 여야 지도부 그가 남긴 정신 기려
- 새누리 친박계 핵심 불참 '대조'
초겨울의 바람이 몰아친 2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 1주기 추모식이 엄수됐다. 추모식에 참석한 여야 정·관계 인사 2000여 명은 YS의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 질서를 파괴한 장본인으로 의심받고 '촛불 민심'이 불타오르는 정국 속에서 여야 정치인은 군정을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YS의 지도력에 대한 그리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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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 1주기 추모식이 끝난 뒤 고인의 차남 현철 씨가 김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 |
■ YS가 일군 한국 민주주의
YS는 1954년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최연소(만 26세)로 민의원에 당선된 뒤 9선 의원을 지냈다. YS의 정치인생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싸운 한국 민주주의 역사 그 자체였다. YS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9년 '초산테러'를 당했고, 1979년에는 의원직 제명을 당했다. YS에 대한 정치적 박해는 부마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박정희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1983년 전두환 군부정권에 의해 가택연금 중이던 YS가 민주화를 요구하며 벌인 23일간의 단식투쟁은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과 6·10민주항쟁의 '씨앗'이 됐다. YS는 1990년 '야합'이라는 비판 속에서 3당 합당을 결행했다. 이후 그는 1992년 대선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국 정치에서 군부독재가 종식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전두환·노태우 등 쿠데타 세력에 대한 처단이 이뤄졌다. 정치군인인 '하나회'는 해체됐다.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등록이 이뤄졌다.
많은 정치인은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초석이 YS에 의해 놓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YS의 임기 말은 불운했다. 1997년 차남 현철 씨의 국정 개입과 IMF 외환위기 사태로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기도 했다.
■ "YS 정신으로 위기 극복을"
박 대통령이 탄핵당할 처지에 놓인 정치 현실 속에서 여야 정치인과 원로들은 민주주의자 YS를 계승하자고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참모들과 늘 격의 없는 소통으로 정평이 난 YS의 수평적 리더십을 되새기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추모식에서 "나라가 혼미하고 국민 주권을 되찾자는 국민 함성이 깊을수록 민주주의 깃발을 높이 휘두르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온 김 전 대통령이 더욱 많이 생각난다.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치인으로서 무거운 책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YS의 상도동계에서 정치를 시작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너무나 엄중한 시국 상황을 생각하니, 시대정신을 통찰하는 큰 정치와 애민정신으로 대한민국을 미래로 이끌었던 김영삼 대통령님의 정치력이 간절하게 그리워진다"고 밝혔다.
추모식에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민주당 추 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와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이 참석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상도동계 출신인 서청원 의원은 추모식장을 찾지 않았다.
손균근 기자 kksho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