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자치단체장은 '지방의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사진은 부산시청사 전경. 국제신문DB

- 서울시장·경기도지사와 '빅3'
- 명목상 차관급, 실제 장관급 이상
- 출연기관 등 인사 직간접 관여
- 각종사업 인·허가권도 강력한 힘
- '强시장, 弱의회' 지방자치룰 여전
- 과도한 권력 집중 우려 목소리도

지난 1995년 6·27 지방선거를 통해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체제가 출범한 이후 민선 단체장의 권한은 해가 갈수록 확대됐다. 과거 관선단체장은 중앙정부의 강한 통제 속에 윗선의 눈치를 봤지만 민선 단체장은 유권자 지지라는 정통성을 배경으로 자치의 권위와 임기를 누려왔다.

특히 광역자치단체장은 '지방의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자치제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막강한 인사·조직권과 예산권, 각종 사업 인·허가 등 정책결정권을 무기로 관료 조직은 물론 지역 사회를 장악했다.

이 가운데 부산시장은 서울시장, 경기도지사와 더불어 '빅3 광역단체장'으로 불린다. 어떤 이는 중앙부처와 부딪치는 일이 많은 수도권 단체장보다 이른바 '제왕적 권위'로만 따진다면 부산시장이 훨씬 더 좋은 자리라고 말한다. 부산시 한 고위공무원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는 행사장에서 대통령, 총리 등 높은 분들을 많이 만나 의전상 밀리는 경우가 많지만 부산시장은 수도권과 떨어진 거리만큼 거의 모든 행사장에서 최고 VIP"라고 표현했다.

단체장의 힘은 인사와 예산에서 나온다. 부산시장은 본청 1976명(이하 정원 기준), 시의회 107명, 소방본부 인재개발원 등 직속기관 2567명, 상수도본부와 건설본부 등 사업소 1945명 등 총 6600여 명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대다수 공무원에게 승진은 불변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만큼 단체장은 인사권을 무기로 조직을 통제한다.

단체장이 행사하는 인사권은 시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 투자기관이나 출연기관 및 유관기관 등에 직간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시 투자기관에는 부산교통공사, 부산도시공사, 부산시설공단, 부산환경공단, 부산지방공단 스포원, 부산의료원, 부산관광공사 등 쟁쟁한 거대조직이 있다. 이곳의 임원 인사권은 사실상 부산시장이 행사한다. 대다수 고위 관료들이 퇴직 후 공기업 임원으로 가기 위해 시장에게 충성 경쟁을 벌일 수밖에는 없는 구조다.

출연 및 유관기관도 수십 곳이다. 부산테크노파크, 부산정보산업진흥원, 아시아드컨트리클럽, 벡스코, 부산경제진흥원, 부산발전연구원, 부산디자인센터, 부산신용보증재단, 부산여성가족개발원, 부산복지개발원, 부산시체육회, 부산영어방송재단 등의 임직원 인사에도 부산시장의 의중은 절대적이다. 한 전직 시의원은 "공공기관 임원의 낙하산 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해 의회 차원에서 인사청문회 시행 등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현행법상 시장 인사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논리에 막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해 9조 원이 넘는 시 예산을 편성 및 집행하는 권한도 자치단체장의 막강한 힘이다. 부산시의원은 물론 국회의원까지 예산철이 되면 시장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한 시의원은 "시장이 1년에 운용할 수 있는 특별교부금이 400억 원 정도 되는 데 이 금액에서 조금씩 떼 국회의원의 지역 민원 해결에 사용한다"며 "국회의원들은 특별교부금을 조금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애를 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는 또 '자치단체 자본보조'(자자보)라는 예산 항목으로 시의원 지역구 당 5억 원가량을 배정한다. 이 예산은 열악한 재정의 기초자치단체에 시비를 지원하는 게 애초 목적이지만 예산 배정 과정에서 시장과 시의원은 '갑을(甲乙)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각종 사업의 인·허가권도 자치단체장의 강력한 무기다. 대형사업은 해당 지역 단체장의 의사 결정에 따라 속전속결로 진행될 수 있지만 단체장의 눈 밖에 났다가는 표류하기 십상이다.

이런 강력한 시장의 권한을 견제할 기구로 우선 시의회가 꼽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강(强)시장, 약(弱)의회'라는 우리나라 지방자치 룰이 쉽게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시장이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다"며 과도한 권력 집중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부산시장 등 광역자치단체장의 권한은 단지 행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부산시장은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과 부산시체육회장,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장 등 문화,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최고 의사결정권을 가진다. 당연히 부산에서 의전서열 1위는 시장이다.

광역자치단체장은 의전 서열로만 보면 서울시장(장관급)을 제외하고 차관급 대우를 받지만 이를 곧대로 믿는 이는 없다. 선출직이 가진 대중성과 보장된 임기, 그리고 막강한 인사와 예산권은 장관과 국회의원의 그것과 견줄 수 없다. 집권 여당 사무총장을 지낸 4선의 서병수 의원이 중앙 공직을 뿌리치고 부산시장에 올인한 것을 보면 광역단체장의 매력을 엿볼 수 있다. 부산시 한 서기관은 "관선 시절에 만들어 놓은 의전 규정상 차관 대우를 받지만 실제 힘은 장관 이상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며 "지방자치의 권한이 확대될수록 자치단체장의 힘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막강한 단체장의 힘은 연임 과정에서 배가된다. 지난 2004년 고(故) 안상영 시장의 예기치 않은 자살로 부산시장 자리에 오른 허남식 시장은 재선, 3선을 거치면서 지역 국회의원이 넘볼 수 없는 정치적 위상을 쌓았다. 신라대 강경태(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부산 국회의원들이 처음에는 직업공무원 출신인 허 시장을 쉽게 통제할 수 있다고 봤지만 허 시장이 재선에 성공한 뒤에는 오히려 국회의원들이 허 시장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며 "막강한 자치단체장의 힘이 그 원천"이라고 말했다.

많은 힘이 쏠리는 자리이다보니 퇴임 후 느끼는 상실감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몇해 전 은퇴한 한 자치단체장은 사석에서 "은행가는 것도, 운전하는 것도 어색하고 심지어 엘리베이트 앞에서 비서가 대신 버튼을 누르는 일에 익숙하다보니 멍하니 서 있을 때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 김해몽 부산시민센터장

- "국세 지방세로 전환하고 시의회 인사청문회 필요"

"광역자치단체장의 권한이 막강하지만 재정분권 차원에서 보면 여전히 부족한 게 많습니다."

김해몽(사진) 부산시민센터장은 광역단체장의 권한이 해를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중앙정부가 재정을 틀어쥐고 있는 이상 '2할 자치'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음은 김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현재 광역단체장의 권한은?

▶산업단지 지정 권한이 시도지사에게 넘어오는 등 광역단체장의 권한은 계속 늘고 있다. 주민자치보다 기관 위임사무 등 단체자치의 강화가 더욱 눈에 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국책사업도 시도지사의 동의 없이는 못하는 게 현실이다.

-광역단체장 권한 중 보강돼야 할 점은?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재정분권이 우선 강화돼야 한다. '2할 자치'라는 말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분권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단체장의 권력 비대화 우려가 크다.

▶7개 지방공기업 사장 인사 때마다 낙하산 시비가 나온다. 경영의 전문성과 내부 구성원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퇴직공무원들로 채운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법령을 고쳐서라도 시의회 차원의 인사청문회를 시행해야 한다. 최근 시의회에 괜찮은 의원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강(强)시장, 약(弱)의회' 구조는 일당독점이라는 퇴행적 정치구조상 쉽게 극복하기 힘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참여예산제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생활정치 조직이 필요하다. 기초단위에서는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

-차기 바람직한 부산시장의 유형은?

▶지난 16년간 관료출신이 부산시장을 맡다 보니 안정과 성실로 대변되는 무난한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차기 시장은 이제 큰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또 해양도시의 개방성과 포용성, 다양성 등 부산의 특성을 담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토건 중심의 도시 발전 패러다임을 '사람을 중심에 놓는 도시, 사람이 살만한 도시'라는 품격있는 도시 조성으로 바꿔야 한다.

◇ 법령에 명시된 지방자치단체장의 주요 권한 - 지방자치단체의 대표 및 사무통할권(事務統轄權) -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사무, 법령에 의해 그 단체에 위임된 단체위임사무, 국가 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위임받은 기관위임 사무의 처리권 - 소속 지방 행정기관 및 관할 자치단체에 대한 지휘·감독권 - 소속 직원에 대한 임명 및 지휘·감독권 - 지방의회에 조례안·예산안 제출권 및 기타 지방의회 의결사항에 관한 제안권 - 규칙 제정권 - 재의 요구권(再議要求權) - 선결처분권(先決處分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