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청와대 자신의 사무실에서 국제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남북 관계 및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우리 스스로 대북영향력 과소평가
- 세계를 움직이는 힘 가지고 있어

- 北 내부 경제난 등 심각한 동요
- 군심 불만 표출방식 두고 봐야

-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봤지만
- 대한민국 품격 위해 공개 불필요

- 韓·中, 북한 미래 논의하는 단계
- 부산 발전, 국제화에 승부 걸어야

청와대 대통령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은 이명박 정부 후반기 외교·통일·안보 정책을 이끈 핵심 인사다. 천 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이 외교·통일·안보 분야를 넘어 국제적 현안과 관련해 반드시 의견을 듣는 최측근 참모다. 외교안보 분야의 특성상 언론에 나서기를 꺼려온 천 수석이 지난 3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에서 국제신문과 2시간30분가량 단독 인터뷰를 통해 이명박 정부 5년을 정리하며 남북 관계 및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속내를 털어놨다. 북한과의 접촉 과정에서 있었던 민감한 얘기까지 꺼낸 것은 차기 정부에서 '통일 한국'으로 가는 대북 정책을 펴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이 북한의 운명 쥐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인 '비핵·개방·3000'이 성공했다고 보나.

▶북한이 아무리 핵을 개발하고 로켓 운반수단인 미사일 개발에 많은 재원을 쏟아붓더라도 핵과 미사일을 쓸 수 없게 만드는, 무력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거리를 300㎞에서 800㎞로 연장한) 한미 미사일 지침으로 북한 핵문제 핵미사일 위협 대응책을 만들었다.

또 북한이 변하지 않고는 더 버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놨다. 시장의 확대, 외부 정보의 유입, 이런 것을 통해 북한 주민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이런 변화는 북한의 미래, 북한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차기 정부는 더 유연하게 대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대북 지원액이 45억 달러이다. 그렇게 많이 지원했음에도 핵실험은 핵실험대로 하고, 참여정부 때만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북 경비정이 40번 침범했다. 연평도·천안함 사건은 한반도 평화 유지에 있어 우리가 북한에 끌려가지 않고, 북한이 파기하려고 해도, 교란하려 해도,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가 효과적인, 독자적인 대북 정책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제사회와 관계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 다음 정부가 감안해야 할 문제다.

-인도적 지원도 말자는 건가.

▶북한이 지원을 거부한 사례가 많고 연평도 포격은 대북 지원 물품을 싣고 가는 중에 일어났다. 우리의 고민은 식량 지원이 북한의 변화, 시장 확대를 통해 일어나고 있는 모든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점이다. 북한의 시장을 죽이는 정책을 취할 것이냐, 활성화하는 방향이냐가 중요한 고려 요소이다.

-그러면 다른 대북 정책 수단은 뭔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대북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국제적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힘도 상당히 있다. 우리가 어떻게 대북 정책을 정하느냐에 따라 북한의 운명이 달려 있다. 5·24 조치로 북한의 외화 사정을 어렵게 했고, 그 때문에 북한이 해외에 대규모 노동자를 파견했고, 외화벌이를 위해 북한이 국내에 써야 할 석탄을 대규모로 중국에 수출하고, 여러 가지 자구책을 취했다. 앞으로 더 할 여지가 있다. 금융·해운 제재도 있다. 북한에 취항하는 선박에 대해 무조건 우리 항구에 6개월 못 들어 온다고 하면 북한의 정상적인 무역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계속 개발하면 북한이 각오해야 할 조치들에 대한 많은 카드를 우리는 갖고 있다.


■"북한 내부 동요 심각한 수준"

-김정은 체제 안착 수준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나.

▶오늘내일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 겉으로 멀쩡하게 평탄하게 후계 체제가 정착한 것으로 보이지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 북한의 경제난, 인플레, 양극화, 시장의 확대, 정보 확산이 합쳐져 내부에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변화를 막기 위해) 검찰 등 사법기관을 총동원해서 공안폭압통치를 하고 있다.

-김정은의 군부 통제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정은이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강화했다. 군단장급 이상을 충성심을 기준으로 인사하고 세대교체 했다. 군심을 흔들어 놨고, 불만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두고 봐야 한다.

-중국이 결정적인 순간에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체제 안정과 비핵화 두 가지 대북 정책 목표가 있다. 우선순위를 북한의 체제 안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중국이 북한의 급격한 체제 붕괴를 수용할 준비가 덜 돼 있다고 봐야 한다. 중국 내에 북한이 개혁해서 살아남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남북 정상회담은 결국 안 됐다.

▶임태희 실장이 (대북)접촉을 한 뒤에도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상회담의 대가를 지불하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리를 식량창고 아니면 현금지급기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진전이 안 됐다.

5년 전 이명박 당선인 인수위 시절에 북한이 박근혜 당선인에게 제스처 하듯이 이명박 정부와도 잘 해보려고 취임식에 특사를 보내려고 했다. 북한이 선거 막판에 비판을 안 해 이명박 정부 탄생에 공을 세웠으니 감사하다는 내용의 친서, 즉 초청 서한에다 당선에 기여한 공로를 평가하는 내용을 담아달라고 해서 거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은 직접 봤나.

▶봤다. 외교안보라는 것이 비밀이 많다 보니까. 대한민국의 품격을 위해 공개 안 되는 것이 좋다. 대통령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위해서도 공개 안 되는 것이 좋다.

-미국에 경도된 외교 정책이라는 비판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주 만나는 정상이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였다. 예전에는 의례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한중 정상이 북한의 미래, 한반도의 장래 문제를 논의하는 단계다.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지만, 한중 정상이 만나서 북한의 미래와 통일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논의하고 있다. 중국이 북에 투자할 때 (우리에게) 물어본다. "이런 것 저런 것 해도 되겠느냐"고 다 물어본다.


■"부산은 국제화로 승부 걸어야"

-부산이 박람회나 하계 올림픽 유치를 희망한다.

▶부산의 활로는 국제화다. 인구가 되고 입지조건이 홍콩, 싱가포르 못지 않다. 산업기반도 있고. 부산의 국제화에 더 신경을 쓰고 투자한다면 여러 가지 발전을 이룰 여지가 있다. 큰 행사를 유치하고 박람회를 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되고, 국제화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동북아시아에 국제도시로서 입지가 부산만한 데가 없다.

-부산이 국제금융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금융 분야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느냐. 서울에 몰려있는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소말리아 해적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은.

▶ 아덴만 작전 이후에 우리 선박이 해적에 납치된 적은 없다. 소말리아 정부가 무법천지 같은 곳에 공권력을, 실효적 통치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는 소말리아 영토 내에 있는 해적 단체를 컨트롤하지 못한다. 해적들이 다른 방법으로 살아갈 길 만들어 줘야 한다.

-외교관을 꿈꾸는 고향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외교에서도 부산 사람의 기질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한미 미사일 지침 같은 것은 부드러운 사람에게 맡기면 못 할 일이다. 밀양 산골에서 나무하고, 고교 대학 부산에서 나온 나도 외교관하고 외교안보수석 한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은

스스로 '촌놈'이라고 부를 정도로 소탈한 성품이지만, 외교가에서는 다자외교의 전문가로 알려졌다. 1977년 외무고시에 합격, 35년간 외교무대를 누볐고, 한국의 외교·통일·안보 정책의 최고 사령탑에 올랐다. 솔직하고 직언을 피하지 않는 스타일로 지난 대선 과정에서 여야 간에 불거진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과 관련, 국회에서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록'을 봤다고 답변해 야당으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시골 아저씨 같은 외모와는 달리 와인이나 프랑스 요리에도 정통하다. 부인 김영순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 둘이 있다.

▷1952년 밀양 출생 ▷동아고 ▷부산대 불어과 ▷미국 콜럼비아대 국제학 석사 ▷외무고시 11회 ▷외교정책실장 겸 6자회담 수석대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주영국대사 ▷외교부2차관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