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차기 정부는 최우선 과제로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부산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4·11총선을 앞두고 부산도시철도 서면역에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공약 채택을 촉구하는 캠페인 장면. 국제신문 DB |
# 분권정책 실패한 이유
- 참여정부 기득권 세력 반발
- MB정부는 '국가' 단어 뺀
- 지역균형발전법으로 격하
# 법적 시스템 만드려면
- 중앙-지역, 재정·권한 분배
- 헌법에 '분권형 국가' 명시를
- 비수도권 유권자 힘 모아야
지방자치제 부활 20년을 맞은 올해. 비수도권은 왜 다시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외치나. 시민사회는 "생존권 위기에 내몰린 아래로부터의 요구"라고 정의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는 2000년 2207만 명(전국의 46.3%)에서 2011년 2498만 명(49.3%)으로 늘었다. 전국에서 차지하는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은 2000년 47.7%에서 2010년 48.9%로 증가했다. 그만큼 지역의 몫은 쪼그라들었다. 수도권 집중 심화가 지역의 양극화로 연결된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균형발전 정책을 대부분 폐기하거나 축소했다.
전문가들은 1일 "국가 운영의 중심축을 균형발전과 분권에 두지 않고서는 비수도권의 소외감이 해소될 수 없다.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이 그 첫걸음"이라고 진단했다.
■'지방분권' 정책 왜 실패했나
차기 정부는 최우선 과제로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부산도시철도 서면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공약 실천 촉구를 위한 캠페인 모습. 국제신문DB
참여정부는 균형발전을 국정 과제로 채택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현 지역발전위원회)가 설립됐다. 3대 균형발전특별법인 ▷국가균형발전법 ▷지방분권법 ▷신행정수도건설법이 탄생했다. 비수도권 17곳에 혁신도시와 세종시·기업도시를 조성하는 계획도 수립됐다.
그러나 수도권 이익을 지키려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은 초반부터 거셌다. 특히 한나라당(새누리당)은 행정수도 건설이나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대한 거부 반응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언론들도 일제히 신행정수도 건설 반대 논리를 펼쳤다. 헌법재판소 역시 이른바 '관습헌법'이란 새 판례를 내면서 위헌 결정했다. 서울대 김순은(행정대학원) 교수는 "참여정부 초기에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정권 후반기에는 중앙부처 관료들의 조직적인 행정기관 이전 반대 움직임으로 분권 정책이 무력화됐다"고 분석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균형발전 정책을 뼈대부터 흔들었다. 국가균형발전법은 '국가'를 뺀 지역균형발전법으로 바뀌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국가균형'을 없앤 현 지역발전위원회로 개명됐다. 이명박 정부의 첫 지역발전위원장은 정부 부처의 지방 이전 반대운동을 주도한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 공동대표 출신이었다. 지금까지 혁신도시 건설사업이 끝난 도시가 없다는 점은 MB정부의 지방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헌법과 국정철학을 바꿔야
전국 100여개 단체가 참여한 지방분권 전국연대는 최근 대선 후보들에게 11대 정책 의제를 대선 공약에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정책 의제의 첫머리는 지방분권형 개헌이다. 분권형 개헌이란 중앙의 재정과 권한을 지역이 동등하게 나눠갖도록 '대한민국은 분권형 국가'라는 점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것이다. 연방정부 아래 독자적인 자치입법·사법·행정권을 가진 지방정부로 구성된 미국·독일식 시스템과 유사하다. 국가는 외교·안보·통상·국방·내셔널 미니멈(국민의 기본적 삶의 수요에 대한 최저 기준선)을 담당하고 나머지는 지방정부에 넘기는 모델이다.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상원제 설치 역시 헌법 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황한식(부산대 교수) 상임위원장은 "역대 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은 끊임없이 헌법적 차원의 한계에 부딪혀왔다. 심지어 지방자치의 미명 아래 중앙집권주의가 강화되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며 "차기 정부는 내년까지 헌법과 법률을 지방분권형으로 개정해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지방분권 의제를 대선에 반영하려는 정치권의 노력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부산의 한 재선 국회의원은 "야권 후보 단일화와 정치쇄신이 당락을 좌우할 뜨거운 감자가 된 상태에서 후보에게 '지방을 강조하라'고 주장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결국 '지방이 사느냐'의 선택은 비수도권 유권자들에게 달렸다. 전국시·도의장협의회 공동회장인 김석조 부산시의회 의장은 "그동안은 중앙정부에서 주는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왔지만 이제 지역의 모든 세력이 뭉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대선 후보들의 지방분권 공약을 보고 표로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재율 지방분권 전국연대 공동대표 기고
- 법 제정도, 돈 쓰는 권한도 중앙정부가 독점
- 중앙집권형 행정체제 강행, 풀뿌리 동네자치까지 훼손
- 정책적 과제들 추진되려면 유권자가 좋은 일꾼 뽑아야
장면 1. 어느 구청 복지담당 부서 공무원들이 원탁에 둘러앉았다. 심각한 얼굴들이다. "중앙정부가 무상보육 정책을 시행하면서 재정은 수천억 원이나 지방정부에 떠넘겨버리니 참…." "국세와 지방세 비중이 8 대 2인데, 중앙정부에 대한 재정의존도는 1995년 22.2%에서 2008년에는 38.3%로 더 높아져 버렸어." "그래,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1995년 63.5%에서 2008년에는 53.9%로 더 떨어지고, 지방에서 필요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이구동성으로 "이것 참 큰일 났네"하는 반응들이다.
장면 2. 막 취임한 시장과 해양수산단체 임원들의 간담회 자리. 여러 사람이 한목소리로 부산을 해양수도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해양부시장' 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곤혹스러운 표정의 시장은 "공감은 하지만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대통령령에 광역시에는 2명의 부시장만 두도록 규정돼 있어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조례로 정하면 되지 않느냐는 한 참석자의 채근에 "조례도 중앙정부의 법률에 규정된 범위 안에서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장면 3. 통합 창원시의회에서 창원 마산 진해 출신 의원들이 삿대질하며 싸우고 있다. 통합 창원시 청사를 어느 지역에 건설하느냐를 두고서다. 급기야 통합 창원시를 예전대로 분리하자는 결의안까지 의회에 상정·통과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방청석의 주민과 시민단체 관계자의 분노와 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쯧쯧, 그렇게 졸속하게 통합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는데. 정부가 주민 뜻도 제대로 안 물어보고 급하게 통합을 밀어붙이더니, 이게 무슨 꼴이람."
장면 4. 읍내 시장 국밥집. 어르신들이 막걸릿잔을 나누며 어떤 사람들을 나무라고 있다. 누구, 누구, 또 누구…. 듣고보니 역대 군수 이름이다. "그놈 자식들 어째 한 명도 제대로 붙어있는 놈이 없어 그래." "전부 뇌물 받아먹고 감옥 가고 도대체 선거를 몇 번이나 해야 되는 건지 내 참." "그게 다 공천받는다고 윗사람한테 상납한 거 메꾼다고 그리 된 거지." "다른 지역사람들한테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들 형편이라니까."
장면 5. 어느 대학 도서관 앞 벤치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너 그 회사 지원한 거 어떻게 됐어."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 우리 같은 지방대 출신이 대기업 입사하기가 어디 쉽나. 그렇다고 집에 돈이 많아서 외국연수 같은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참, 너는 공기업 준비한다더니. 그건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하더니만." "그래 말이야 휴…." "그런데 내 고등학교 동기 하나는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서울 사립대 출신인데 그 대기업에 합격했대." "야, 그러니 빚을 내서라도 서울로 가야 사람 대접받는 거라."
장면 1~5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고, 부모이고, 자식이고, 이웃이다. 우리나라는 법과 규칙을 만드는 권한도, 돈을 거두고 쓰는 권한도 모두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있다. 풀뿌리 동네자치까지 중앙 정당에서 개입해 주민 주권을 훼손시킨다.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분권형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집권형 지방행정체제 개편만 강행하고 있다. 지역 대학은 고사상태에 빠지고, 인재는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경제·문화·언론 등 수도권 집중은 심화되고 있다.
신공항 건설 무산도, 해양수산부 폐지도 결국 중앙집권적이고 수도권 집중적인 정책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국정의 핵심과제로 선정한 지난 참여정부에서도 자치입법, 자치재정, 기초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 자치경찰, 지방대학 육성이 중앙 정치권과 관료들의 저항에 부딪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경제 민주화, 일자리 창출, 복지 강화, 국민통합 등 요즘 거론되는 과제들도 지방분권·균형발전과 함께 정책적인 연계를 통해 추진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수레의 양 바퀴와 같은 것이다. 이 수레가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앞에서 올바르게 끌 수 있는 좋은 일꾼을 뽑아야 한다. 힘차게 수레를 밀 유권자들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점이다.
-끝-
지방분권 11대 정책 의제와 주요 내용 |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 |
- 대한민국이 분권국가임을 헌법에 명시하고 행정·조직·재정분권 실행 계획 제시
- 지역균형발전의 가치를 헌법에 명시하고 실행 수단 제시
- 양원제 도입(지역대표형 상원 설치)
- 국민발안·국민투표제 등 국민참정권 확대 |
기관위임사무
폐지 및 자치입법·조직권 강화 |
- 지방이양일괄법 제정해 중앙의 인사·재정·조직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
- 특별지방행정기관 기능 이관
- 자치입법권 범위 확대
-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
자주재원 확충을 통한 지방재정
역량 강화 |
- 국세의 지방세 이전
- 지방소비세 확대와 지역 간 재정균형 확보
- 포괄보조금 확대를 통한 지방재정 확충
- 분권교부세를 개편해 자치단체 부담 완화
- 지방재정 분권을 위한 장단기 계획 수립 |
기초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 |
- 생활자치와 동네자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선거법 개정 |
분권·동네자치
중심의 지방행정체제 개편 |
-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시·군·구 합병 반대
- 주민자치를 퇴보시키는 특별시·광역시의 자치구 폐지 중단
- 기초생활자치 단위인 읍·면·동의 자치기능 강화와 준자치단체화 |
자치경찰제 도입 |
-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2원적 경찰행정체제 확립 |
지역언론과
지역문화 지원 |
- 지역문화진흥법을 통한 지역문화지원 법제 개편
- 지역언론 지원 및 육성을 위한 법제 개편과 정책 강화 |
지역생활복지
기준선 운영 |
- 국민생활복지 및 3대 유형별 지역생활복지 기준선 수립
- 근린생활복지 및 중·광역권 생활복지 기준선 운영 취약지역 지원
- 중앙정부 차원의 커뮤니티 뉴딜 정책(결핍 기초생활권 재생법 제정 및 추진)
- 소지역 복합결핍지수 개발을 통한 결핍지역 지원 강화 |
지방대학·
지역인재
육성 |
- 지방대학육성특별법 제정 및 등록금 획기적 감면
- 지방거점국립대학 육성 및 국립대 네트워크화
- 지방사립대생에 대한 학비 지원 등 준공립화
- 지방소재 공공기관의 지역인력 채용 의무화(전체 신규 고용의 30%) |
합리적인
수도권 관리
체제 운영 |
- 규제 완화가 아닌 수도권의 합리적 관리 위한 제도와 기구 설치
- 비수도권 균형발전 영향평가제 운용
- 수도권정비계획법과 지역발전법의 연계 통한 균형발전 강화
- 수도권-비수도권의 수평 재정조정제도 도입 |
강력한 지방분권 추진기구 설립 |
- 대통령 직속 기관 신설해 실질적인 분권형 국정 추진 |
※자료=지방분권 전국연대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