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내 대선 패배의 위기감이 급속도로 확산되며 '새판짜기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4일 오후 경제민주화 논의를 위해 개최한 의원총회는 대선 위기감을토로하는 동시에 박근혜 대선후보를 비롯한 당 전반의 고강도 쇄신을 촉구하는 자리를 방불케 했다.

　특히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은 유승민ㆍ남경필 의원이 이날 의총에서 "박 후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꿔야 한다"고 촉구한 데 이어 상당수 의원들이 호응, 쇄신론이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을 불과 76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자칫 당내 갈등ㆍ분열로 비칠 수 있는 주문이 쇄도한 것은 무엇보다 현상태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급격히고조됐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때 "바뀌지 않고는 안된다"는 밑바닥 민심을 확인한 의원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이다.

　박 후보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뒤지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달아 나오고 하락한 박 후보의 지지율이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ㆍ안 후보의 야권후보 단일화를 이번 대선의 '상수'로 놓고 대선에 임해야 한다는 게 적지않은 의원들의 판단이다.

　하지만 박 후보 본인은 야권후보 단일화를 정면돌파할 수 있는 행보ㆍ메시지ㆍ정책을 내놓지 못했고, 당 지도부 및 측근그룹 역시 무력한 모습만 되풀이 했다는 게 당 일각의 시각이다.

　실제로 박 후보의 유신 및 인혁당 관련 발언을 놓고 의원들의 우려는 확산돼 왔고, '인혁당 발언 관련 사과' 논란 끝에 홍일표 의원이 대변인직을 사퇴하면서 당내'박근혜 불통 논란'은 재연됐다.

　또한 중앙선대위 인선 과정에서 국민대통합을 상징할 인선 결과물이 현재까지 전무하다는 점도 우려를 증폭시켰다. 오히려 '돌고 돌아 친박 인선'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나아가 박 후보가 추석 연휴를 전후해 강세지역인 영남권을 집중 방문하고 대선국면을 주도해 나갈 각종 메시지와 이슈를 발굴해내지 못하는 등 '전략 부재'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 상태다.

　따라서 친박그룹이 박 후보 주변을 포진하는 이상 박 후보가 '박근혜 대 박근혜싸움'에서 이겨낼 수 없다는 전망도 있다. 이는 유승민ㆍ남경필 의원의 '친박 2선 후퇴론'과 맥이 닿아있다.

　남경필 의원은 전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전략을 예로 들며 "동교계를 몽땅 2선 후퇴시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전면배치해 공석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도 하지 않았느냐"고 밝혔다 .

　따라서 이날 의총에서는 박 후보의 인식 대전환과 친박 2선 후퇴를 포함한 백지상태에서의 '새판짜기' 방안이 제기됐다. 당 대선조직이 '박근혜 개인 플레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린 것이다.

　선대위 부위원장인 유승민 의원은 "후보를 빼고 모든 사람이 총사퇴,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하자"며 "선대위 재구성을 비롯해 후보에게 전권을 백지위임하자"고 주장했다.

　5선이자 소장ㆍ쇄신그룹을 이끌다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은 남경필 의원은 "야권은 단일화를 통해 업그레이드 될 것이므로 2002년 대선보다 더 심각한 위기"라며 "자리를 비우고 일할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며 전면쇄신을 위한 박 후보의 결단을 촉구했다.

　'화합 선대위 인선'을 상징한 이들 두 의원이 직을 내놓을 수 있음을 내비치며 배수의 진을 친 모양새다.

　여기에 친박계 핵심이자 수도권 재선인 윤상현 의원은 "이렇게 안뛰는 선거조직은 처음봤다"며 "정말 일할 의지가 있고 역량있는 사람들, 4050 전문가 그룹에 문호를 열고, 후보도 비례대표를 사퇴하고 지방에 내려가 민생을 챙기며 뛰는 모습을 보여야 지지율이 반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지역 재선인 김성태 의원은 "후보가 '몸빼' 입고 머리를 풀고서라도 처절한진정성을 가져야만 야권 단일화 이슈를 뛰어넘을 것"이라며 "선거에 진 뒤 당 지도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바꿀 수 있는 것은 다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용태 의원은 "야권 단일화는 반드시 되고 이 경우 새누리당은 반드시 패배한다"며 "항간의 친박 2선 후퇴론은 당연한 것이며, 이것만으로는 이미 기울어진 판을바꿀 수 없다"며 개헌 등을 통한 통치구조 개편 등을 제시함으로써 대선판 자체를 바꿀 것을 제안했다.

　여기에 새누리당 텃밭인 TK(대구ㆍ경북) 지역 의원들마저 '대선 위기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PK(부산ㆍ경남)가 흔들리는 것으로 나타난 만큼 TK도 예외일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구 출신인 김희국 의원은 "박 후보는 고군분투하고 주변은 점수를 까먹는다, 당내 경제민주화 등을 놓고 더이상 싸우면 안된다, 새인물에 경직돼 있다, 2040에 어필할 전략이 없다, 양자구도를 상정한 전략을 짜야 한다 등의 다섯가지가 지역구민의 요구사항"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박 후보가 다양한 '쓴소리'를 어떻게 소화할지 주목된다. 선대위 요직에 포진한 친박 인사 교체 여부, 비박(비박근혜)계를 대표하는 정몽준ㆍ이재오 의원 '끌어안기' 등이 당장의 관전 포인트다.

　일각에서는 선대위 인선을 비롯한 대선행보 곳곳에 박 후보 본인의 결단이 묻어있고 자칫 대선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전폭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한 대선 조직에 '친박 공백상태'가 발생하거나 당 지도부가 물러날 경우 경우현실적으로 이를 채울 마땅한 인사가 없다는 '대안 부재'도 당 일각에서 제기된 상태다.

　박 후보는 지난 2일 주재한 '추석민생 및 선거준비상황 점검회의'에서 "후보 빼고는 다 바꾼다는 심정으로 가야 한다"는 남경필 의원의 언급에 "자꾸 부정적으로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가는 것은 오히려 선거를 망치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친박계 핵심관계자는 "박 후보 옆에서 전횡하는 일부 참모진의 교체를 겨냥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 후보의 비서실장인 최경환 의원은 이날 의총 직후 친박 2선 후퇴론에 대해 "개인 입장으로는 언제든지 물러나고 싶다"며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