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4학년 강혜련(여·27·가명) 씨는 요즘 부모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 벌써 9년째 대학을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강 씨는 D대 2년을 다닌 뒤 재수해 부산대에 다시 입학했다. 이어 강 씨는 목표로 하는 금융권 취직이 생각만큼 쉽지 않자 휴학을 두 번 했다. 졸업예정자가 취업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졸업을 미룬 것이다. 강 씨는 토익 등 스펙을 갖출 만큼 갖췄는데도 지방대생인데다 여자란 점이 핸디캡으로 작용한 탓인지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져 취업준비생 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강 씨는 "올해 초 아버지께서 명퇴했고 남동생이 군에서 제대해 복학을 앞두고 있어 경제적인 부담이 커졌다"며 "너무 오래 대학을 다니는 게 눈치가 보여 책값과 용돈을 벌기 위해 지난달부터 영어 과외를 시작했다"고 한숨지었다.

초등학교 교사 이영인(여·29) 씨는 지난달 두 번이나 울산을 다녀왔다. 친구 소개로 맞선을 보기 위해서다. 이 씨는 지난 1월 초 친구들과 어울려 서울까지 원정 소개팅을 갔다. 이 씨는 "울산과 창원에는 대기업이나 연구소 등 소위 잘나가는 직장을 다니는 남자가 많다"며 "하지만 부산에는 제대로 된 직장이 적다 보니 소개팅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래서 20, 30대 여성 사이에선 젊고 유능한 남자를 만나려면 부산을 떠나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부산이 미래가 어두운 도시로 변하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젊은 층이 부산을 떠나 대기업 등이 집중된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 특히 부산은 20, 30대 고용률과 경제활동인구가 전국 최저 수준이다.

■일할 곳 없는 부산 '2030'

통계청의 집계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부산의 20대 고용률(생산가능 연령인 15세 이상에 해당하는 인구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50.2%로 16개 시·도 가운데 전북 다음으로 낮다. 경남 역시 57.1%로 하위권이다. 대기업이 많은 울산은 그나마 60.0%로 수도권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은 서울 61.3%, 인천 61.1%, 경기 60.6% 등 동남권 보다 월등히 높다.

경제활동참가율(생산가능 연령인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취업자와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마찬가지다. 2011년 기준 부산의 20대 경제활동참가율은 54.9%로 전북에 이어 15위다. 경남은 60.8%로 하위권이며 울산은 63.5%로 조금 높다. 반면 수도권은 서울 66.8%, 인천 67.7%, 경기 65.1% 등으로 동남권과 격차가 크다.

30대는 실정이 더 심각하다. 부산의 30대 고용률은 68.1%로 16개 시·도 가운데 꼴찌다. 울산은 72.2%, 경남은 71.5%로 부산보다 높지만 서울(73.6%) 인천(72.6%) 경기(71.8%)보다는 낮다. 부산의 30대 경제활동참가율은 70.8%로 고용률과 마찬가지로 꼴찌다. 울산은 73.9%, 경남은 73.3%로 부산보다 높지만 서울(77.4%) 인천(75.2%) 경기(73.9%) 등 수도권과는 격차를 보이고 있다.

부산지역 20, 30대 고용률과 경제활동참가율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더 악화됐다. 부산의 20대 고용률과 경제활동참가율은 2011년 각각 50.2%와 54.9%로 2008년보다 5.7%포인트와 5.8%포인트씩이나 떨어졌다. 30대도 2011년 68.1%, 70.8%로 2008년보다 1.9%포인트, 2.2%포인트 하락했다.

■젊은층 수도권 탈출 러시

인재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그 도시의 현재 수준과 미래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부산의 현실이 어떠한가. 부산은 미래를 짊어질 20대, 30대 인재 유출이 심각하다. 부산의 인재난은 부산이 처한 총제적인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잣대가 되고 있다. 청년실업이 심화하고 대학의 기능이 '취업'으로 변하자 수도권 대학의 선호현상이 심화된다. 여기에는 정부의 수도권 대학 중심의 정책이 한몫한다. 부산대 신경철(고고학과·사진)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가 시행해온 '누리사업(지방대학혁신역량강화사업)' 등과 같은 지역 대학을 육성하는 정책을 대부분 폐기했다"며 "지역 대학을 위한 정책은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대학 교육에도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용해 결과적으로 수도권 대학을 더욱 키워놓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신 교수는 국립대 지원금 규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작년 국가가 부산대에 지급한 지원금은 1406억 원으로 서울대(3235억 원)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10개 거점국립대(서울대 부산대 경상대 경북대 전남대 전북대 충남대 충북대 강원대 제주대)에 대한 정부 지원금 총 1조3974억 원 중 서울대 예산 비중은 23%다. 10개 지역거점국립대의 지원금 4분의 1에 해당하는 예산을 서울대가 가져가고 있다. 반면 부산대는 10개 거점대의 10% 수준이다.

연도별 국립대 지원금 규모도 부산은 2009년 1375억 원, 2010년 1277억 원으로 감소하다 2011년 1406억 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하지만 서울대는 2009년 2967억 원, 2010년 3152억 원, 2011년 3235억 원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지난해 주요 대학의 정부지원금(경상비 제외)을 보면 부산대는 863억 원으로 서울대(2988억 원)는 물론이고 사립대인 연세대(1457억 원) 고려대(1269억 원)보다 적다. 신 교수는 "일반 국고보조금뿐 아니라 고등교육 인력양성사업인 BK21사업 등 정부 목적사업에서도 서울대와 일부 수도권 사립대가 독식하고 있으며 이명박 정부 이후 더욱 심해지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가 기껏 내놓은 게 국립대 선진화 방안인데, 이 역시 비수도권 대학이 절대 불리한 취업률을 지원근거로 하고 있으며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지원하지 않는다고 협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혁신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등 목청이 째져라 외쳐도 소용이 없어요. 가족을 고스란히 수도권에 남겨두고 단신으로 지역에 내려올 뿐 입니다. 주된 이유는 자식 교육 때문이지요. 서울 일극체제가 심화되면서 사교육비가 치솟아 가계소득의 35%를 차지하고 있어 서민은 가랑이 찢어질 상황이고요. 대한민국 제2의 국립대인 부산대가 '지방대'로 치부되는 상황에서는 이런 병폐의 치유는 불가능합니다."

신 교수는 "수도권 팽창을 막고 과열된 진학 열기를 해소하기 위해선 '지역국립대특별법' 제정 등과 같은 지역 거점 대학 육성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