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 나흘 만인 이날 정상업무에 복귀했다. 연합뉴스

- 북한 운영 대남 선전 사이트, 문민정부 조문파동 거론하며 "예의 모르는 자 대가 치를 것"
- 정부 "조문단 논란 이어지면 향후 남북 관계에 도움 안돼"
- 조문정국 싸고 남북 갈등과 남한내 의견 충돌 확산 우려

북측이 23일 남북 관계의 민감한 부분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조문 문제를 본격 거론하면서 17년 전 김일성 주석 사망(1994년) 당시와 비슷한 조문 파동이 재연될 조짐이다.

■北, "南 당국은 인륜 도덕도 몰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대남선전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논평에서 "17년 전 문민정권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남조선 당국이 선임자들의 전철을 또다시 밟는 경우 북남 관계에 어떤 엄청난 파국이 들이닥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우리 존엄을 모독하고 동족으로서의 초보적인 례의와 인륜도덕도 모르는 자들에 대해서는 단단히 계산하게 될 것이며 두고두고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주석 조문을 둘러싼 문민정부 당시 파동을 직접 거론한 것으로 사실상 조문 정국을 둘러싼 남북 갈등을 예고한 것이다.

이 사이트는 또 "남조선 당국이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남조선 단체들과 인민들의 조의 방문길을 막지 말아야 하며 당국 자신도 응당한 례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 및 정부 당국, 즉 류우익 통일부 장관의 '북한 주민들에 대한 위로'를 남측 당국의 '조의'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동포애를 강조한 이날 논평은 북측 당국의 섭섭한 속내를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사이트가 "재일동포조문단에 이어 새로 꾸려진 재중동포조문단, 재미동포조문단, 유럽지역 동포조문단, 캐나다지역 조문단 등 수십 명의 해외 조문단 대표들이 24일과 27일 평양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힌 점에서도 이 같은 기류가 읽힌다.

■통일부 "조문단 논란 도움 안돼"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민간 조문단 파견 문제로 계속 논란을 이어가는 것은 향후의 남북 관계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통일부 대변인 정례 브리핑에서도 "정부는 남북 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 국민들의 정서 등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하여 정부 방침을 밝힌 바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그것에 대해 어떠한 변경도 가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려되는 부분은 조문 논란을 둘러싼 남남 갈등이 예고된다는 점이다. 시민사회와 정부의 방침이 충돌하는 현 상황을 보면, 1994년처럼 또 다른 조문 파동을 낳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일관계법을 강의하는 동아대 하태영 로스쿨 교수는 "아쉬운 점은 정부가 조문 정국을 평화와 화해 분위기로 승화할 수 없다는 점인데, (사실은) 차기 정부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7년 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정부가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는 조의를 표했고, 조문도 일괄적 불허가 아니기 때문에 극단적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주석 사망 당시의 조문 파동은 국회에서 비롯됐다. 민주당 이부영 의원은 당시 국회 외무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같은 민족으로서 우리 쪽에서 조문단을 파견하거나 그것이 안 된다고 하면 조문의사를 표시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지 않느냐"고 제안했다. 여기에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회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등은 조문단 파견 의사를 밝혔고, 정부는 조문단 방북 불허방침으로 맞서면서 갈등은 불길처럼 번졌다. 여기에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가세했고 남측 보수층이 개입하면서 남북, 남남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