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 경제지원으로 영향력 확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외 정세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동안 설마 했던 '급변사태'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국이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이제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북한 내부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과연 북한 체제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다수의 전문가들은 권력 승계의 불안으로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듯하다. 막상 북한이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체제로의 이행을 선언했지만 권력이행의 전개에 따라 내부 혼란으로 인한 난민 발생 가능성, 핵무기의 향방을 둘러싼 불투명성 등으로 정세가 긴박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들이다. 또한 김정은이 아직 20대의 어린 나이로 후계작업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점, 북한 국내 경제도 심각하게 피폐해 있는 점 등이 이런 추론을 하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쉽지 않지만 북한 체제는 적어도 단기간에는 내부 결속을 다지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더 크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김정은을 대체할 대안적 지도자가 없다. 대안 지도자는 한동안 부상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북한 체제의 속성으로 보아 김 위원장 사망을 예견하고 자기 세력을 형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기득권층은 지금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납작 엎드려 후계자에게 충성심을 보이는 것이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김정은 후계자가 기존 권력층의 기득권을 흔들지 않는 한 상당 기간 김정은 후계자를 중심으로 결속하면서 미래를 준비할 것이다. 일반 주민들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시급한 과제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이 문제를 보다 잘 해결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면, 일반 주민들 역시 김정은을 결사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중국의 역할이다. 북한체제의 안정이 자신들의 국가이익과 직결돼 있는 중국으로서는 현상유지를 선호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김정은 후계체제를 지지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더 부합된다. 중국 정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공식적인 애도의 뜻을 표명했다. 중국 외교부 마자오쉬 대변인은 "우리는 조선 인민이 일치단결해 조선의 사회주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며 "중국과 조선은 함께 노력해 양당, 양국의 전통 우의를 공고히 해나감으로써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 안정에 적극적인 공헌을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 후계체제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 입장은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의 북한 개입,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의 지원과 교류는 더 심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후계체제의 안정성은 단기적으로 경제문제의 해결에 있는 만큼, 더욱 적극적인 경제교류협력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것이다. 김정은의 후계계승 작업을 막후에서 지원해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대표적인 친중인사이다. 그는 김정은의 후견이지만, 장성택의 후견인은 중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중국이 김정일 사후 이해관계와 영향력을 확대하기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임을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올해 중국을 3차례나 방문했고, 내년 강성대국 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한 남다른 집념을 보이고, 노력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의 올해 현지지도는 그 어느 때 보다 많았으며, 또 집요하게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산업 역군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중국과의 교역이나 투자협력 확대뿐만 아니라 정치군사교류도 활발하게 추진했다. 그는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사망 이후 협력을 중국 지도부에게 요청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을 비롯해 남한 정부와도 관계 개선을 도모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중국에 대한 경제, 정치적 의존도를 높혀갔던 그로서는 중국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는 판단을 했을 법하다. 더구나 그가 공언한 2012년 강성대국 진입과 권력승계 절차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정치적 지지와 경제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보다 일찍 사망했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죽음 이후를 대비한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런 분석이 맞다면 우리 정부의 향후 대응은 중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 관련 국가 및 국제 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는 것도 요구된다. 특히 중국과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 동시에 김 위원장 사망에 따른 권력과 민심의 우려와 혼란이 우리에게도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 만큼 북한 내부 체제의 조기 안정과 남북대화 채널과 관계를 복원하는 혁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경남대 극동문제 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