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이 2010년 7월 아름다운가게 명륜동역점에서 열린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에 참여해 직접 물품 판매에 나서고 있다. 박 회장은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했다.

- 美 갑부들 기부문화 정착, 한국은 사법적 단죄 사면용
- 개인들도 잇단 나눔 선언…박순호 회장 "즐거움 느껴야"
- 김수환 추기경 때 '반짝 유행'…일회성 관심 되풀이 안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1500억 원대 기부 충격파가 정치권을 넘어 경제계와 시민사회로 반향을 넓히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대권행보 등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 척박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나눔운동' 확산에 새로운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모아진다.

■새로운 기부의 시대를 열다

	정철원 (주)협성종합건업 사장이 지난 3월 사재를 출연해 만든 기금으로 협성봉사상을 제정, 제 1회 시상식을 가졌다. 국제신문 DB

지난해 8월,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등 미국의 억만장자 40명이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의 재산은 모두 3000억 달러(약 360조 원)에 이른다. 약 1500억 달러가 사회에 기부되는 셈이다. 미국 동부의 명문사립 8개 대학(아이비리그) 가운데 하버드 예일 코넬 브라운 다트머스 등 5개 대학은 기부자의 이름을 따 대학명을 삼았다.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 등으로 세계 유일 초강국으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지만 미국은 기부문화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도 정치인 기업인들의 기부가 가끔씩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부의 축적 과정 등에 대한 비판이나 사법적 단죄를 감경해주는 데 대한 감사의 표시 정도로 이해됐다. 자발적 실천에 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임 의식)가 아니라 등 떠밀려 하는 것으로 평가된 것이다.

안 원장의 기부가 새로운 이정표로 환영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 원장의 경우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 무료로 사용자들에게 배포하는가 하면 자신이 만든 회사의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등 그동안 나눔에 대한 철학을 실천해 왔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의 철학을 보여줬다는 데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부산 기부문화 확산 계기로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김옥희 대리는 "안 원장의 기부 이후 자식들의 이름으로 물품을 기부하고 싶다거나 기부 방법을 묻는 전화가 매일 여러 통 왔다"면서 "장기적으로 기업인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기부문화 확산에도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 원장의 기부 이후 트위터에서는 "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연말 소득 1%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겠습니다" 등의 개인적 기부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2009년 2월 설립된 부산시 산하 사회공헌지원센터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지역 기업들의 사회공헌 실적이 8만8253건에 3억5262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737건 4523만 원, 2009년 566건 5650만 원에 비해 건수와 금액 모두 크게 늘어난 것이다.

경제전문지 포브스 아시아가 선정한 '아시아 최고 기부자' 48인에 선정되기도 했던 세정그룹 박순호 회장은 "기부를 통한 즐거움을 직접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고액 기부자들이 많이 나와 다른 기업들에 자극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부에 대한 관심이 '반짝 유행'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당시 안구기증 등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잠잠해진 사례가 되풀이되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20년간 매년 100억 원씩 2000억 원의 기부를 약속한 부산의 향토건설사 ㈜협성종합건업의 정철원 사장도 "기업의 기부는 사회를 건강하게 할 뿐 아니라 미래사회에 대한 투자의 의미도 지닌다"며 "안 원장의 통큰 기부를 계기로 우리사회의 기부문화가 더 확산돼야 하고, 무엇보다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