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발전노조 주최로 열린 대규모 정전사태 관련 '발전사장 처벌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대응력 부재가 부른 人災

지난 15일 오후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한국전력이 정전의 우선순위를 정한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 높다.

16일 지식경제부와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한전은 전력 부족이 예상될 경우 건물 중요도에 따라 부하를 조정(단전)하는 '비상 수급조절 운영계획'을 매년 수립해 운영한다. 정전 우선순위는 대외비로 관리되지만 보통 ▷일반주택과 저층 아파트 ▷고층 아파트와 업무용 상업시설 ▷야구장을 비롯한 공공다중시설 순으로 알려졌다. 국가 주요시설인 군부대·공항·철도·지하철·통신·언론·금융기관·중앙행정기관·종합병원은 제외돼 있다.

하지만 정전 사태가 발생한 15일 '매뉴얼'은 무용지물이 됐다. 부산 부산진구 부암동 온종합병원은 이날 오후 4시께 전기가 차단됐다. 중환자가 많은 종합병원은 순환정전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기준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병원 측은 비상발전시설을 가동해 수술실과 중환자실의 전기 공급을 재개했지만 전산 마비로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국가기관도 지역에 따라 단전되는 수모를 당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본청은 이날 오후 4시45분부터 40분가량 정전됐지만 부산지방국세청은 정상적으로 전력이 공급됐다. 정부 부처 역시 정전된 곳이 많았다.

휴대전화 불통 사태가 빚어진 것도 '국민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시설은 전력이 차단되지 않도록 한다'는 매뉴얼을 어겼기 때문이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전국 3만여 기지국 중 이날 50여 곳이 정전돼 긴급 복구작업을 벌였다. 한전 부산본부는 "한 건물에 국가시설과 민간시설이 동시 입주했을 경우 선로가 같기 때문에 동시에 단전되는 경우도 있다"고 해명했다.

한전의 전기 차단선로 운영도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지난 8월 발표한 '전력공급시설 확충 및 운영실태' 보고서를 보면 한전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국가 필수시설에 공급되는 52개 선로와 중요시설 332개 선로를 차단하도록 설정해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중요 기관의 운영이 멈출 수 있다. 비상 수급조절 운영계획을 변경하라"고 통보했다.

전력공급 차단 순위 ※자료 : 지식경제부 구분 선정기준 비고 조정 대상 1순위 일반주택용, 저층아파트, 서비스업,  소규모 상업용 상가 예고 없이 부하조정시 피해가  적은 선로 2순위 고층아파트, 상업업무용, 경공업공단 1~2시간 예고 후 부하조정 3순위 상기 이외 중요고객 선로 1일 전 예고 후 부하조정 제외 · 행정관서, 중요 군부대, 통신·언론기관 · 금융기관, 종합병원 및 중요연구기관 등 1시간 정전 시 국민생활에 많은  피해를 야기하는 중요 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