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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 저격해 포상 받은 전우 극단 선택…전쟁은 미친 짓”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영국군 브라이언 호프

  •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  |   입력 : 2022-09-12 19:42:49
  •  |   본지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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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2세에 첫 선서 군인
- 18세때 한국전 ‘후크 고지’ 참전
- 1953년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
- 휴전협정 뒤엔 담배 교환하기도

- 전우 50년간 간호한 그의 아내
- 전쟁 비극에도 사랑 더 깊어져

- 국가 더는 죄없는 청춘 희생말라
- 분쟁 키운 권력자 직접 나서야

“한국전쟁에 투입되기 전 여러 훈련을 소화해 신체가 좋아졌지만, 정작 전우가 전사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더라.”
브라이언 호프 씨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받은 기념 메달을 들고 웃고 있다.
지난달 중순 영국 맨체스터 외곽인 하이드 지역에서 만난 영국군 한국전쟁 참전용사 브라이언 호프(89) 씨가 담담한 표정으로 70년 전 일을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전쟁은 미친 짓”

1933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호프 씨는 1952년 2월 7일 ‘더 킹스 레지먼트 리버풀’ 부대에 입대했다. 그에겐 당시 기억이 생생했다. 그가 입대하기 하루 전날 영국의 국왕이었던 조지 6세가 타계했고, 이후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했다. 그는 “입대하면 국왕에게 선서했는데, 내가 처음으로 엘리자베스 2세에게 선서한 군인이었다. 그래서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여왕은 지난 8일(현지시간) 서거했다.

호프 씨는 입대했지만, 당시 18세의 나이라 한국전쟁에는 참전할 수 없었다. 한국전쟁 초기 17세의 한 군인이 참전해 전사했고, 영국 내 어린 군인의 참전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결국 19세 이상부터 참전할 수 있다는 법이 만들어졌고, 호프 씨는 8주간 기본 교육을 받고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으로 이동해 추가 훈련을 받았다.

“자원했는데 왜 전쟁에 참전할 수 없느냐고 따졌고, 스스로 서약서를 쓰고 한국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함께 훈련받았던 전우를 먼저 보내고 나는 다른 곳으로 가면 슬플 것 같았다. 당시 이런 전우애가 나를 전쟁으로 이끌었고, 지금 생각하면 약간 멍청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1952년 8월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그는 부산에 도착했고 곧바로 서울로 이동했다. 서울에서 이틀 정도를 보낸 뒤 최전선으로 이동해 낮에는 포격, 밤에는 정찰 임무를 맡았다. 경기 연천군 장남면 일대에서 벌어진 후크 고지 전투에 투입됐다. 후크 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부터 1953년 휴전 직전까지 영국군과 미군이 네 차례에 걸쳐 중공군과의 격전 끝에 이 일대를 사수한 전투다. “당시 또 다른 내 임무는 머리를 숙이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총탄과 포탄이 쏟아져 무조건 살아야 했다. 후크 고지 전투 때는 1시간에 1000개의 포탄이 쏟아지기도 했다.”

1953년 7월 휴전 협정 이후 전사한 전우의 유해를 찾는 업무까지 맡았고 같은 해 10월 귀국했다. “휴전 협정이 된 다음 날을 아직 잊을 수 없다. 부대가 중공군과 마주쳤는데 지휘관이 사태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각자의 자리를 지키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없었고, 중공군과 악수하고 담배도 교환했다. 하루 전만 해도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였는데…. 전쟁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알 수 있었다.”
브라이언 호프(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씨가 자신의 전우인 고 알런 존스(윗줄의 오른쪽)와 고 잭 굴딩(윗줄의 왼쪽) 등과 함께 찍은 입대 기념 사진.
■끔찍하지만 아름다운 스토리

한국전쟁을 겪은 그가 전해주는 전우의 이야기는 끔찍했지만 다른 면에서 아름다웠다. 휴전 협정을 3개월 정도 앞둔 1953년 4월 21일. 호프 씨는 이름 모를 한 지역에서 전우와 함께 정찰 중 중공군과 마주쳤다.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고, 그 자리에서 한 전우가 전사했다. 호프 씨는 쓰러진 전우를 살폈지만, 피가 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머리카락을 넘겨보니 귀 뒤에 상처가 났고 총알이 빠져나간 흔적은 없었다. 전사한 전우는 존 무니 씨였다. 전우는 그를 잭이란 애칭으로 불렀다. 그의 유해는 수습됐고 현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돼 있다. “사람이 죽으면 당시의 충격이나 고통이 얼굴에 남는데, 이 전우는 평안하게 잠든 것 같았다. 아마 그 자리에서 바로 전사한 것 같다.”

브라이언 호프 씨가 영국군 부대 배지를 모아 놓은 케이스 앞에서 각 부대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
그는 오래된 한 장의 흑백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어렵사리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가 보여준 사진에는 그와 전우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손가락으로 사진 맨 윗줄의 맨 오른쪽을 가리켜 자신의 전우였던 알런 존스 씨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호프 씨와 함께 훈련을 받았던 전우로 소총을 잘 다뤘다. 그 덕분에 한국전쟁에 투입돼 저격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호프 씨는 ‘그가 귀국한 뒤 6개월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어야 했다.

“당시 지휘관은 중공군을 쏴 죽이는 병사에게 10실링(영국의 옛 화폐 단위)을 줄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게 기억이 난다. 사람의 목숨을 값으로 매기면 안 되지만 그때는 그랬다. 부대에서 처음으로 중공군을 쏴서 10실링을 받았던 그가 적군을 계속 죽여야 하는 저격수로 활동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는 한국전쟁의 피해자다.”

사진 윗줄의 왼쪽을 가리키며 잭 굴딩 씨의 러브스토리도 소개했다. 호프 씨와 다른 전우는 한국전쟁 참전 하루 전 소꿉친구와 결혼한 그를 어릴 때 결혼했다고 놀리곤 했었다. 이랬던 그가 후크 고지 전투에서 척추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총을 맞은 그는 당시 비가 내려 생긴 깊은 웅덩이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전우들은 모두 그가 전사한 줄만 알았다. 비가 그쳤고 다른 한 전우가 그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전우 2명이 그를 구했고 호프 씨는 엄호 사격에 나섰다. 이렇게 살아 돌아온 그는 일본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호프 씨는 귀국 후 우연히 한 친구에게서 그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일본의 한 병원에서 18개월 동안 치료받았고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군 병원에서 2년간 생활했다고 하더라. 상처에 고름이 차는 등 힘든 투병 생활을 이어왔는데 그의 부인이 2002년 그가 죽을 때까지 옆에서 지키고 간호했다. 전쟁이란 비극이지만 그래도 그의 마지막은 러브스토리다. 이 이야기는 사랑이란 단어 외 어떤 말로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민주주의 지켜 자랑스러워”

호프 씨는 귀국 후 선박의 보일러를 만드는 용접공으로 일했고, 버스 회사로 이직해 기사를 하다가 관리자 업무까지 맡았다. 은퇴하고 15년 전부터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와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 군인과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있다. 유엔기념공원의 안장자 사진뿐만 아니라 스토리도 함께 수집 중이다. 또 자기의 이야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이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쓰고 있다. 그는 이런 작업을 하면서 분단된 한국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2차 세계대전 뒤 전범국가인 독일은 반으로 쪼개졌는데, 또 다른 전범국가인 일본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대신 한국이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둘로 쪼개졌다. 이런 부분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그가 한국전쟁에 참여하면서 지킨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지켜진 것은 옳은 일이다. 나에게 한국전쟁은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었다. 자랑스럽다”며 “한국은 일제 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간을 겪었고, 곧바로 전쟁도 치렀다.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발전한 나라를 만든 한국인을 존경한다. 1997년 다시 방문한 한국은 놀라웠는데, 내가 서울에 처음 갔을 때 한강에는 다리가 고작 1개였지만 지금은 셀 수 없이 많다”고 덧붙였다.

호프 씨는 전쟁과 관련한 소신도 밝혔다. “세상에는 갈등이나 분쟁을 만든 사람이 직접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법이 필요하다. 권력자의 이권 다툼으로 생긴 갈등 때문에 젊은이들만 전쟁에 나가 희생된다. 이런 법이 생기면 아무도 전쟁하지 않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향후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될 계획은 없음을 밝혔다. “나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간 아내와 나의 유해를 합장해 수목장하고 싶다. 영국에서는 수목장하고 그 위에 나무를 심을 수 있다. 하나의 생명이 떠났으니 다른 생명이 그곳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과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협조를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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