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거나 스스로 알아내면서 살아가지 않는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주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다른 사람이나 도구의 도움으로 보완하는 일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일상적인 활동이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역할을 생성형 AI가 빠르게 대신하고 있다. 궁금한 것을 묻고 필요한 설명을 요청하면 AI는 여러 정보를 종합해 하나의 답변으로 제시한다. 사람이 직접 수행하던 사고의 여러 단계를 하나의 답변 안에 담아내며, 그 결과물 또한 상당히 정교하다.
과거 네이버나 구글과 같은 인터넷 검색엔진의 등장은 필요한 정보를 찾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AI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정보를 요약하고 설명을 구성하는 과정까지 지원한다. 최근에는 AI가 복잡한 논리적 추론이 필요한 문제에도 도전하고 있다.
인지과학에서는 기억이나 계산과 같은 인지 활동의 일부를 도구나 환경에 맡기는 현상을 ‘인지적 오프로딩’이라고 한다. 사전에서 단어의 뜻을 찾거나 계산기를 이용하는 것처럼 외부 도구를 활용하는 일은 사고의 부담을 줄이고 더 복잡한 문제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이는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보완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도움을 활용하는 것과 그 도움에 자신의 판단을 맡기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답변이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되는 순간, 사용자는 그 내용의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기 쉽다. 사람들이 가짜뉴스에 속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AI가 제시한 답변을 충분한 검토 없이 받아들이는 현상은 ‘인지적 항복’이라는 개념으로 논의된다. 그러나 유창한 설명이 정확한 설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더 뛰어난 모델과 검증 도구가 오류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높은 성능이 개별 답변의 타당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AI의 답변을 모두 의심하거나 모든 문제를 AI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하려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AI의 답변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판단하는 일이다. 답변이 어떤 근거에 기반하고 있는지,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에 적합한지, 다른 설명이나 반대되는 근거는 없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모든 답변을 같은 수준으로 검토할 필요는 없다. 단순한 정보 확인과 중요한 의사결정에 필요한 검토의 수준은 달라야 한다.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 정답과 풀이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어떤 근거로 답을 도출했으며 어디에서 잘못 생각했는지 되짚어 보아야 이해를 수정하고 비슷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AI를 활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답변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답이 타당한지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질문하는 능력은 과거부터 지식의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어 왔다. 과학자의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의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을 알아내야 하는지 구체화하고,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며, 얻은 결과를 근거와 비교해 설명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질문은 새로운 답을 얻기 위한 출발점일 뿐 아니라, 이미 얻은 답을 이해하고 검증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인간은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답이 명확해 보인다는 이유로 더 이상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답을 얻고도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익숙한 명제 앞에서 이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AI 시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얼마나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렇게 얻은 답을 어떻게 자신의 지식과 판단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에 있다. 답을 얻은 순간, 비로소 진짜 질문이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