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조… 지폐 금액 중 85% 차지
- 거래용 44%·예비용 79% 보유
- 10만 원 수표 불편함 해소하고
- 1만 원권 대신 일상의 화폐로
- 환수율 50% 탈세·뇌물 오명도
- 은행권 제조비 연 600억 절감
직장인 김모(43) 씨는 지난 명절 조카 세뱃돈 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5만 원권이 생기고 난 후로 1만 원권을 건네면 조카 얼굴을 보면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4명에게 5만 원씩 주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김 씨는 “5만 원권이 발행된 후 용돈 세뱃돈 경조금은 무조건 5만 원 단위로 하게 된다. 액수가 자연스럽게 상향 조정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청주에서는 인테리어 업자가 한 식당 카운터 아래 둔 현금 2억5000만 원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식당 주인이 평소 모아둔 돈을 5만 원권으로 바꿔 보관한다는 사실을 안 업자가 이를 모조리 쓸어간 것이다. 앞서 2011년 4월에는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110억 원어치 5만 원권 돈 다발이 발견되기도 했다. 자산 보관용으로 5만 원권이 종종 사용되는 것이다.
■중심권종으로 안착
국내 최고액면 은행권 5만 원권이 지난 23일 발행 10주년을 맞았다. 금액으로는 84.6%(98조3000억 원), 장수로는 36.9%(19억7000만 장)를 차지하며 생활 속 중심권종으로 자리 잡았다.
최고액권 5만 원권은 사용 행태도 독특하다. 국민은 거래용 현금의 43.5%, 예비용 현금의 79.4%를 5만 원권으로 보유한다. 용도는 소비 지출 43.9%, 경조금 24.6%, 사적 이전 18.7%, 종교·친목 7.5%, 기타 5.4% 순으로 나타났다. 경조금, 사적 이전, 종교 등 ‘개인 간 거래’ 비율이 50.7%로 소비 지출 43.9%를 웃돈다.
한국은행은 발행 10주년을 맞아 최근 경북 경산에 위치한 한국조폐공사 화폐제조본부의 5만 원권 발행 공정을 공개했다. 세계 200여 개국 중 지폐를 자체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나라는 6개국에 불과하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캐나다와 함께 한국이 이름을 올렸다. 지폐 원료인 면 펄프와 특수 잉크, 지폐에 들어가는 보안 장치와 특수 인쇄 기술을 갖추기 쉽지 않은 탓이다.
지폐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달여다. 한 단계 인쇄를 마친 후 잉크를 완전히 말리고 다음 단계에 착수하는 등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거친다. 은행권 외에도 채권 수표 상품권 우표 등 인쇄제품과 동전, 메달, 훈장 같은 주화 제품도 생산한다. 일부 태국 바트화도 이곳에서 생산해 수출한다. 완성된 지폐와 주화는 서울 한국은행으로 옮겨지고 은행을 거쳐 시중에 유통된다.
■10만 원권 수표 발행은 뚝
5만 원권 발행 전 고액 현금처럼 사용되던 정액(주로 10만 원) 자기앞수표는 거의 5만 원권이 대체했다. 10만 원 자기앞수표 교환 장수는 2008년 9억3000만 장에서 2018년 8000만 장으로 대폭 줄었다. 자기앞수표 사용 시 수수료 지불, 서명 확인 등 절차가 번거로웠던 불편도 함께 줄었다.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탈세와 뇌물 등에 주로 쓰이는 것도 5만 원권이다. 지난해 5만 원권의 환수율은 50%를 기록했다. 2015년 40.1%보다 높아졌지만 새로 공급된 화폐에 비해 환수액이 절반 수준이다. 반면 1만 원권은 지난해 환수율 107.3%를 기록했다. 새로 공급된 화폐가 유통되지 않고 재산 축적 차원에서 보관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은 관계자는 “발행 초기인 2013~2015년 일시 하락했으나 최근 누적 환수율이 50%를 넘어 안정적 상승 추세에 있다”고 밝혔으나 돈이 돌지 않고 지하 경제에 기여한다는 우려는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화폐 관리 비용은 크게 준 것으로 나타났다. 5만 원권을 1만 원권으로 대체했을 때와 비교하면 은행권 제조 비용은 연간 약 600억 원이 절감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유통 물량 축소 효과로 운송과 보관 관리 비용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은행권 제조 비용은 1000억 원가량이다. 2016년 기준 국민이 느끼는 5만 원권 만족도는 5점 만점 중 3.8로 나타났다. 1만 원권은 3.9, 1000원 권은 3.6으로 나왔다.
안세희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