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담 들은 신협 등서 물품 보내
- 다른 아파트·식당도 나눔 동참

한 이웃이 뙤약볕에서 고생하며 일하는 이들을 위해 매일 아침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경비실에 얼린 생수를 놓아둬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미담이 알려지면서 열흘도 안 돼 나눔 생수 2호점이 생기는 등 폭염을 식혀주는 '생수 나눔'이 확산되고 있다.

10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부암동 럭키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한 경비원이 아이스박스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고 있다. 이 생수는 이 아파트 입주민 이재형 씨가 준비한 것이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10일 오전 11시 부산 부산진구 부암동 럭키아파트 경비실 앞에는 작은 아이스박스가 놓여 있었다. 아이스박스에 붙은 노란 스티커에는 '집배원님, 환경미화원님, 택배기사님, 경비원님 시원한 생수 드시고 힘내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아이스박스 안에는 얼린 생수 23병이 들어 있었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재형(56) 씨가 기록적인 불볕더위에 고생하며 일하는 이웃을 위해 준비한 생수다. 이 씨는 지난달 29일부터 매일 오전 9시에 얼린 생수 30병을 아이스박스에 가득 채워 이곳에 놓아두고 있다. 이 씨는 무더위가 끝나는 이달까지 생수를 계속 채워 넣을 계획이다.

이날 만난 한 택배 기사는 "요즘 같은 폭염에는 사람들이 외부 쇼핑을 꺼리는 탓에 배달 물품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물을 마실 시간도 없다"며 "이 생수 한 병은 땀을 많이 흘리는 우리에게는 생명수와도 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생수 나눔은 급속히 퍼지고 있다. 입소문을 타면서 아이스박스에 담을 생수 3상자, 5상자, 10상자가 잇달아 이 씨의 집에 배달됐다. 인근 신협과 병원은 생수 사는 데 보태라며 10만 원씩 보내기도 했다.

나눔 생수 2호점도 생겼다. 이 소식을 들은 인근 한 식당 업주는 나눔 생수 냉장고를 운영하고 있다. 인근 고물상에 폐지를 파는 노인을 위한 물이다. 이 씨가 생수 나눔을 시작한 지 열흘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의 호응도 뜨겁다. 한 누리꾼은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며 "하루 30병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목마른 이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라고 했다.

자영업자라고만 밝힌 이 씨는 지금까지 계속 일주일에 한 번씩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등 크고 작은 나눔과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이 씨는 "예전에는 여름철 택배 기사가 집에 오면 물이라도 한 잔 주곤 했지만, 아파트에 배달오는 택배기사들은 경비실에 물품을 두고 바로 가기 때문에 얼린 생수를 두게 됐다"며 "조용히 하려고 한 일인데 금세 알려져 처음에는 당황했다. 다른 아파트에도 이런 작은 나눔이 이어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