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인류의 첨단 디지털 문명은 반도체 위에 세워져 있다'. 고체를 전기적 성질로 나누면 전기가 통하는(전류가 잘 흐르는) 도체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 그리고 그 중간쯤의 반도체가 있다. 이 반도체란 것이 참 묘한 존재다. 전자가 지나는 길목에 '우물'을 만들어 놓고 빠지게도 하고, 담장을 세워 흐름을 방해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반도체의 이 같은 성질이 '정보의 기억'이나 '신호의 증폭' 역할을 가능케 한다.

트랜지스터는 반도체의 이 같은 특성을 이용한 기본적인 전자소자이다. 1948년 1월 탄생한 트랜지스터는 처음엔 주목을 끌지 못했다. 뉴욕타임스조차 벨연구소의 트랜지스터 발명을 1단 기사로 처리했을 정도. 하지만 트랜지스터는 삼극 진공관을 대체하며 극소 전자혁명을 견인했다. 그런데 그 트랜지스터의 탄생은 특이한 전기적 성질을 가진 반도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현대 문명은 반도체에 빚지고 있다고 할 밖에.

트랜지스터 같은 전자소자를 초소형으로 만들어 빽빽하게 심어놓은 것이 집적회로(IC)인데, 기판 위에 심은 트랜지스터의 밀도가 점점 높아져 현재는 울트라 고밀도 집적회로(Ultra Large Scale Integration)가 상용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286컴퓨터의 칩 한 개에 심은 트랜지스터 수는 10만 개 정도였는데, 1990년대 펜티엄급은 100만 개, 2000년 펜티엄4급은 1000만 개, 2010년 인텔의 i7의 칩 한 개에는 무려 10억 개가 집적돼 있다. 이 같은 컴퓨터 칩의 집적도 향상 속도는 이미 1965년 예언되었다. 이른바 '무어의 법칙(Moor's Law)'이다.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는 반도체 집적회로의 메모리 용량과 속도가 18개월마다 두 배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던 것.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0년 동안 반도체 업계의 불문율로 통했던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보도했다. '무어의 법칙은 더는 안 돼'라는 의미로 '노 무어(No Moor)'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반도체 집적회로를 더욱 작게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뉴욕시립대) 교수의 논평은 흥미롭다. "무어의 법칙은 '열 발생을 막을 수 없는' 물리적 한계로 인해 종언을 고할 때가 됐다. 무어의 법칙은 우리 시대를 충실히 대변했고, (물리 법칙이 아니므로) 그리하여 소멸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