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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곡백과가 영글어가는 가을 들녘. |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지난 추석의 과일은 비싼 값에 비해 맛은 그저 그랬다. 결실에 필요한 일조량이 부족했으니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닌 듯하다.
때 아니게 찾아온 폭염에 가까운 무더위로 엊그제 도시는 대란을 겪었다. 급증한 냉방수요를 따르지 못한 전력공급이 사상초유의 대규모 정전사태를 초래했고, 이에 따른 피해 규모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예상 전력수요가 순간 전력수요를 따라 잡지 못할 경우 국가 주요시설의 정전피해를 막기 위해 '지역별 순환정전'을 감행해야 했던 한전 측의 입장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올해 모자랐던 일조량을 채우려는 듯 늦게나마 찾아온 무더위가 도시의 빌딩숲엔 대란을 가져왔지만, 더 여문 결실을 갈망하는 농촌의 들녘엔 더없이 반가운 손님이었을 것이다. 오곡백과가 영글어가는 가을마당은 파종과 결실의 과정에 필요한 자연의 섭리를 깨닫게 해 주는 좋은 곳이다.
오늘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다. 잘 갈아엎은 밭에 씨를 뿌리지 않고 아무 데나 뿌리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스라엘의 척박한 땅을 감안한다면 비유말씀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길바닥에 떨어진 씨앗은 곧바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거나 새의 밥이 되고 만다.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피울 수는 있겠지만 물기가 없어 이내 말라 죽는다.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 또한 얼마가지 않아 왕성한 덤불에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이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잘 자라서 수십 배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농부들에게 파종의 방법을 가르치려는 것은 아니다. 비유란 원래 빗대어 설명하는 방법으로 교훈을 주고자 하는 것이므로, '무엇을' 파종에 빗대어 말씀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선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씨앗이 떨어지는 곳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킨다. 길바닥이나 흙이 적은 바위틈과 같은 마음의 밭에 하느님 말씀의 씨앗이 과연 싹을 피울 수는 있을까? 가시덤불과 같은 세속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힌 인간의 마음에 뿌려진 씨앗이 원하는 결실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나아가 과연 얼마나 하늘의 말씀에 순명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이렇게 씨앗과 토양은 같은 운명을 지닌다. 그래서 나무의 운명에는 슬픈 단면이 있다. 씨앗이 뿌려진 그곳에 싫든 좋든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한번 뿌리를 내리면 자신의 힘으로 옮겨 다닐 수 없는 슬픈 운명이다. 심겨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주어지는 햇빛과 비바람을 맞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나무는 자신의 운명을 슬퍼하지도 나무라지도 트집잡지도 않는다. 자연이라는 큰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운명이 슬프고 실망스럽다고 생각하는 쪽은 우리 인간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늘 남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어, 남의 것이 더 크고 좋게 보이면 기뻐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시기하고 질투하며, 은근히 잘 안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래서 불행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마음은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토양과도 같다. 그러나 그 마음을 지닌 사람은 나무와는 달리 자유스럽게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닐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의 토양을 더 좋게 만들 수도 있고, 더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 사람이 나무에게서 배울 점은 많지만, 분명한 것은 나무와 사람은 다르며, 나무보다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길바닥이나, 바위틈이나, 가시덤불과 같은 자신의 딱한 처지와 환경을 나무는 불평해도 바꿀 수 없으나, 사람은 바꾸어 개선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천주교 몰운대 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