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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아파트라도 층수나 전망에 따라 가격 차가 있듯이 사람 마음의 창도 어디로 나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사진은 부산의 한 고층 아파트를 들여다본 모습. 국제신문DB |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거공간인 아파트는 같은 평수라도 층수에 따라, 전망에 따라 가격 차가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시야가 콘크리트로 쌓아올린 축대인지, 녹음이 짙은 야산인지, 아니면 은빛 찬란한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인지에 따라 평당 가격이 다르다는 말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사람 마음의 창이 어디로 나 있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동물농장'으로 잘 알려진 인도태생의 영국인 조지 오웰(1903~1950)은 천재적 머리를 가졌으나, 식민역사의 죄책감과 부정적 인생관 때문에 생긴 우울증과 폐결핵으로 일찍 인생을 마감해야 했다. 반면에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는 고아였으나, 진취적 인생관으로 루스벨트와 결혼해 미국 역대 대통령 부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여성이 됐다. 그뿐이랴. 생후 19개월 만에 눈, 귀, 입의 기능을 모두 잃고도 사물에 대한 진지한 마음과 밝은 생각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꾸려나간 '삼중고의 성녀' 헬렌 켈러(1880∼1968)도 있다. 1956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철학자 살리에즈는 "이성을 가진 인간의 생각은 감동, 아니면 독선의 싹을 피운다"고 했다. 같은 물을 마셔도 벌은 꿀을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는 말이 기막히게 들어맞는 순간이다.
감동과 독선, 바로 이 두 가지는 우리 생활기록부의 양면이며,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문체다. 감동은 사랑과 관심, 희생과 배려의 글씨체를, 독선은 미움과 무관심, 욕심과 배타의 글씨체를 구사한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지금보다 훨씬 달라질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 그분의 거룩한 마음을 기억하며 본받고자 하여 우리 가톨릭교회는 지난 한 달을 '예수성심성월'로 보냈다. 세상의 죄를 없애주시기 위한 대속물의 '어린양'으로서, 일찍이 어느 인간도 겪어보지 못했을 무지막지한 고통을 이겨내며,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께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 그 성심을 자기 마음속 깊이 새겼고, 또 닮으려고 했던 사람들의 증언으로 복음서가 집필돼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래서 복음서의 말씀은 그분 자신의 말씀과 행동이며, 그것은 그분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었다.
세리와 창녀, 죄인들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분은 애당초 그런 사람들을 위해 세상에 오셨다. 당시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체가 모욕적인 일이었고, 예수에게는 비난의 빌미가 됐다. 이런 비난을 불식시키는 유명한 세 가지의 비유말씀이 있다. 이는 루카 복음사가가 하느님의 크고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집약한 15장의 말씀으로서, 잃은 양, 잃은 은전, 잃은 아들에 관한 비유말씀이다.
하느님은 잃은 것을 찾아 나서시는 분이며, 죄인들을 회개로 초대하시는 분이시다. 바리사이와 율사들에게는 스캔들이 될지는 몰라도 하늘에서는 죄인의 회개와 잃은 것의 되찾음이 큰 잔치를 베풀만한 이유로 충분하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요, 세상이 주는 고통으로 아파하며, 죄를 짓고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성심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 달라진다면, 이왕에 먹을 마음을 좋게 먹으면 어떨까. 유가의 맹자가 말했다는 측은지심도 수오지심도 좋고, 사양지심도 시비지심도 좋다. 만인을 예외 없이 사랑하고 이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은 예수님의 마음이면 더 좋다. 독선과 아집으로 타인에게 독이 되는 삶보다는 감동과 배려로 서로에게 행복한 꿀이 되는 삶이 그리 힘든 것일까?
천주교 몰운대 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