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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우리는 무엇입니까? /정일근

  • 정일근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  |   입력 : 2020-09-03 19:32:04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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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마이삭’에 그대는 무탈하신지요. 아침숲길에 서서 저는 태풍이 지나간 흔적을 보며 ‘그나마 다행이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올해는 이 나라에 힘든 시련이 줄지어 찾아오고 있는 것에 더 걱정합니다.

끝이 안 보이는 전염병인 ‘코로나19’ 사태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국민을 ‘호모 마스크쿠스(Homo Maskcus)’ 시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잃어버린, 정다운 일상은 언제 회복되려는지요.

그 와중에 의사들의 단체 파업은 저 개인적으로는 이해와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스승이라는 의과대학 교수는 회초리를 들어야 당연할 일인데, 같이 화를 내며 편을 들고 있으니! 같이 제자를 가르치는 입장인데 부(富)의 면허증인 의사를 가르치는 선생과 청빈함을 가르치는 선생의 생각은 이렇게 다른 것인지요. 답답하기만 합니다.

50여 일이 넘는 장마와 기러기처럼 줄지어 한반도로 찾아오는 태풍은 힘든 서민 경제 생채기에 생소금을 쏟아 붓는 것 같습니다. 저의 부모 세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힘든 세월과 가난을 견디며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DNA를 가졌지만, 베이비부머인 저는 제 인생에 이런 국가적, 개인적인 고난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두렵습니다.

저는 울산에서 창원으로 이사와 살며 태풍이 예고되면 진해 어머니께 가 곁에서 밤을 새웁니다. 제 어머니는 나이 서른둘에 혼자가 되어 우리 2남매를 힘들게 키웠습니다. 한 번은 지나가는 말씀으로 ‘태풍 때 유리창이 방으로 무너질 것 같아 화장실 변기에 앉아 밤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뒤로 태풍이 오면 어머니에게 갑니다. 떨어져 살 때는 길이 멀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승용차로 25분 거리이니 즐겁게 어머니에게 갑니다. 혼자 사는데 익숙한 어머니가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연로하신 어머니가 거기 계시니까, 제가 그 어머니의 아들이기에 무조건 갑니다. 효도가 아니라 외아들의 의무라서 갑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 커 갑니다.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오지 말라던 어머니는 이젠 아들 자랑을 합니다. 당신이 태풍에 날아갈까 봐 아들이 지키려 왔다며 여기 저기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참 작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풍 마이삭이 진해를 통과하는 동안 어머니는 편안하게 주무시고 저는 호위대장인양 뉴스를 시청하며 밤을 새웠습니다. 태풍에 어머니 집은 드럼세탁기 안에 든 것처럼 요란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만, 어머니의 잠은 편안했습니다.

그대. 저는 ‘지금, 여기’를 ‘호모 마스크쿠스’ 시대라 이름 합니다. 개학을 했습니다만, 첫 3주는 비대면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숲을 가진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오가지만 조용합니다. 적막할 때도 있습니다. 마스크가 부적이며 신분증이며 통행증입니다. 마스크가 없으면 생존과 활동이 불가능한 시대가 됐습니다. 한국 사회가 마스크 중심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에 부정적 면이 더 많습니다.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이죠. 해 저물 무렵 학생들과 얼굴을 맞대고 토론을 하던 일, 격의 없이 술잔을 돌리던 일, 만원버스에 실려 흔들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 소중한 줄 몰랐던 그 일상이 지금은 사무칩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저는 그보다 청년들이 풀이 죽은 모습이 더 안타깝습니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장자는 ‘단생산사(團生散死)’라 했습니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장자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기(氣)가 있어 그 기가 모이면 더욱 활기찬 ‘힘’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청년들의 ‘파이팅’도 그 힘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단사산생(團死散生)의 세태에 청년들에게는 최우선의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청년들이 살아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는 언제나 청춘의 것이지요. 그들을 마스크를 쓴 채 횡단보도에 너무 오래 서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붉은 시그널을 길게 줘서는 안 됩니다. 청춘은 자신의 길을 가게 해야 합니다. 기성세대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국회의 정치가가, 병원의 의사가, 교회의 목회자가 아집과 고집과 집단이익을 버리고 그 길을 맑게 만들어야 합니다.

태풍이 지난간 뒤 멀리까지 보이는 맑은 시계처럼 청춘이, 온 국민이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얼굴 가득 밝은 미소로 서로를 껴안고 하나가 되는 대한민국은 아직도 먼 모양입니다. 그래서 ‘To be continue’ 남기고 떠난 태풍 9호 마이삭에 이어 더 강력하다는 태풍 10호 하이선이 한반도를 향해 빠르게 오나 봅니다.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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