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를 한자로 쓰면 孔子임은 초등학생도 알겠지만, 영어로 표현하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Confucius다. 공자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워해서 부자(夫子)라는 존칭을 썼는데, 이를 합친 극존칭 공부자(孔夫子)가 서양으로 건너가면서 만들어졌다. 공자에서 비롯된 유교(儒敎)는 Confucianism이다.

이처럼 성현이나 군주의 이름을 피하는 게 피휘(避諱)다. 한때 이를 어기면 불경죄에 걸려 경을 쳤다. 대구라는 지명이 원래 大丘였다가 大邱로 바뀐 사연이 유명하다. 공자의 이름인 공구(孔丘)와 같은 글자를 쓸 수 없다는 조선 유생의 상소를 정조가 받아들였단다.

내친김에 정조의 이름을 밝히면 불경일까. 이미 드라마 제목으로등장했으니 다시 확인해보자. 이산(李)이다. 이 어려운 한자를 쓴 이유는 피휘하는 백성들의 불편함을 헤아려 일부러 잘 쓰지 않는 걸 골랐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영웅의 이름을 빌리거나 할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2세, 3세라 하는 것과는 영 딴판이다.

이렇게 이름을 중하게 여긴 배경에는 동양사상의 근원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절대 군주의 권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름에 목숨을 건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지 싶다. 개명은 언감생심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개명 바람을 일으킨 일등공신은 2005년 흥행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다. 그해 대법원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자 개명 신청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판결을 했다. 그 덕을 국정 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이 봤다. 최필녀-최순실-최서원으로 이름을 두 번이나 바꿨으며, 딸 정유라도 처음엔 정유연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최고 스타인 여자 컬링 대표팀은 ‘갈릭 걸스’라는 별칭을 얻었다. 대구 옆 마늘 주산지인 의성을 상징한다. 온 국민이 염원하던 금메달을 놓친 아쉬움 탓일까. 갈릭 걸스의 맏언니 김은정이 개명 이야기를 꺼냈다. “김금정으로 개명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국민 영미’의 주인공 김영미가 “옛날 이름 같아 개명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고 거들었다. 그렇다면 4년 뒤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선 김금정의 ‘금미~’라는 기합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하지만 개명 대신 더 기량을 닦고 팀 분위기를 가다듬는 게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지름길임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하늘을 찌르는 이들의 인기에 청소기 광고는 떼어 놓은 당상이니 ‘김금정의 금미~’는 광고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