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칠흑 같은 바닷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탄식과 분노 속에 속절없이 가는 시간. 침몰 첫날부터 구조는 한다는데 뒷소식 없는 현장 화면만 뚫어져라 지켜봤다. 사고 해역을 빙빙 도는 수많은 구조 배는, 육중하게 떠 있는 해상 크레인은 뭘 했는지…. 개당 35톤의 부양력을 가진 리프트백과 물고기 집어등으로 밤을 밝힐 수 있는 오징어채낚기 어선은 왜 뒤늦게 동원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던 사이 세월호에선 사고 나흘째 만에 첫 선체 시신 수습이 이뤄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번 참사에서 가장 분노케 하는 건 두말할 나위 없이 선장과 승무원들의 일탈 행위다. 그 교활하고 비겁함에 치가 떨린다. 배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이 그것을 승객 피신에 활용하지 않고 먼저 탈출하는 데 써 먹었다. 이렇게 해서 69세의 선장과 항해사 등 지휘 역할의 선박직 15명 전원이 살았단다. 20대 여성을 포함해 마지막까지 탈출을 돕다 실종됐거나 주검으로 돌아온 직원은 일반 사무원들이다. 먼저 내뺀 엄연한 사실을 부인하는 선장, "자꾸 미끄러져 구조를 할 수 없었다"는 승무원을 보노라니 또 한 번 배신의 전율을 느낀다.

선사와 그 회사 대표라는 사람은 또 어떤가. 사고 이틀 만에 회사 자체 사고대책본부를 폐쇄하고, 대표는 외부 접촉을 피하다 떠밀려 사과했다. 승객 수와 적재 차량·화물의 수치가 죄다 엉터리여서 국가적 혼선을 초래한 1차 책임자 아닌가. 오죽했으면 외국 언론에서조차 '한국 기업 총수의 비겁한 리더십을 드러낸 사건'이라고까지 꼬집었을까. 망신도 이런 나라 망신이 없다.

그들의 DNA 속에는 직업윤리 감각의 마비가 자리하고 있다. 선원법 의무를 위반했다거니 하는 법적 문제를 떠난 게다. 윤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고, 그것이 업(業)에 따라 특별하게 혹은 차별적으로 요구되는 게 직업윤리 아닌가. 최소한의 윤리조차 부재했으니 선박 출항부터 사고 초기대응까지 제대로 인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극단 이기주의가 수압을 받으면 저절로 펼쳐져야 할 구명보트 46개 중 두 개만 작동한 부실을 초래했다. "직업윤리로 볼 때 가장 나쁜 사례"라는 전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의 일침이 천금의 무게로 다가온다.

우리는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때도 똑같은 일을 목도했다. 홀로 사지에서 벗어나기 급급했던 기관사가 있었다. 위기대응 조치를 하지 않고 객실 출입문과 전동차 전원장치 키를 빼내 먼저 달아났다. 192명이 목숨을 잃어 나라를 눈물바다로 만든 그때도 직업윤리가 도마에 올랐었다. 매장을 넓히려 기둥을 뽑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도, 가까이 부산 외국어대생 리조트 천장 붕괴 사고도 '돈'과 맞바꾼 '윤리 망각'이 그 근원이다.

'버큰헤드 정신으로'라는 것은 영국을 지배하는 직업윤리이자 사회적 규범이다. 1852년 2월 27일 남아프리카로 향하던 영국해군 수송선 버큰헤드호가 케이프타운 해역에서 암초에 부딪혔다. 가라앉는 배 안은 아수라장이 됐다. 그때 알렉산더 세튼 함장이 병사들에게 외쳤다. "가족들은 우리를 위해 희생해 왔다. 이제 우리가 희생할 때다. 대영제국 남자답게 행동하라." 여성과 어린이 193명을 구명보트에 태워 떠나보내고 남은 400여 명은 배와 함께 잠겼다. '버큰헤드 정신'은 1912년 4월 타이타닉호 침몰 때도 빛을 발했고, 지금도 숨 쉬는 정신이다. 새삼 이 얘기를 꺼낸 데는 국제적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처지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의 피폐한 자화상과 오버랩되면서 묻게 된다. 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가 보고 있는 일련의 과정에서 직업윤리 실종은 비단 선장만의 문제인가를. 거짓 민간잠수사 오보 소동을 낸 방송, 실전에 무능한 공무원, 어줍잖은 방문으로 욕을 듣는 정치인들은 어떤가. 남들만 욕하기엔 사실 부끄럽다. 그래서 이번엔 기자 스스로 자문해 본다. 투철한 직업윤리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가? 이런 생각이 지금에 와서 마음을 다잡게 하는 것은 어딘가 나사가 풀려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참극 앞에서 교훈을 찾자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엄마, 배에 물이 들어와. 기회가 없을까 봐 미리 말해. 사랑해요'라는 문자를 남긴 아이를 외면한 무책임이 일말이라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절규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우리는 정신의 사회적 규범을 또 뇌이고 뇌일 수밖에 없다.

직업윤리가 수장(水葬)된 해역에선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사면이 바다고 해양강국이 무색한 구조전략의 취약성. '선장'이 없기는 배나 해상재난 방재체계나 매한가지다. 월스트리트저널이 '한국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했다. 국격(國格)마저 침몰할까 걱정이다. 처절한 반성과 새로운 각오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