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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린타로 감독(왼쪽)이 발언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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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쯤이었을 거예요. 아버지가 마을 체육관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며 보러 가라고 하셨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영화보다도 스크린에 빛을 쏘아 보내는 영사기에 시선이 가더군요. 마치 ‘마법의 상자’ 같았어요.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저는 영화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10일 오후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린타로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1941년생인 린타로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태동기부터 황금기까지 그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산증인이다.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 ‘백사전’(1958) 제작에 참여했고, TV 애니메이션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철완 아톰’(1963·한국명 우주소년 아톰)의 연출을 맡았다. ‘은하철도 999 극장판’(1979)과 ‘메트로폴리스’(2001) 역시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영사기에 매료된 그는 실사영화 연출을 꿈꿨다.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도 사실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영화사에 들어갈 방법을 찾다가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구인 광고를 봤어요. 사실 애니메이션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 건물 바로 옆에 토에이의 영화 촬영소가 있었거든요. 일은 하지 않고 매일 촬영소에만 놀러 갔죠.”
16살에 토에이 애니메이션에 입사한 그는 ‘백사전’을 비롯한 여러 작품의 제작에 참여했지만 관심은 여전히 연출에 있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출을 맡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전환점은 ‘만화의 신’으로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와 만남이었다. 데즈카가 애니메이션 제작사 ‘무시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일부 회차의 연출을 맡게 해주겠다며 합류를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 참여한 작품이 바로 ‘철완 아톰’이었다. 이 작품은 시청률 40%를 넘길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린타로가 애니메이션 연출가로 본격적인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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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린타로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리고 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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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에 걸친 작품 활동을 관통하는 린타로 감독 특유의 미학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가 두드러진다. 인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라를 비롯해 빛을 극적으로 활용하는 연출은 그의 전매특허다. 반대로 무너져 내리는 도시와 폐허 등 어둠과 파괴의 이미지도 적극적으로 그려왔다. 그는 자신이 그리는 ‘파괴’의 핵심은 그 뒤에 찾아올 ‘생성’의 가능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작품을 연출할 때면 항상 ‘빛과 그림자’를 항상 생각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밝은 면은 좋아하고 어두운 면은 싫어하지만 둘의 대비가 있기 때문에 우린 균형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파괴를 표현할 때는 그것이 주는 쾌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단순히 무언가를 부수고 없애는 데서 오는 쾌감이 아닙니다. 파괴 이후 무엇이 새롭게 만들어질 것인가, 그 기대감에서 오는 쾌감이죠.”
끝으로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관한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최근 창작 환경을 뒤흔들고 있는 AI가 뜨거운 화두였다. 그는 AI의 등장을 거스를 수 없는 변화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기술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가 등장하기 이전의 인류와 AI 시대를 살아갈 인류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영화와 만화를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은 영원한 삶을 위해 기계 장치를 찾지만 결국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기계를 부수는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AI는 부숴서 없앨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결국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죠. 저 역시 현 시대를 다룬 장편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