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다시 쇼팽으로 돌아왔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조성진 열풍’을 일으켰던 그가 숙성의 시간과 마음의 도야(陶冶)를 통해 몇 년의 시차가 무색할 정도로 더 근사하게 돌아왔다. 그에 관한 개인적 관심에는 과거에 그가 말했던 이야기의 울림이 한몫한다. 조성진이 우승했을 때 음반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었고, 조성진이라는 스타를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클래식의 대중화가 무르익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때 조성진은 오히려 폐부를 찌르는 한 마디를 남겼다. “클래식의 대중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중의 클래식화가 중요하다.”

클래식이 어느 정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대중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클래식의 진수와 ‘에지’는 대중화라는 시장의 입맛에 맞게 둥글게 깎인다. 자주 듣는 멜로디와 학교에서 평가할 때 듣던 음악 위주의 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고, 그 이상을 파고드는 명연주나 젊은 연주자들의 데뷔 앨범은 당연히 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어, 궁극에는 대중의 클래식화는 점점 불가능의 경로로 빠져버린다. 조성진이 피력한 ‘대중의 클래식화’는 이에 대한 적절한 해답이자,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똑같은 상황을 연출해 보자. ‘과학의 대중화’가 중요한가? ‘대중의 과학화’가 중요한가? 이제 막 선진국으로 진입한 한국에서도 과학 도서와 강연을 중심으로 ‘과학의 대중화’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모양새다. 겉으로는 이러한 과학의 대중화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클래식의 대중화’가 보여주는 맹점과 흡사하게 ‘과학의 대중화’ 역시, 철저하게 자본과 시장의 입맛에 맞게 에디팅되고 있다. 한 차원 더 어려운 수학이 들어가거나,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교양서, 그림이 없는 과학 서적은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되고 시장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과학의 대중화는 일반인들의 과학에 관한 관심을 드라이브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만 그것에 매몰되는 것은 위험하다. 매일 보도되는 과학 관련 뉴스를 보면, 그 성과를 제대로 해설하고 대중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문장으로 재해석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다. 적당한 수준으로 과학이 소비된 후 그것에 대한 팔로업이 없었다. 대중의 피드백을 게으르게 수용한 과학 전문가들의 무능함과 과학 담당 언론인들의 나태함 그리고, 연구보다 대중화에만 집중하는 일부 교수들의 행태들이 맞물린 이상한 과학의 대중화는 앞으로 가벼워질 모양새다. 과학 대중화와 관련해 대부분 사람이 떠올리는 것은 ‘쉬운 과학’이다. 어쩌면 어린이들 위주로 운영되는 현재 과학관들의 모습이 그 전형인지도 모른다. 쉽다고 모두가 과학을 좋아할까. 과학 교육의 변화부터 선행돼야 한다. 당장 초등학교 과학 교과에서부터 과학적 사고방식을 훈련하고, 데이터를 바로 읽을 수 있으며, 계산된 숫자의 이면을 의심하고 토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또한,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근거 중심의 방법론을 교육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주어진 근거로 최대한 합리적 의견을 도출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대중이 과학화된다고 해서 모두를 차가운 이성만 갖춘 사람으로 만들자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어차피 대중의 과학화는 대중의 삶 속에 과학적 방법론과 사고방식이 자리 잡게 하자는 것이지, 그들을 모두 과학자로 만들자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대중화’는 어렵다. 대중화라는 표현 자체에 함의되어 있듯이 대중적이지 않은 뭔가를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좋아하고 향유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성진이 던진 화두에 시민 사회 속에서 클래식의 나갈 길이 있고, 그리고 과학이 나갈 길이 있다. 시민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 방안을 묻는다면, 그 시민 사회가 스스로 과학화되고 있는가를 물어보면 될 것이다. 과학은 저절로 다가오지 않는다. 한 발 더 다가가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