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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고기로 만든 국밥? 오키나와의 이색 향토요리 '야기지루'

김태훈 PD의 日 오키나와 이토만시 탐방
김태훈 기자 hiro@kookje.co.kr | 2024.03.28 08:54

  

- 염소 고기의 풍미가 가득한 향토요리 ‘야기지루’

- 육류를 구하기 어려웠던 섬사람에게 귀중했던 염소

- 15세기 무렵 한국 혹은 중국에서 유래돼


- 600년의 역사, 오키나와의 전통 증류주 ‘아와모리’

- 우리네 풍어제와 닮은 ‘이토만하레’ 축제

- 맨손으로 오리잡는 이색 대회도 열려


“염소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사랑하는 식재료 중 하나예요. 국을 끓이기도 하고 육회로 먹기로 하죠.”

오키나와현 나하시의 고교야구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늦은 저녁. 한두 방울씩 창가에 맺히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따끈한 국물 요리가 생각났다. 앞서 방문했던 이자카야 ‘이카지루 캇짱(いか汁かっちゃん)’을 떠올린다. 30년째 이토만시의 골목을 지키고 있는 노포다. 이틀 전, 옆자리 손님 카즈 씨가 먹고 있던 ‘야기지루(やぎ汁·염소국)’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결국 주점으로 향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오키나와의 향토요리 야기지루(やぎ汁··염소국). 김태훈pd
# 일본의 옛 대중주점 ‘스낵바’

이제는 익숙해진 이토만시의 골목길. ‘스낵바’라고 적힌 낡은 간판들을 지나쳐 주점으로 들어섰다. 에츠코 씨가 이틀 전과 같이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줬다. 이 가게는 원래 동생 카츠야 씨(별명 캇짱) 혼자서 운영하던 주점이었지만, 18년 전부터 누나인 에츠코 씨가 가게 일을 돕고 있다. 야기지루와 하이볼 한 잔을 주문한 뒤 에츠코 씨에게 스낵바에 관해 물었다.

스낵바란 간단한 안주를 곁들여 대화를 나누며 술을 즐길 수 있는 주점을 일컫는다. 중년의 여성 사장(‘마마(ママ)’라고 호칭한다)이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노래방 기기가 설치돼있어 다른 손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문화지만,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등의 작품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대중적인 술집이라고 한다. 단, 가게에 따라 유흥주점의 형태로 운영되기도 한다니 관광객은 방문에 앞서 주의가 필요하다. 에츠코 씨는 “도심에서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지만, 이토만시에는 연령대가 높은 주민들이 많기 때문에 옛 주점 문화인 스낵바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녹진하고 농후한 염소의 맛 ‘야기지루’

잠깐의 기다림 뒤에 에츠코 씨가 야기지루와 하이볼 한 잔을 가져다줬다. 밥과 단무지뿐이었던 ‘이카지루(いか汁·오징어국)’와 달리 쑥과 생강이 더해진 구성이다.

오키나와의 염소는 15세기 무렵 중국 혹은 조선으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섬에서는 육류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서도 쉽게 기를 수 있는 염소는 예로부터 섬사람의 귀중한 단백질원으로 애용돼 왔다. 현대에 들어서는 축제나 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먹는 것은 물론, 일반 가정이나 가게에서도 흔하게 사용하는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야기지루가 가장 흔한 요리 방법이지만, 신선한 고기의 경우 육회로 즐기기도 한다.

녹진해 보이는 국물을 한 숟갈 떴다. 맛을 보기도 전에 염소 고기 특유의 향이 코를 강하게 자극했다.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것 같은 향이다. 한편, 국물에서 느껴지는 감칠맛은 놀라울 정도로 풍부했다. “기호에 따라서 쑥과 생강을 곁들이면 훨씬 다양한 향을 즐길 수 있다”는 에츠코 씨의 조언대로 향신채를 넣은 뒤 국물을 다시 맛봤다. 감칠맛은 여전하면서도 고기 냄새가 한결 누그러졌다. 가득 쌓인 고기 역시 쫄깃한 식감이 살아있으면서도 부드러웠다. 재료로는 무엇이 들어갔는지 묻자 ‘염소’뿐이란다. 에츠코 씨는 “깊은 감칠맛이 우러날 때까지 오랜 시간 끓이는 것이 유일한 비법”이라며 미소 지었다.

뜨끈한 야기지루를 맛보는 사이 얼굴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얼음이 가득 담겨있는 시원한 하이볼 한 잔으로 더위를 씻어냈다. 일본에서는 하이볼을 제조할 때 단맛이 나지 않는 탄산수를 이용한다. 달콤한 토닉워터에 위스키를 섞는 것이 일반적인 한국식 하이볼과 비교하면 청량하고 위스키의 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한국식 하이볼에 익숙하다면 다소 밍밍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깔끔한 목 넘김 덕분에 야기지루의 농후한 국물과도 잘 어울렸다.

오키나와현 이토만시에 위치한 ‘이카지루 캇짱(いか汁かっちゃん)’의 야기지루는 소(小) 1200엔(한화 약 1만2000원), 대(大) 1600엔(한화 약 1만6000원).

미야코지마에서 생산되는 아와모리 중 하나인 ‘키쿠노츠유’. 김태훈pd
# 때론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섬사람의 술 ‘아와모리’
지인들에게 전할 선물 추천을 부탁했다. 에츠코 씨는 오키나와의 전통 술인 아와모리(泡盛)를 소개했다.

아와모리는 인디카 쌀(안남미)과 ‘흑국균’이라는 검은 누룩곰팡이를 활용해 빚는 오키나와의 전통 술이다. 6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최고(最古)의 증류주다. 국내에서는 1995년 구본무 LG그룹 선대 회장이 야구단의 우승을 기원하며 공수해 왔던 ‘그 술’로 잘 알려져 있다.

아와모리는 숙성 기간에 따라 맛이 변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3년 미만 숙성된 아와모리를 ‘일반주(一般酒)’ 혹은 ‘신주(新酒)’라고 부르고, 3년 이상 숙성한 것을 ‘쿠스(古酒)’라고 부른다. 숙성기간이 짧은 아와모리는 강하고 자극감이 있는데 반해, 쿠스가 되면 바닐라와 같은 달콤한 향이 나고 술맛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도수가 낮게는 20도 내외부터 높게는 50도에 이르는 제품도 있지만, 시중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와모리는 30도 내외가 가장 흔하다. 술의 향을 즐기기 위해 온더록스로 마시거나, 위스키에 물을 섞는 ‘미즈와리(水割り)’를 추천한다.

에츠코 씨는 “숙성기간 외에도 술을 빚는 지역과 양조장에 따라서도 향과 맛이 차이를 보인다”며 “오키나와 본섬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 정도 떨어진 미야코지마에서 주조된 아와모리가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2024년 현재, 오키나와에서는 47개 양조장에서 아와모리를 생산하고 있다.

1994년 오키나와현 이토만시에서 아히루토리(アヒル取り·집오리 잡기)가 펼쳐지고 있다. 이토만시교육위원회 제공
# 안전한 조업과 풍어를 기원하는 축제 ‘하레’와 ‘아히루토리’

에츠코 씨로부터 이토만시의 전통 축제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토만 시는 오키나와 본섬 최남단에 위치한 오키나와현의 전통적인 어장이다. 안전한 조업과 풍어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매년 음력 5월 4일에 지역 축제인 ‘하레(ハ-レ-·노 젓기 경주)’가 열린다. 한국의 ‘해신제’ 혹은 ‘풍어제’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행사다. 참가자들은 옛 이토만의 지명인 니시무라(西村), 나카무라(中村), 미이지마(新島)의 3개 마을로 나뉘어, 전통 어선 ‘사바니(サバニ)’를 타고 노 젓기 경주를 펼친다. 레이스 도중 배를 전복시킨 뒤, 다시 올라타 경주를 펼치는 ‘쿤누카세(クンヌカセ-·전복경주)’, 장거리 경주인 ‘아가이시브(アガイス-ブ)’ 등 각 경기마다 규칙도 각양각색이다.

이토만하레의 한 순서로 진행되는 ‘아히루토리(アヒル取り·집오리 잡기)’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아히루토리는 바다 한가운데 풀어놓은 집오리를 쫓아 맨손으로 잡는 대회다. 오리를 잡기 위해 바다를 헤엄치며 고군분투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풍습은 약 500년 전 류큐 왕조 때부터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에는 아히루토리를 포함한 이토만 하레 축제가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을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다만 올해 축제에선 아히루토리 대회 개폐 여부가 불투명하다. 동물 학대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도 전통 문화로서 아히루토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동물 복지를 위해 대회 운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1972년 오키나와현 이토만시에서 하레(ハ-レ-·전통 배 경주)가 펼쳐지고 있다. 이토만시교육위원회 제공
굿 혹은 제사의 형식을 한 한국의 풍어제와 달리, 하레는 마을 사람들이 참여해 치열한 경기를 펼치는 축제에 가깝다. 비록 이번에는 직접 관람할 수 없었지만, 다가오는 축제를 준비하며 정비 중인 사바니의 모습을 마을 어귀에서 볼 수 있었다. 에츠코 씨의 생생한 설명을 들으며 경기를 펼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키나와의 태양보다 뜨거운 축제의 열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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