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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절제미부터 현대 파격미까지…서울은 온통 건축 박물관

글·사진=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 2024.03.27 19:11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 상설전시관 ‘사유의 방’에 처음 들어선 날(국제신문 지난해 4월 13일 자 12면 보도)을 기억한다. 이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원오원아키텍츠 최욱 대표)는 오로지 반가사유상 2점만 빛을 반사하도록 벽에 옻 숯 흙 등을 칠했고, 바닥과 천장에 1도의 경사를 둬 집중도를 높였다. 그러면서 전시장 세로 길이를 24m로 제한해 최적의 관람 길이를 설계했다.

서울 청담동에 있는 ‘루이비통 메종 서울’ 외관 조감도. 세계 건축 거장 프랭크 게리가 동래학춤을 보고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 루이비통 코리아 제공
건축가의 이 모든 의도는 관람객에게 빠짐없이 명중했다. 계획된 설계와 의도된 장치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시너지. 건축과 공간의 힘을 그 현장에서 깨달았다. 마침 건축 덕후인 지인이 ‘꼭 봐야 할 건축물’ 리스트를 알려주며 새로운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 이달 초 서울 출장 길에 시간을 내 지도 앱을 켜고 ‘나만의 건축 기행’을 떠나보았다. ‘여행지’로서 서울은 교통편이 많고도 다양해 가기 편하고, 일단 갔다 하면 여행 자원이 풍성하다. 짧은 나들이를 하기에 의외로 장점이 많다. 거기에는 건축 기행도 들어간다.


100년 만에 복원을 마치고 시민에 열린 광화문 월대.
◆광화문 월대부터 경복궁 경회루까지

광화문 월대에는 이른 아침부터 한복을 입은 관광객이 북적거렸다. 일제강점기 전차 선로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훼손돼, 복원되기까지 꼬박 100년간 기능을 멈췄던 곳. 활기를 찾은 건 지난해 10월부터다. 월대는 궁궐이나 종묘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되는 넓고 평평한 단을 뜻한다. 건물의 위엄을 높이면서 행사가 열릴 땐 무대 기능을 했다. 광화문 월대는 고종 때 지어져, 사신을 가장 먼저 맞이한 곳이자 주요한 행사날 임금과 백성이 만나 소통하던 길이다.

언뜻 보기엔 단차가 조금 있는 평범하고 너른 길이지만,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의 월대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궁궐 건축 양식이다. 월대에서 광화문 현판도 다시 눈여겨보자. 고증 논란의 중심에 있던 광화문 현판도 이번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등 격변 속에 소실과 재건을 거친 광화문은 1968년 콘크리트 건축물로 복원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로 쓴 한글 현판이 걸렸다. 2006년 광화문 제자리 찾기 사업이 시작됐고, 2010년 흰 바탕과 검은 글씨의 한자 현판으로 바꿨다. 하지만 이 현판은 갈라짐 현상이 있었고 고증이 잘못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6년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광화문 사진 등 자료를 확보하며 더 정확한 고증이 가능해졌다. 복원된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빛으로 쓴 ‘光化門’ 글씨가 선명하다. 광화문 앞에 있던 해태(해치)상도 월대 앞쪽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광화문과 월대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나, 경복궁으로 가려면 입장료(성인 기준 3000원)를 내야 한다. 대신 한복을 입으면 무료다. 한복을 입고 조선 궁궐을 거니는 특별한 느낌을 만끽하려는 관광객들을 따라서 월대를 걷고 광화문을 지나쳐 경복궁에 들었다.

현존하는 전통 목조 건축물 중 가장 큰 누각인 경복궁 경회루.
경복궁에 왔다면 ‘궁 투어’ 중 인기 높은 경회루 관람을 빼놓을 수 없다. 경회루는 기우제나 사신 접대 등 국가 행사가 열리던 누각이다. 정면 7칸, 측면 5칸, 한국 전통 목조 건축물로는 가장 크다. 드넓은 연못과 어우러진 누각 풍경은 만원권(구권) 지폐 뒷면에 등장했을 만큼 한국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경회루 외관은 언제든 관람할 수 있지만, 해설과 함께하는 내부 관람은 매년 4~10월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인기가 많아 매우 빨리 매진되니 경회루에서 봄을 맞고 싶다면 미리 계획하는 게 좋다.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경동교회 외관. 기도하는 손 모양과 닮았다.
◆빈틈없는 설계로 공간의 힘 극대화, 경동교회
경복궁을 나오니 다시 현대 도심 한가운데다. 한국 현대 건축에서 김수근(1931~1986) 건축가는 중요한 인물이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과 공간사옥(현재 아라리오 뮤지엄)부터 남영동대공분실까지…. 독재 정권 시절 국가사업을 진행한 이력 등으로 논란은 많지만, 그가 김중업 건축가와 함께 한국 현대 건축의 주요 인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김수근 건축가의 대표 종교 건축물로 꼽히는 경동교회(서울 중구 장충동)를 보러 갔다. 1981년 지은 경동교회는 매우 독특한 외관으로 상상력을 자극했다. 우선, 교회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외관에 없다. 건물 전체는 기도하기 위해 가지런히 모은 두 손 형상과 닮았다. 하늘 향해 손을 웅크린 듯한 외관은 붉은 부정형 벽돌들로 채웠다. 멀리서 보면 웅크린 손의 곡선 같고, 가까이서 보면 제각기 다른 모양의 벽돌 질감이 거친 파도 같다.

입구가 대로 반대편인 건물 뒤편에 있어 독특했다. 김수근 건축가는 1층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 2층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 3층은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예배당과 이어지는 입구로 가려면 본당 계단길을 빙 둘러 올라야 하는데,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올랐던 골고다 언덕길을 형상화한 진입로다. 진입로를 빙 둘러 오르다 보면 자연스레 도심이 보이지 않고 ‘나’만 오롯이 종교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예배당 내부는 성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12사도를 상징하는 기둥 12개, 그 기둥을 지지하는 노출 콘크리트의 거친 질감이 태초 동굴 같은 분위기도 풍긴다. 제단 위 17m 높이 천장에서 커다란 십자가를 향해 내리비치는 빛은 예배당에서 유일한 빛이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배로 모였다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 공간. 빛과 침묵마저 설계된 듯 빈틈없다.

마침 경동교회를 찾은 이날은 사순절 목요음악회가 열렸다. 설계 단계부터 염두에 두고 설치한 파이프오르간과 바이올린의 하모니가 예배당 허공에 흩어졌다 모이며 빛과 침묵 사이를 메웠다.


◆동래학춤에 영감 얻은 루이비통 메종 서울

‘건축 거장 프랭크 게리가 부산의 전통 춤인 동래학춤에서 영감을 얻어 한국에 명품 매장을 설계했다’. 이 정보를 확인해 보려고 한강을 가로질러 청담동으로 갔다. 강남, 그것도 청담동 명품거리에 그 건축물이 있다. 프랭크 게리의 한국 첫 작품 ‘루이비통 메종 서울’(2019년 오픈)이다. 프랭크 게리는 건축계의 노벨상인, 최고 권위의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세계 건축 거장이다. 대표작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등이다.

그의 작품은 ‘파격적이고 드라마틱한’ 건축으로 유명하다. 기하학과 비정형, 해체주의 건축의 대가. 그를 수식하는 여러 단어에서 작품 스타일을 유추할 수 있다.

청담동 명품거리에서 프랭크 게리의 작품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불규칙한 곡선이 몰아치듯, 또는 순간 멈춘 듯 역동적인 곡면 유리가 포개진 독특한 외관. 흰 도포 자락을 날리는 동래학춤 몸짓이 절로 떠올랐다. 프랭크 게리는 동래학춤 말고도 수원화성 설계방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건물 4층에서 프랭크 게리의 설계도는 물론 내부 구조를 한층 자세히 볼 수 있다. 다만 전시 유무에 따라 출입이 제한될 때가 있다(마침 이날이 출입이 제한된 날이었다). 건물을 제대로 보려면 조명이 켜진 밤, 맞은편 도로에 자리 잡는 게 좋다. 5층 건물(지하 1층~4층)은 층고가 높아 한눈에 담기 다소 버겁다.

맞은편 도로에서 본 건물은 불투명한 흰색에 가까웠다. 밤이 되고 조명이 켜지면, 불규칙한 유리 외관이 하얀 도포 자락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고고한 동래학춤 몸짓이 조각조각 건축으로 표현된 게 경이롭다. 이 거장은 앞서 ‘종묘’를 방문해 “이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고 극찬했다. 이곳을 다녀간 한 건축학도는 “종묘는 철저한 직선으로 이뤄진 절제의 극치다. 해체주의 건축의 대가 프랭크 게리가 직선의 미학을 극찬한 것이 흥미롭다. 종묘를 방문하고 나서 루이비통 메종 서울을 찾으면 건축의 묘미를 한층 더 느낄 것”이라고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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