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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39> 불로 식품, 신선의 음식 ‘잣’

고소함의 극치요, 영양도 일품이라…신라인 유학비까지 벌어준 특산품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2024.05.28 19:18
- 격조있는 식재료 잣
- 임금에 진상됨은 물론
- 일본·중국에도 건너가
- 고급 교역품으로 인정

- 최대 생산지는 홍천
- 이름값 높은건 가평
- 생산량은 30%지만
- 판매액은 전국 최고

- 청와대 만찬주였던
- 잣막걸리를 비롯해
- 뽀얀 국물 입맛도는
- 잣칼국수·잣묵밥
- 그 구수함에 반하네

고소한 맛이 일품인 잣은 견과류 중에서도 격조 있는 고급 식재료 중 하나이다. 어느 음식에도 고명으로 잣 몇 알 올리거나 잣가루를 음식 위에 솔솔 뿌려주면 음식의 품위를 한껏 올려준다. 예부터 불로장생의 음식으로 신선이 먹었다고 할 정도로 영양성분이 탁월하고 그 효능 또한 인체에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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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에는 호두 밤 은행 등과 함께 절기음식인 ‘부럼’으로 널리 먹어왔고, 잣을 이용한 세시풍속 또한 다양하게 전해졌다. 잣 12개를 꿰어 불에 태우며 새해의 열두 달 운세를 점친다든지, 정월 초하루에 ‘잣술’을 마시고 한 해 액운 물리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임금에게도 진상한 가평 잣

위에서부터 잣칼국수 잣묵밥 잣막걸리.
이처럼 잣은 오래전부터 다양하고 귀하게 쓰였을뿐더러, 특히 이웃 나라에서도 최상품으로 여길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고 맛과 영양성분이 좋았다. 잣나무는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에 분포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잣을 최고로 쳤다. 그래서 좋은 잣을 생산하는 우리 잣나무를 중국에서는 신라국의 잣나무, ‘신라송(新羅松)’이라 불렀으며, 일본 또한 ‘조센마쓰(조선송 朝鮮松)’라 부르며 우리 잣을 널리 인정해 왔다.

신라 잣은 그 효능이 높아 당시 당나라로 유학 간 신라인들에게는 유학비를 벌어주는 아주 고마운 임산물이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인삼과 더불어 서역의 최고급 교역품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중국과 일본 정부에 수백 근씩 선물로 보낼 정도로 그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잣나무는 사철 푸르고 잎이 침처럼 뾰족한 상록침엽수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나뭇과 나무 중 하나이다. 열매는 솔방울처럼 생긴 잣송이인데, 그 생김새는 길쭉한 달걀 모양으로 길이 12∼15㎝, 지름 6∼8㎝이고 한 열매에 100여 개의 잣이 생산된다. 이 잣은 잣나무 나이 15살부터 결실이 시작돼 30~50세까지 생산한다고 한다.

이 잣송이를 사람이 직접 잣나무에 올라가 채취하는데, 이 잣송이를 털면 단단한 알맹이인 ‘피잣’이 생산된다. 이 피잣을 까면 그 속에 고소하고 부드러운 잣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를 ‘실백(實柏)’이라 한다. 실백에는 ‘황잣’과 ‘백잣’으로 구분한다. 땅콩처럼 얇고 노란 껍질이 있는 것이 황잣이고, 그 껍질을 까서 뽀얀 빛을 내는 잣이 백잣이다.

국내 잣의 주생산지는 경기도 가평, 포천, 강원도 홍천 등지이다. 잣 최대 생산지는 강원도 홍천이지만, 역사적으로도 이름값으로도 잣이라 하면 단연 ‘가평 잣’을 손꼽는다. 현재 국내 잣 생산량 30% 안팎의 소출이지만 잣 유통량은 전국 80%, 생산액은 전국 최고라고 한다.

조선시대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가평의 토산품으로 잣이 언급되고 임금에게 진상될 정도이니 쉬 알 수가 있겠다. 2009년에는 산림청에서 지정한 지역 특산 임산물 명품 브랜드화 및 지적 재산권(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지리적 표시 임산물 제25호’로 등록되기도 했다.
‘가평 잣’이 오늘날과 같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70년대 초에 일어난 화전 정리 사업과 식목 사업 때문이다. ‘디지털가평문화대전’의 가평 잣 관련 내용을 보면 ‘1968년 1월 21일 김신조가 이끄는 북한 특수 부대원 31명이 파주를 거쳐 산악 지대를 이용하여 서울로 진입하게 된다. 1972년 정부는 화전민들에게 가구당 35만 원을 주고 자진 철거하고 이주하도록 권유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화전(火田)했던 자리에 경기 도유림 식목 사업이 시작되는데, 당시 낙엽송과 잣나무를 심었고 이것이 현재 가평 잣의 시작이다.

잣의 고장, 가평이라 잣 음식도 다채롭다. ‘잣 막걸리’ ‘잣국수’ ‘잣 해물짬뽕’ ‘잣 곰탕’ ‘잣죽’ 등을 맛볼 수 있다. 잣국수는 면에 잣가루를 섞고 국물에도 잣을 넣어서 고소하다. ‘잣 해물짬뽕’은 국물에 잣을 넣는데 짬뽕 특유의 얼큰한 맛에 구수함이 감돈다. ‘잣 곰탕’도 잣을 넣고 육수를 끓여낸다. 그리고 곰탕 위에 잣알을 고명으로 올린다. 가평 수제 ‘잣 막걸리’는 2018년 청와대 공식 만찬주로도 선정될 정도로 맛과 인기가 좋다.

■잣 넣은 칼국수 ‘극강의 고소함’

경기도 가평에 있는 ‘유명산자연휴양림’을 찾았다. 이곳에는 꽤 유명한 가평 잣 전문음식점이 몇몇 자리하고 있다. 그 한 집에서 ‘잣 칼국수’ ‘잣 묵밥’ 등 잣 음식과 함께 ‘잣 막걸리’를 한 병 주문한다.

잠시 기다리니 ‘우선 목을 축이고 있어라’는 듯 먼저 잣 막걸리와 묵은지 한 보시기를 내온다. 소박한 술상 한 상이 차려졌다. ‘잣 막걸리’ 한 모금으로 입맛을 다시니 코끝에서부터 잣 향기가 물씬 풍긴다. 시원하게 한 사발 들이켜고는 묵은지 한 입 씹으니, 시골 동구 밖 큰 나무 아래 평상에서 술상을 받는 느낌이다.

얼마 후 ‘잣 묵밥’이 나온다. 뽀얀 잣국물에 잣을 섞은 두부를 굵게 편으로 채 썰어 담았다. 국물 한 모금 떠먹어본다. 처음에는 은은하게 고소함이 올라오다가, 소금을 조금 넣으니 그 고소함이 확 올라온다. 소금이 잣국물을 더욱 고소하고 들큼하게 상승 시켜줘, 가히 궁극의 고소함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이다.

잣을 넣은 ‘잣 두부’ 자체도 부드럽고 구수한데, 잣국물과 어우러지니 그 고소함은 남다르다. 거기다 잘 지어낸 밥을 말아서 먹어보니 밥에 잣국물이 배어들면서 먹을수록 그 고소함은 배가가 된다. 밥알과 잣국물이 착착 달라붙을 정도로 잘 어울리는 것이다. 잣 두부도 잘 어우러져 밥알은 밥알대로, 잣 두부는 잣 두부대로 제 역할에 충실하다.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지니 가히 고소함의 극치를 이룬다.

‘잣 칼국수’도 한 젓가락 먹어본다. 면은 적당히 꼬들꼬들하면서 찰기가 돈다. 그러면서도 면발은 쉽게 끊길 정도로 부드럽다. 몇 번 씹다 보니 서서히 구수한 맛이 올라온다. 게다가 검은깨가 씹힐 때마다 고소함이 혀끝에서 정점을 찍는다.

찬으로 나온 묵은지는 새콤하면서 식감이 살아 서걱서걱 기분 좋게 씹힌다. 묵밥이나 칼국수와 천생연분처럼 어울린다. 산에서 직접 채취했다는 참나물은 향긋하니 한여름 계곡처럼 상쾌함이 좋다. 고소한 참기름에 무쳐내어 나물 향과 근사하게 조화롭다.

싱그러운 녹음의 한낮. 예로부터 불로장생의 먹을거리 또는 신선의 식품으로 알려져 있는 잣. 이 잣 음식을 먹고 배 두드리니 유명산의 신선이 된 기분이다. 고소한 맛으로 남녀노소 널리 사랑을 받아온 견과류 잣. 날이 더워지면서 입맛이 떨어질 때 기운 차리는 영양식으로도 좋기에 이즈음 별식으로 한 번 먹어봄 직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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