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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22> 경기도 연천 은거당 ‘허목 초상(許穆 肖像)’

꼿꼿하고 고아한 기품과 절제된 채색…정조가 어람했던 원본 초상일 듯
이성훈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 2022.08.07 19:24
1794년 7월, 정조는 직계 후손으로 하여금 허목(許穆)의 초상화를 가져올 것을 지시했다. 이 초상화는 허목이 생전에 학문을 연마했던 건물인 경기도 연천의 은거당에 보관되어 있었다. 허목은 17세기에 벌어진 치열한 예송 논쟁에서 남인의 영수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같은 달 26일 은거당에서 허목의 초상화를 받들고 온 일행이 동대문 밖에 이르렀다. 이때 채제공 등 남인계 인사 900여 명이 그의 초상화를 맞이하기 위해 모였다. 정조는 82세 때 허목의 모습이 재현된 허목 초상화를 어람한 뒤 도화서 화원 이명기를 시켜 그 초상화를 베껴 그리게 했다. 당시 이명기는 4점의 초상화를 새로이 제작했다.

허목 초상(許穆 肖像). 부산박물관 제공
정조 대에 남인을 이끌었던 채제공은 이 일을 ‘태평성대의 드문 사건’으로 자평했다. 남인은 17세기 내내 전개된 서인과의 격렬한 대립과 잦은 환국 과정에서 주요한 정치세력으로서의 입지를 잃었다. 정조 즉위 후 그의 탕평책과 채제공의 활약에 힘입어 다시 정권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채제공은 자파(自派)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할 목적이 있었다. 특히 서울 경기 지역 남인의 정파와 학문 계통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 계통의 핵심 인물로 허목을 지목하고 그를 숭앙했다. 그가 허목의 초상화를 국왕에게 보이는 일에 왜 이처럼 큰 의미를 두었는지가 미루어 짐작된다.

허목의 82세 초상화는 현재 몇 점이 전한다. 부산박물관 소장 ‘허목 초상’도 이 중 한 점이다. 이 초상화를 제외한 나머지는 1794년에 이명기가 베껴 그린 것이거나 이후 무명의 화가가 그것을 다시 베낀 그림들이다. 이 초상화들에서 채색이 많이 사용되고 음영 기법이 강하게 구사된 이명기의 그림 양식이 확인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보물로 지정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허목 초상’은 이명기가 제작한 것 중 하나이다.

그러나 부산박물관 소장본에서 그의 그림 양식은 확인되지 않는다. 얼굴 표현에서 채색이 극히 절제되었으며, 음영은 주름 주변에 조금씩 적용되었을 뿐이다. 하얗게 센 긴 눈썹, 살며시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수염, 정면을 응시한 날카롭고 매서운 눈 표현 등은 이 그림의 화가가 상당한 역량을 가진 이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식적 특징들로 미루어 나는 부산박물관 소장본이 허목 생전의 모습이 묘사된, 정조가 어람했던 원본의 초상화일 것이라 생각한다. 초상의 제작 시점을 알려주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내 생각은 아직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그림 속에서 꼿꼿하면서도 고아한 모습으로 묘사된 노년의 허목을 직접 본 관람객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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