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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63> 강원도 평창 올창묵

햇옥수수 쫀득한 식감 ‘올챙이국수’…젓가락 내려놓고 떠서 드시라
최원준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2022.08.02 19:40
- 옥수수 알갱이 맷돌에 갈아
- 묵 쑤어 구멍 숭숭 틀에 내리면
- 툭툭 끊긴 강원도만의 ‘올창묵’
- 올챙이 닮았다고 ‘올챙이국수’

- 멸칫국물에 묵은김치 양념 올려
-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한 입하면
- 슴슴한 자연의 맛 제대로 경험

- 강원산골 감자 메밀과 더불어
- 주린배 달래주던 가슴 아린 별미

얼마 전부터 시약산 인근의 텃밭 밭둑에 옥수수가 열리기 시작했다. 몇 번 수확해 쪄서 먹기도 하고 밥에 넣어 먹기도 했다. 달큰하면서도 쫀득쫀득한 식감이 좋아 여름철 별식으로 꽤 인기가 높은 작물이 옥수수다.
옥수수로 만든 ‘올창묵’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다. 올창묵은 맷돌에 옥수수를 갈아서 오랫동안 은근한 불에 묵처럼 쑤어 양념과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일반 묵과는 달리 국수처럼 국수틀을 통해 내려서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옥수수는 밀 쌀과 함께 세계 3대 곡물로 꼽힌다. 곡물 중에서 그 생산량이 제일 많은 곡물이기도 하다. 척박한 땅에서도 큰 노동력 없이 짧은 기간 동안 잘 자라고 수확이 많기에 흉년이 들거나 기근으로 고생하는 지역에서는 훌륭한 구황작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또 다른 곡물과 달리 복잡한 가공 과정 없이도 바로 수확해 바로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밭에서 수확한 옥수수.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산간지방을 중심으로 밭농사의 주요 작물 중 하나였다. 특히 강원도 산간 내륙지역에서는 한때 메밀과 감자 등과 더불어 부족한 쌀과 보리를 대신해 밥상을 책임지는 주식의 역할을 떠맡기도 했다.

옥수수를 잘게 빻은 옥수수쌀로 지어 먹던 ‘강냉이밥’과 말려 두었던 옥수수를 여러 잡곡과 함께 푹 끓여 먹었던 ‘강냉이범벅’, 옥수수 가루를 이용해 수제비로 만들어 먹었던 ‘강냉이 수제비’, 그리고 떡으로 쪄먹었던 ‘옥수수 설기’, ‘옥수수 보리개떡’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것.

그중 옥수수로 만든 ‘올창묵’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 중 하나로 요즘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옥수수쌀로 보릿고개를 보내다 보면 그 거친 식감에 입맛이 쉬 질리기도 했을 것이다. 이때 별식으로 해 먹었던 여름철 음식이 올창묵이었다. 올챙이처럼 생겼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올창묵은 맷돌에 옥수수를 갈아서 오랫동안 은근한 불에 묵처럼 쑤어 몇 몇 양념과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불에 쑨 묵 반죽을 틀에 넣고 굳히는 일반 묵과는 달리 국수처럼 국수틀을 통해 내려서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국수틀이라고 특별한 것은 아니다. 바가지에 구멍을 송송 뚫어 만들거나 못으로 구멍을 뚫은 사각 나무틀 밑에 함석을 받쳐서 만들어낸다. 이 올창묵 틀에 걸쭉한 묵 반죽을 내리면 물방울처럼 한두 방울씩 반죽이 떨어져 내린다.

이를 찬물 대야에 받아 식혀내면 뚝뚝 끊어진 국수 형태의 묵이 만들어지는데, 마치 올챙이처럼 생겼다 하여 ‘올챙이묵’이라 부른다. 국수틀에 내리고 식히는 방법 때문에 ‘올챙이국수’라고도 부른다.

요즘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강원도 음식으로 떠오르면서, ‘올챙이국수’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만드는 방법이나 맛 식감 등이 국수보다는 묵에 가까워, 강원도 토박이들이나 노인들은 ‘올창묵’ ‘올챙이묵’이란 이름으로 익숙한 음식이다.

이 올창묵은 옥수수가 익어가는 7월부터 9월까지가 가장 맛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내 쌀과 보리가 거의 바닥이 나면 비상용으로 두었던 옥수수나 메밀쌀로 밥을 해 먹었으며 보릿고개를 난다. 그러다 여름철이면 햇옥수수가 수확되는데, 이 싱싱한 햇옥수수로 올창묵을 만들어 먹으니 맛이 없을 수 없었겠다.

이렇게 만들어진 올창묵에 멸칫국물 육수를 넣고, 조선간장에 다진 풋고추 마늘 고춧가루 등으로 만든 양념장으로 간을 맞춘다. 그 위에 묵은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여름철에는 열무김치를 곁들이면 더욱 별미다. 요즘은 김 가루와 깨소금을 넉넉히 넣어 내기도 한다.

마을 어귀 밭에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평창에는 본격적인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평창장 진부장 대화장 봉평장 미탄장 등 장터에서 그 맛을 볼 수가 있다. 요즘은 평창 정선 영월 등 강원 내륙 산간 지역의 전통시장이나 오일장에서 제철 없이 먹을 수가 있다.

한때 평창장에는 장날이 되면 시골 아낙들이 이 올창묵을 큰 대야에 한가득 이고 와서 팔았다고 한다. 5일장이 서면 ‘올채이 한 그릇 하더래요~!’ 라며 아낙들이 손님을 불러 모은다. 그러면 장 보러 온 사람들 대부분은 무시로 이 올창묵을 한 그릇씩 먹고 가는 것이다.

평창장 한 식당에서 올창묵을 주문한다. 식당 차림표에는 ‘올챙이국수’라 표기하고 있다. 한 그릇 받아든다. 올챙이처럼 생긴 노란 면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보기에도 뚝뚝 끊어진 것이 올챙이를 닮긴 닮았다. 올창묵 위로 김치와 김 가루, 깨소금이 넉넉히 고명으로 올랐다.

그래도 명색이 국수라는데 뚝뚝 끊어지기 때문에 절대로 젓가락으로는 맛을 볼 수가 없다. 자작한 국물을 숟가락으로 휘휘 잘 저어 국물을 먼저 떠먹어본다. 은은한 멸칫국물 맛이 난다. 잘 삭힌 김칫국물 맛도 난다.

올창묵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본다. 보기보다 부드러운 식감. 전체적으로 슴슴하다. 백석 시인이 시 ‘국수’에 표현한 슴슴함이 떠오른다. 조금 싱거운 듯하지만 담백하고 개운한, 강원도의 맛, 슴슴함. 이에 더도 덜도 아니다.

강원도의 청정 자연이 한 술 입에 들어오는 느낌. 투박하면서도 건강하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정감이 넘쳐나는 맛이다. 그러나 계속해 곱씹다 보면 들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음식이 담담하고 부드러워 어린아이나 노인에게도 참 좋겠다.

올창묵은 강원도 사람의 거칠고 신산했던 삶의 일부를 느끼게 하는 음식이다. 특히 강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중년의 사람에게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추억의 음식이자 가난한 시절 지긋지긋하게 먹었을 음식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어떤 이는 자식에게 별식으로라도 올창묵 한 그릇 먹지 못하게 했다는 ‘가슴 아린 음식’이기도 하다. 이렇듯 아슴하고 헛헛한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이 올창묵이 갖는 의미는 복잡다단하기만 하다.

어쨌거나 강원도의 대표 별식으로 자리 잡은 올창묵이, 강원도를 대표하는 대단한 맛의 음식이 아닌 그저 슴슴한 음식으로라도 강원도의 토속음식으로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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