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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59> 강원도 ‘장칼국수’

장맛 얼큰한 국물에 특산품 고명… 후루룩 면발 훔치는 ‘강원도의 맛’
최원준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2022.06.07 19:27
- 식재료 산지별 조리법 각양각색
- 육수도 해물·고기·채수 다 달라

- 영동지방은 고추장 국물 베이스
- 영서지방은 된장 위주로 간 맞춰

- 속초 벌건 멸치국물엔 감자·김치
- 강릉 섭 넣고 메밀면으로 끓여내
- 정선 감자옹심이도 곁들여 별미

밀가루를 반죽해 홍두깨 등으로 넓고 얇게 민 후, 칼로 쓱쓱 썰어 만들어 내는 국수. 한 마디로 ‘칼로 썰어 만든 국수’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칼국수다. 지금은 서민의 만만한 간식거리로 전락한 음식이지만, 근대 이전에는 양반가에서도 대소사를 치를 때나 어른들 계절 음식으로 귀하게 대접받던 음식이었다.
장칼국수의 원형을 잘 지키고 있는 속초 장칼국수. 멸치로 육수를 내고 김 가루와 깻가루를 뿌렸다. 벌건 국물 속을 저어보니 감자와 잘게 썬 묵은김치 등이 보인다.
근대에 들어 제분업과 제면 공장이 발달하고 한국전쟁 이후 서구에서 밀가루를 들여오면서 이제는 여느 분식집이나 시장 좌판에서도 쉬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칼국수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의 서민에게는 더없이 고맙고 미더운 음식이 칼국수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시기 밀가루 배급으로 하루를 연명했던 시절이나 박정희 대통령 정권의 분식 장려 운동 시기에는 밥과 함께 주식으로 먹어왔던 음식이었을뿐더러, 손쉽게 조리해서 한 끼 설렁설렁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칼국수였다.

게다가 다양한 육수, 소스 양념, 고명에 따라 편하게 활용하여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또한 칼국수다. 그러기에 각 지방의 자연환경과 계절에 따라, 또 생산되는 다양한 식재료에 따라 설렁설렁 편하고 다양하게 활용하여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지역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발달한 칼국수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해안지역 고추장, 내륙은 된장

장칼국수는 강원도의 지리적 환경과 식문화 속에 발달했다. 걸쭉한 감칠맛에다 된장이나 고추장의 구수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특징이다. 강릉의 메밀섭 장칼국수에는 강원도 토종 홍합인 섭이 들어간다.
강원도 역시 강원도의 지리적 환경과 식문화 속에 발달한 칼국수가 있다. 바로 ‘장칼국수’다. 장칼국수는 말 그대로 ‘장(醬)’으로 국물 맛을 낸 칼국수’다. 우리 전통 음식의 기본이 되는 된장과 고추장 등으로 맛과 간을 내는 것이다. 그래서 칼국수의 걸쭉한 감칠맛에다 된장이나 고추장의 구수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특징이다.

강원도의 장칼국수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구분이 된다. 영동지방을 중심으로 해안지역에는 ‘고추장’을, 영서지역을 중심으로 내륙지역은 ‘된장’을 국물의 베이스로 잡는다. 거기에 입맛 따라 적당량 고추장을 섞거나 된장을 풀어 구수한 맛과 칼칼함을 더한다. 육수를 내는 재료나 방법도 제각각이다. 해물 육수를 쓰느냐 채수(菜水)나 간장을 쓰느냐, 아니면 고기 육수를 쓰느냐에 따라 그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아무래도 장칼국수가 잘 발달한 강원도 해안지역은 멸치나 홍합 등의 해물 육수를 주로 쓰는데, 해물 육수를 쓰는 곳일수록 고추장 베이스로 국물을 낸다. 그 이유는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서다. 게다가 해안지방의 장칼국수는 강원도 어부의 음식이기도 했는데, 이들의 거친 속을 달래주는 데에는 시원하고 얼큰한 음식이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영서의 내륙이나 산간마을에서는 채수에 강원도식 된장인 막장으로 국물을 내기에 구수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게다가 감자 애호박 양파 등속을 함께 넣어 조리하니 된장의 구수한 맛과 제대로 잘 어울린다. 겨울에는 묵은 김치를, 봄에는 산나물을 넉넉하게 넣고 끓여서 먹기도 한다.

집집마다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해 먹던 음식이라 정형화 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장칼국수의 특징이다. 국물은 된장이나 고추장 베이스에, 기본 육수는 해물, 채소 고기 등으로 빼는 데다, 면의 재료도 밀가루 이외에 강원도 특산의 메밀을 쓰기도 한다. 형태도 국수와 수제비, 옹심이 등을 적절하게 쓰거나 함께 쓰기도 한다.

■고명 따라 무궁무진한 변신

장칼국수에 들어가는 메인 고명에 따라 장칼국수는 또 다른 형태로 변신을 한다. 양양과 강릉지역의 섭(강원도 토종 홍합)을 넣고 끓여낸 ‘섭 장칼국수’, 속초의 명태알과 이리를 함께 넣고 끓인 ‘명란 장칼국수’, 정선의 감자옹심이를 넣은 ‘옹심이 장칼국수’, 영월의 곤드레나물을 넣은 ‘곤드레 장칼국수’, 요즘 들어서는 차돌박이로 맛과 영양소를 챙긴 고급 장칼국수도 등장하는 추세다.

이렇듯 지역에 따라 장칼국수에 들어가는 면이나 장맛, 메인 고명이 제각각 달라 그 맛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자기 입맛에 따라 취향에 맞는 장칼국수를 골라 먹는 재미 또한 쏠쏠한 음식이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즐겨 먹던 장칼국수는 강원도 사람들이 겨우내 끓여 먹던 주요한 주식 중 하나였다. 그뿐만 아니라 장마가 오거나 더운 여름철에도 땀 뻘뻘 흘리며 뜨끈하게 몸을 지지는 별식으로 사랑받아 왔다. 특히 장맛비에 하릴없이 눅눅해진 심신을 편안하게 풀어주는 음식이기도 했던 것.

장칼국수를 맛보기 위해 속초의 장칼국수 집과 강릉의 메밀섭 장칼국수 집을 찾았다. 장칼국수의 원형을 잘 지키고 있는 속초 장칼국수를 맛본다. 우선 벌건 국물이 입맛을 자극한다. 그 위로 김 가루와 깻가루를 뿌렸다. 휘휘 저어보니 감자와 잘게 썬 묵은김치 등이 보인다. 매운 고추는 따로 제공하여 입맛에 맞게 먹도록 했다. 넘침이 없는 전형적인 장칼국수의 모습이다.

국물 한 숟가락 뜬다. 크~! 뜨거운 국물이 짜르르 목을 타고 넘어가는데, 금세 속이 환하게 열린다. 걸쭉한 국물은 속을 편하게 해주고 얼큰한 고추장 맛은 얼얼하니 입안을 잔뜩 긴장시켜 준다. 몇 술 더 뜨니 멸치육수의 진하고 시원한 맛이 올라와 국물의 삼위일체를 이뤄낸다.

면을 집어 한입 가득 빨아올린다. 탄탄한 면이 후루룩 입 안으로 치고 들어온다. 쫄깃하고 탄력 있는 면발에 고추장 국물이 잘 배어, 식감이나 감칠맛 또한 더없이 좋다. 묵은김치를 올려 먹기도 하고, 방금 담근 겉절이 김치를 얹어 먹어도 어울린다. 대접 안의 감자를 건져 먹고 국물마저 후룩후룩 마시면 어느새 장칼국수 한 그릇 다 비워내는 것이다.

강릉의 메밀장 칼국수도 한 그릇 받아 든다. 예전의 강원도 장칼국수는 메밀을 사용하여 면을 만들었다. 특히 양양 강릉에는 해산물을 넣고 장칼국수를 끓여냈는데, 그중 섭을 넣고 끓여낸 장칼국수를 즐겨 먹었다. 특히 어부들이 새벽에 뱃일 나서기 전에 뜨끈하고 얼큰하게 한 그릇 먹으면서 속도 풀고 배도 든든히 했던 음식이기도 하다.

국물은 고추장 베이스에 해산물 냄새가 그릇에 가득하다. 국물은 시원하면서도 진하고 개운하다. 메밀면이라 식감도 목 넘김도 재미있다. 섭 한 마리 집어 먹는다. 동해의 바다가 왈칵 입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섭과 면을 함께 집어먹는다. 메밀면과 섭이 강원도를 대표하듯이 서로 잘 어우러진다. 한 그릇 다 비우니 영양식 한 상 받은 느낌이다. 든든하고 든든하다.

장칼국수는 강원도 사람들의 추억이 진득하게 묻어 있는 음식이다. 특히 중년에게 있어 장칼국수는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애틋한 음식으로, 유년의 기억과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다. 없이 살던 시절에는 쳐다보기도 싫었던 구황음식이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욱 애절하고 귀하게 다가오는 음식이 장칼국수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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