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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47> 전북 진안 ‘애저찜’

새끼돼지 통째 푹 곤 보양식…살점 살살 녹고, 껍질 두부처럼 부들
최원준 시인 | 2021.12.14 19:28
- 태어나자마자 죽은 돼지
- 차마 버리지 못해 먹기 시작
- 3대째 50년 넘은 ‘진안관’선
- 젖떼기 직전 1~2개월만 사용

- 가마솥에 2시간가량 삶아내
- 언뜻 보기엔 닭백숙 연상돼
- 초고추장에 콕 찍어 즐기거나
- 깻잎장아찌 등과 쌈 싸 먹어

- 뽀얀 육수는 진하고 고소
- 진안 특산물 인삼 등도 듬뿍
- 한약재 냄새 은은하게 퍼져
- 묵은지 김치찌개로 마무리

오죽하면 애저(哀猪)일까? 슬픈 돼지. 새끼를 잃은 어미의 애절함이거나, 새끼돼지의 애처로운 울음소리일 수도 있겠다. 그도 아니면 인간이 자신들의 식욕을 위해 희생시킨 새끼돼지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을 ‘애저’란 이름으로 발현시켰을 수도 있겠다.
먹기 좋게 해체한 애저찜이 끓고 있다.
새끼돼지를 먹는 것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지어진 이름 애저. 원래 이름은 새끼돼지 애저(兒猪)이다. 어미 돼지 몸 속에 배태된 태저(胎猪)나 갓 태어난 새끼를 말한다. 이 애저로 만든 음식이 애저요리이다. 애저찜 애저구이 애저회 등이 있는데, 그 중 대중화 된 음식은 애저찜이다.

진안 향토요리인 애저찜 한 상. 깨끗한 새끼돼지를 푹 고듯 오래 끓여내고 진안 특산 인삼을 비롯한 각종 약재가 들어가 있다.
애저찜은 말 그대로 돼지 태내의 새끼돼지를 푹 고듯 오랜 시간 끓여내어 먹는 음식이다. 특히 전남 광주나 전북 진안에서 보양식으로 발달한 향토음식으로 전라북도 10미(味), 광주전통음식 10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조선시대 문헌인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시의전서’ 등에 애저 요리를 기록하고 있는데, 증보산림경제에는 ‘새끼돼지의 뱃속을 여러 가지 양념으로 채운 다음 대나무 발을 건 솥에 안쳐 푹 쪄낸 후 초장에 찍어 먹는다’고 기술하고 있다.

진안은 예부터 산세가 험해 농사가 어려운 지형이라 대신 돼지를 많이 길렀다고 한다. 지금처럼 양돈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니, 어미 뱃속에서 죽었거나 태어나자마자 죽는 돼지새끼가 많았다. 이때 안타깝게 죽은 새끼돼지를 버리지 않고 식용을 하면서 시작된 음식이 애저찜이다. 먹을 것이 아쉬웠던 시절, 죽은 돼지새끼조차 쉬 버리기 힘들었을 터. 세상을 채 보기도 전에 죽은 새끼돼지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요리해 먹었던 음식이기도 하다. 또한 잔칫날 돼지를 잡다 보면 암퇘지 뱃속에 새끼가 들어있을 수도 있는데, 이때 뱃속의 새끼까지 식용을 하면서 시작된 음식문화이기도 하다.

특히 진안은 ‘마을 동제의 제물로 새끼돼지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애저를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안군 마령면 강정마을은 무병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당산제를 지낼 때, 제물로 새끼 돼지를 땅에 묻어 바쳤다고 전한다. 당산제가 끝나면 돼지를 꺼내어 요리를 해먹었는데, 이때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 ‘애저찜’이라는 것이다.

고기는 초장이나 새우젓에 찍어먹는다.
그러다가 이 애저 요리가 부유층이나 호사가들의 사치스런 허례허식의 음식 또는 남성 중심의 특별 보양식으로 변질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중인을 중심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이, 그들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 별미로 한상 차려 먹었던 음식이 애저요리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하든 저러하든 진안에서는 마을 잔치 때 식감이 부드럽고 영양가 높은 애저를 이용, 이가 안 좋은 동네 어르신에게 보양식으로 대접해 올렸다고 한다. 때문에 ‘접대한다’는 의미 또한 갖고 있는 음식이 애저찜이었다 한다.

진안에서 3대에 걸쳐 50년 넘게 애저찜을 만들어 팔고 있는 ‘진안관’에 든다. 진안관은 고 김영춘(1929년 생) 여사가 1946년 문을 열어 진안 향토요리인 애저찜을 시작한 곳이다. 지금은 며느리인 2대 김금주(74)씨가 물려받아, 3대째 가업을 이어받은 아들 이선형 씨와 함께 운영하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가게에 미리 예약해 주문한 애저찜이 상에 오른다. 커다란 돌 냄비에 한 덩이 돼지고기가 들어앉았다. “4등분한 새끼 돼지가 통째 들어가 있다”고 김금주 대표가 설명한다. 언뜻 보기에는 마치 뽀얀 국물에 닭 한 마리 들어가 있는 닭 백숙을 연상시킨다.

묵은 김치, 콩나물 등을 넣은 애저김치찌개 육수.
깨끗한 새끼돼지를 푹 고듯 오래 끓여냈는데, 이에 더해 진안 특산 인삼을 비롯한 각종 약재에 마늘 파 생강 등이 넉넉히 들어 가 있기에 보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하겠다. 이를 김 대표가 선 자리에서 직접 먹기 좋게 해체하기 시작한다. 닭 백숙을 해체하듯 돼지껍질과 살이 먹음직스럽게 분리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끼 돼지의 살이라 그런지 야들야들해 보인다. 이 고기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깻잎장아찌에 새우젓 마늘 등으로 쌈해 먹는다.

우선 국물 한 술 맛본다. 진하다. 뽀얀 국물이 입에 짝짝 달라붙듯 진하고 고소하다. 인삼과 더불어 한약재 냄새 또한 은은하게 퍼지는 것이 기분마저 건강해지는 것 같다. 껍질을 입에 넣는다. 부드럽기가 두부와 같다. 고기도 한 점 먹는다. 육질이 부드럽고 연해 입에서 살살 녹는데 마치 연한 닭고기를 먹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나름 탄력 있고 쫄깃한 식감이 독특하다. 껍질과 살을 함께 먹으니 고소한 육향과 부드러운 식감이 서로 어우러지며 조화롭다.

김 대표는 “생후 1~2개월 어미젖 떼기 직전의 새끼돼지를 사용해 애저찜을 만든다”며 “여러 가지 한약재를 섞어서 가마솥에 2시간 가량 삶아내기에 육질이 연하고 부드러워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양식”이라고 소개한다.

애저찜을 다 먹고 나면 묵은 김치와 야채를 풍성하게 넣은 김치찌개 육수를 내준다. 이 육수를 남은 애저찜에 넣고 끓여내면 애저김치찌개가 된다. 깔끔한 육수에 김치 콩나물 대파 등속을 넣고 끓여내는데 애저찜을 먹고 난 후의 입안을 얼큰하고 개운하게 씻어준다. 두어 술 떠먹으니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어미 뱃속에서 죽었거나 죽어서 태어난 새끼돼지. 세상을 채 보지도 못하고 죽은 새끼에 대한 슬픈 헌사의 이름 애저(哀猪). 개인적인 감흥으로는, 슬픈 마음에 지어진 이름이기에 음식 또한 애절하고 경건해지는 느낌이다. 지역의 향토음식에는 그 지역의 지리적 환경과 당시의 생활상, 풍습들이 반영된다. 그러하기에 향토음식이 내포하고 있는 음식문화는 한 시대, 특정 지역을 널리 관통한다. 세상사 희로애락이 진하게 묻어있는 음식이 바로 향토음식이라는 뜻이다. 진안의 애저찜 또한 진안 지역 사람들의 삶을 애절하게 반영하고 있는 독특한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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