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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곳의, 詩와 그곳 <45> 김언희 시인 ‘The 18th Letter’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2021.11.28 14:10
The 18th Letter*

김언희

거리의 유리창들은/ 삼킬 듯이 번쩍거리고/

여자들은 예뻐도 너무 예뻐서/ 토가/ 다 나오는데/

5분마다 봉기하고 5분마다/

발기하는 / 구타 유발자/ 구토 유발자/

그게 나야/ 그게 바로 나라고/ 혼밥

레벨 9/난 그 무엇의 기름도/ 그 무엇의 비명도/

짜 먹을 수 있어/ 똥 기름까지/

나는 상할/ 비위가 없어/

비도 위도 없어/

상할/ 낭심도 양심도/없어/

무한 무한리필 되는/ 스티로폼 접시 위의/정육/

면상이 필요 없는/ 거죽도 뼈마디도 필요 없는/ 순살/

그게 나라고/ 연육제에 푹 담겨/

부들부들해진 살코기/ 불판 위에서나 소리를 내 보는/

그게 나야/나라고/ 그래도

너는/ 썼지 너는/ 쓸 수 있었지/

나는 나밖에 될 수 없었다고/ 웃기지 마/

나는 나조차/ 될 수 없었어/ 나조차도/ 될 수가 없었어/

연애는 중노동/ 섹스는 막노동/ 애도 개도/ 안 낳고 안 키워/

번식 같은 사치는 누릴 짬이 없는/

여어기서 여기까지/ 5분마다/지뢰를 밟고 5분마다/ 똥을 밟아/

죽었다 깨어나도 2가/ 될 리/ 만무한/ 1+1+1+1+1+1의/ 무한/병렬/

폭탄 조끼를 입고도/ 갈 데가 없네/ 갈 데라고는/ 없어

*미국 가수 라킴(Rakim)의 노래 ‘The 18th Letter’에서

시집 ‘GG’에서

열심히 살아왔을 순이밥집은 이제 접근금지가 되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2021년 어느 늦가을.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시를 잘 쓴다는 기준은 다양하다. 현대는 물질뿐 아니라 문화 예술도 장르나 형식을 불문하고 넘쳐난다. 시 또한 평가 관점은 다르겠으나 자기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하여 끊임없이 성찰할 때 높이 평가되는 것이라 본다.

김언희 시인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당황스럽고 얼굴이 화끈해지기까지 했다. 과감한 신체의 명칭과 금기시한 외설적 어휘들이 부담스럽게 훅 덤벼드는 것 같은 착각에 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시를 쓴다면서 시인이란 이름표를 달고서도 시인이 다른 시인의 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어떤 것이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두고 시를 덮었다 펼치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야 시의 속내를 알아챈 것이다.

미국 가수 라킴(Rakim, William Michael Griffin Jr.1968~)의 노래 제목을 빌려온 ‘The 18th Letter’는 시적 화자의 눈으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리얼하게 표현한 내용이다. ‘거리의 유리창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비추며 속까지 들여다볼 만큼 ‘번쩍거’린다. 지나칠 정도로 외모지상주에 빠진 현실은 ‘너무 예뻐서’ ‘토가’ 나올 정도이며 절제력이 힘든 ‘5분’ 간격의 ‘봉기’와 ‘발기’ 현상에 ‘구토 유발자’와 ‘구타 유발자’가 된다.

현대는 개인주의 ‘혼밥’ 세대가 진행된 지 이미 오래다. 살아가는 일은 또 얼마나 치열한가, ‘똥 기름까지’ ‘짜 먹을 수’ 있을 만큼 ‘비위’도 자존심도 생각할 수 없으며 도덕이니 근본도 없다. 2연 끝행 ‘무한’의 의미는 실로 절망으로 엄습한다. 산업사회 제도 속에 무한정 ‘리필’ 가능한 ‘스티로폼 접시’와 다를 바 없는 ‘나’ 역시 ‘거죽도 뼈마디도 필요 없는’ ‘정육’ 신세다. 그것도 모자라 ‘연육제’에 담겨 제 성질을 잃은 후에야 ‘불판 위에서나 소리를 내’어 보는 ‘그게 나’인 것이다.

갈수록 나락이나 다름없는 ‘그래도’로 이어지는 접속사는 다음 4연에서는 희망이라는 싹조차 잘라내는 현실을 맞이한다. ‘너’와 ‘나’는 자신이라도 지킬 수 있는 경쟁대상으로 구분된다. ‘너’는 가능했고 ‘있었지’만/ ‘나’는 ‘될 수 없었’고 ‘나조차도’ ‘될 수가 없’는 인간존엄성의 밑바닥이다. 달콤해야 할 ‘연애’도 ‘섹스’도 노동이 되는 현실이니, 모든 과정이 당연하듯 결혼하면 아이를 낳고 물 흐르듯 살아냈던 이전 세대 이야기는 꿈 같기만 하다.

다시 돌아온 현실은 가는 곳마다 ‘지뢰’밭이며 ‘죽었다 깨어나도’ 1+1의 ‘병렬’은 ‘2가’ 되지 못하는 여유라고는 누릴 수 없는‘폭탄 조끼를 입고’있는 비참한 현실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리얼리즘이다.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시가 이토록 사실적이며 생생할 수 있을까,

언젠가 김언희 시인의 시에 대해 열띤 목소리를 내던 어느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한때 신경림 시인의 ‘농무’를 최고의 리얼리즘시라 평가했으나, 남성위주 가부장 사회를 비틀며 시로써 권력구조를 해체시킨 김언희 시인의 시야말로 리얼리즘의 상징이다.

시를 잘 쓰는 시인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 깊이를 조금 알고 보니 제대로 된 자신의 시세계를 구축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독을 감수해야 하는.

라킴의 노래 ‘The 18th Letter’ 한 구절을 인용한다. Shine Permanently only my mind‘s Concernin me. 영원히 빛나라 오직 내 정신만이 나의 관심김곳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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