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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37> 포항 구룡포 모리국수와 깔때기국수

뱃사람 ‘모디’ 모여 푸짐히 끓여 먹던 국수…이 맛 보러 전국서 온다
모디- ‘모두’의 경북사투리
최원준 | 2021.07.13 19:53
- 어부들 조업 뒤 술 한잔하며
- 얼큰하게 속 풀던 '모리국수'
- 물질한 해녀들 깔깔한 입맛
- 슴슴하게 다스린 '깔때기국수'

- 모두 허드레 생선 넣고 끓여
- 한데 모여 먹던 ‘공동체 음식’
- 두 국수, 매운 양념 유무 차이

- 면 헹굼 없이 육수에 바로 끓여
- 걸쭉하고 구수한 국물이 일품
- 사라져가던 구룡포 국수가게
- 향토음식 찾는 관광객 많아지자
- 10곳 넘게 성업하며 손님 맞아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의 국수문화는 특별한 날 먹던 잔치음식에서 밥 대신 끼니를 대신하던 주식으로, 그리고 입맛 없을 때 별식이나 간식으로 먹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적 흐름을 따라 왔다.
콩나물이 듬뿍 들어 시원한 맛이 일품인 구룡포 모리국수. 걸쭉하고 진한 육수는 해물향이 짙다.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국수는 저장이 용이하면서 언제 어디서든 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으며, 어느 음식과도 함께 조화롭게 곁들이기에 좋고, 음식이 모자랄 때는 흔쾌히 조연이 되어 양을 늘려 먹는 식재료로 그 역할을 다하기도 했다.

특히 바닥을 드러내는 쌀독을 들여다보며 식구들 끼니를 걱정하던 그 시절 어머니들에게는 기껍고도 마음 든든한 비상식량으로 사랑받기도 했다. 이 국수 하나면 김치국밥도, 시래기국밥도, 해안가의 해조류 국밥이나 생선국밥도 마법과 같이 그 양이 두세 배 늘어났던 것이다.

면이 퍼지면서 양은 늘어나고, 한 솥 둘러앉아 끓여 먹던 식구들 마음은 넉넉해지고, 비록 국수를 넣고 불린 음식이었지만 식구들 잘 먹는 모습에 어머니들 입가에 미소를 안겨주던 참 착한 구황식품이기도 했다.

■구룡포 사람들 허기 채워주던 음식

구룡포에 있는 40년 전통의 제일국수공장.
어느 곳이든 그런 추억이 하나 없겠느냐마는 포항 구룡포에도 훈훈하고 든든한 국수음식이 있다. 겨우내 매서운 겨울바다에서 조업을 하고 온 어부들이나 하루 종일 물질을 한 해녀들이 추위와 시장기를 속이기 위해 간단히 조리해 먹던 ‘모리국수’와 ‘깔때기국수’가 그것이다.

둘 다 팔고 남은 각종 허드레 생선과 해물 등을 넣고 한 솥 푹 끓여낸 국수이다. 그러나 모리국수는 국물에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풀고 콩나물을 넉넉히 넣어 시원하고 칼칼한 반면 깔때기국수는 매운 양념 없이 미역을 넣고 푹 끓여내기에 개운하고 담백하다. 그래서 모리국수는 짜디짠 해풍을 맞고 귀항한 어부들이 한 잔 술에 얼큰하게 속을 풀던 음식이고 깔때기국수는 바닷물 마시며 물질을 한 해녀들이 깔깔한 입맛을 슴슴하게 다스리기 위해 먹던 음식이다.

두 국수 모두 면을 삶아 헹구지 않고 육수에 바로 넣고 끓이기에 짙은 해물냄새에 국물이 걸쭉하고 구수하다. 대구·경북지역 국수문화의 특징인 ‘제물국수’ 방식이다. 칼국수처럼 제물에 바로 끓여낸다는 뜻이다. 때문에 제물국수는 뻑뻑하면서도 감칠맛이 제대로 올라온다. 그리고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다. 강변 마을의 어탕국수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모리국수’는 일제강점기 즈음하여 영향을 받은 음식일 것이라고 현지인들은 추정한다. 당시 구룡포는 동해 최대 규모의 어항으로 연안에서 잡히는 수산물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어업전진기지였다. 그러하기에 일본의 수산자본과 함께 일본인 인구도 한 마을을 이룰 정도였다. 당연히 음식문화 또한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터.

“요즘에는 팔고 남은 해산물을 ‘모디’ 넣어서 끓였다고 모리국수라 하고, ‘모디’ 모여 둘러앉아 함께 먹었다고 모리국수라 하는데, 옛날 어른들 말씀은 한 솥 가득 많이 끓여먹었다고 일본말 ‘모리(森. 빽빽할 삼)’을 써 모리국수라 했답니다.” ‘森’ 자를 식당 간판에 붙여놓은 초원식당 사장의 말이다.

■온갖 생선 끓여 육수 내는 모리국수

모리국수 육수에는 온갖 생선이 쓰이는데 요즘은 특히 아귀를 많이 활용한다.
여하튼 구룡포에서는 모리국수의 어원으로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경북지역의 말로 ‘모디’는 ‘모두’라는 뜻인데 이 ‘모디’가 ‘모리’로 바뀌었다는 말도 있고, 많다는 뜻의 일본말 ‘모리’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요즘은 씨알이 작은 아귀를 넣고 모리국수를 끓여내는데, 원래 제철에 흔하면서도 비린내가 적은 생선이면 상관없이 썼습니다. 한때는 명태도 쓰고 장치(벌레문치), 곰치(미거지)도 썼지요.” 까꾸네 식당 이옥순 여사의 설명이다.

이들을 큰 솥에다 한 마리씩 툭툭 잘라 넣고, 콩나물을 수북하게 올려 끓여내는데 홍합도 고명처럼 몇 알 들어가 그 시원함은 배가된다. 국수의 면은 대부분 대구의 풍국면이나 해풍에 말려 짭조름한 구룡포의 제일국수를 쓰는데 면발이 굵은 중면이나 칼국수면을 사용한다. 뱃사람들이 해안에서 더불어 끓여먹던 ‘공동체음식’이자 ‘노동음식’에서 유래했기에 한 솥씩 끓여 먹다 보니 면이 얇으면 빨리 퍼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모리국수는 어원 그대로 많이 끓여 여러 사람이 먹어야 맛있는 음식이다. 적은 양으로 조리하면 모리국수 특유의 깊고 진한 맛이 안 난다. 그래서 지금도 모리국수는 1인분씩은 안 팔고 최소 2인분 이상 주문을 받는다. 한때 4인분씩 팔았던 식당도 있었다.

■해녀들 입맛 다독이던 깔때기국수

‘깔때기국수’는 구룡포 해녀들이 4월~5월 미역을 채취할 때 끓여 먹던 음식이다. 도다리, 참가자미, 물가자미, 미역초 등의 생선으로 국물을 내고 채취한 어린 미역을 참기름으로 달달 볶아 넓게 썬 칼국수나 수제비를 뜯어 끓여낸다. 그 맛이 삼삼하고 담담하다.

깔때기국수의 어원은 ‘입맛이 깔깔할 때 한 끼 간단히 때우는 음식’인데, 포항말로 ‘수제비’를 뜻하기도 한단다. 해녀들의 깔깔한 입맛을 다독여 주는 수제비 형태의 국수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해녀들이 바닷가에서 그들의 컨디션에 따라 해 먹던 음식인 깔때기국수는 해녀들의 노령화와 해녀어업의 쇠퇴로 해녀문화와 함께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실정이다. 아쉬움이 큰 음식이기도 하다.

구룡포 모리국수집 까꾸네식당에 들어간다. 몇몇 초로의 노인이 모리국수를 앞에 두고 막걸리 한 사발 기울이고 있다. 구룡포 사람들에게 모리국수는 끼니이기도 하고 해장국이기도 하면서 해장안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모리국수를 먹을 때 막걸리 한 사발은 필수적인 의식이다. 2인분을 시켰는데 한 냄비 가득 상에 오른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팍팍 풀어 냄비 안이 붉디붉다. 냄비와 함께 국자를 하나 준다. 걸쭉한 모리국수를 아예 국자로 한 국자씩 퍼먹으라는 뜻이다. 국자로 칼국수면과 함께 통통한 콩나물을 가득 퍼서 대접에 담는다. 한 국자가 한 그릇이다.

국물 한 술 뜬다. 바다 해감내가 물씬 풍긴다. 그리고 진하고 시원한 해물 특유의 풍미가 훅 치고 올라온다. 국수를 한 입 가득 문다. 식감이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하다. 걸쭉한 국물과 함께 구수하면서도 감칠맛 또한 예사 아니다. 콩나물은 아삭하고 홍합은 방점을 찍듯 집약된 바다냄새를 풍긴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도 그 시원함은 이를 데가 없다. 마치 복날에 복달임 음식을 먹는 것 같다. 이제 모리국수는 포항 구룡포의 관광음식으로, 전국적에서 모리국수 먹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구룡포의 대표 향토음식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 흐름을 타고 구룡포에는 한때 2집밖에 없을 정도로 사라져가던 모리국숫집이 이제는 10여 집이 한 골목에 산재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지역의 향토음식이 지역을 풍성하게 살찌우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다.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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