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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28> 벌교 꼬막

전라도 벌교서 물 인심 다음으로 후한 것이 꼬막 인심이더라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21.02.09 19:59
- 비옥한 갯벌 펼쳐진 여자만서
- 바닷바람 맞고 자란 벌교 꼬막
- 굵은 씨알과 달달한 맛 일품
-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해 인기

- 피꼬막·새꼬막·참꼬막 데쳐
- 양념 무치고 전·국·탕수육까지
- ‘꼬막정식’ 한 상 입이 떡 벌어져

- 살짝 익히는 조리법 어려운 탓
- 꼬막맛이 음식솜씨 판단 기준

‘똥꼬막’ ‘털꼬막’ 그리고 ‘참꼬막’. 벌교에서 나는 꼬막 종류다. 그런데 그 이름들이 모두 재미나다. 벌교에 들어서자마자 벌교장터의 늙수그레한 노인들에게 그 꼬막 이름들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대뜸 물었다.
전남 벌교의 꼬막 한상 차림에 오른 음식들. 1 매콤새콤하게 무친 꼬막에 밥을 비빈 꼬막비빔밥 2 꼬막전 3 삶아서 짭쪼름한 양념을 얹은 양념꼬막 4 꼬막된장국.
‘똥꼬막’은 조개 뒤쪽(벌교 노인들은 ‘똥구녁’이라 했다)을 숟갈로 비틀어서 까먹는다고 똥꼬막이란다. 조개 입의 골과 골이 딱 붙어 있어서 손으로 까먹기가 어렵단다. 원래 이름은 ‘새꼬막’이다.

흔히들 시장이나 마트에 꼬막이라고 파는 대부분이 새꼬막이라 보면 된다. 껍질이 참꼬막에 비해 얇고 껍데기 위에 팬 골이 얕다. 수심 10여 m에서 서식하기에 그물로 바닥을 긁어 잡는다. 다른 꼬막에 비해 채취량이 많은 편이다.

‘털꼬막’은 흔히들 피꼬막(피조개)이라고도 불리는데, 크기도 크고 30m 이상의 깊은 수심에서 서식을 한다. 조개껍데기에 패인 골 사이에 짧은 털이 밀식하고 있어 털꼬막이라 부른다. 오래 전 이 피꼬막은 포장마차의 단골 횟감으로 인기가 높았다.

‘참꼬막’은 ‘꼬막 맛이 제대로’라서 참꼬막이다. 옛날에는 갯벌 가장 얕은 곳에서 쉬 잡히면서도 맛도 좋아 늘 밥상에 올려놓고 먹어오던 꼬막, 벌교 사람들에게는 오래도록 꼬막이란 이름으로 가까이 있던 ‘참’꼬막이어서 그렇게 부른단다.

■꼬막 하면 벌교, 벌교 하면 꼬막

벌교의 ‘꼬막거리’에 갓 잡은 꼬막이 가득가득 쌓여있다.
이렇게 ‘꼬막’ 이름에 얽힌 이야기만 들어도, ‘꼬막’이라는 식재료를 대하는 벌교사람들의 살뜰한 애정과 넉넉한 해학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겠다. 그렇기에 언젠가부터 ‘꼬막’하면 ‘벌교’가 자동으로 수식어처럼 따라붙는다. ‘벌교’가 ‘꼬막’이고 ‘꼬막’이 ‘벌교’로, 벌교와 꼬막은 거의 동의어 개념으로 읽히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언제부터 벌교가 꼬막 산지가 됐을까? 벌교꼬막은 순천, 보성, 고흥의 갯벌, ‘여자만’에서 채취를 한다. 여자만 갯벌은 입자가 미세하고 부드러운 개흙으로 이뤄져 있어 비옥하고 그 영양성분이 남다르다. 해서 꼬막의 살 또한 달고 맛있다. 이 맛있는 여자만의 꼬막이 교통요충지인 벌교에 모여 전국으로 수급되면서 벌교가 자연스레 ‘꼬막의 산지’가 된 것이다.

특히 ‘꼬막섬’이라 불리는 여자만의 ‘장도’는 오래전부터 꼬막으로 삶을 이어왔던 지역이다. 한때 벌교 꼬막의 80%를 장도 갯벌에서 채취했을 정도다. 지금도 제사상에 올리는 참꼬막(벌교에서는 ‘제사꼬막’이라 부르기도 한다)의 대부분은 장도에서 생산한 것이다.

참꼬막은 한겨울 수심 얕은 갯벌에서, ‘뻘배’를 탄 여인들이 온종일 갯벌을 긁어 채취하는 고된 노동의 결과물이다. 혹한에서도 두껍고 단단한 껍데기 속 든든하게 살을 찌운 참꼬막. 그 혹한을 견디며 힘겹게 거둬들인 결실이 이 참꼬막인 것이다.

그래서 이즈음에 가장 맛있는 꼬막이 참꼬막이다. 매서운 바다 날씨를 오롯이 견디며 맛이 들었기에 그렇다. 벌교에서 제일 오래 꼬막식당을 운영해온 국일식당 하옥심(74) 대표는 “참꼬막은 10월부터 4월까지가 맛이 좋다”며 “추석 전후부터 진달래 피고 질 때까지”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벌교 사람들은 꼬막 중에서도 겨울 참꼬막을 가장 좋아하고 즐겨먹는다. 겨울에 살이 오르기에 식감이 쫄깃하고 짭조름하면서도 맛이 진해 그렇다. 뿐만 아니라 임금의 수라상 8진미 중 그 1품으로 진상될 정도로 참꼬막의 맛이 출중했기에 더 선호했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예전의 벌교사람들이 이 꼬막으로 보릿고개 시절 끼니 대용으로, 막걸리 한잔할 때는 술안주로, 주막에서 국밥 한 그릇 먹기 전 기다리기 무료할 때 심심풀이로도 먹어왔던 것 또한 바로 이 꼬막이었다.

‘벌교에서 물 인심 다음으로 후한 것이 꼬막인심이었고 벌교 5일장을 넘나드는 보따리 장꾼들은 장터거리 차일 밑에서 한 됫박 막걸리에 꼬막 한 사발 까는 것을 큰 낙으로 즐겼다.’ 벌교를 주 무대로 한 조정래 작가의 장편 대하소설 ‘태백산맥’ 속 내용이다.

■‘태백산맥’ 곳곳에도 꼬막이

꼬막은 자체가 신선해야 맛있기도 하지만 꼬막을 익히는 방법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의 맛을 낸다. 집집마다 꼬막 삶는 방법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벌교에서는 집안 여인네의 음식 솜씨를 꼬막 맛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그만큼 꼬막을 조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겠고, 꼬막이 벌교사람들 밥상에 얼마나 중요한 식재료이며 ‘소울 푸드’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꼬막을 익혀내는 것만 해도 그렇다. 보성의 소설가 정형남은 ‘꼬막은 삶는 게 아니고 데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데치듯 살짝 익혀내는 것이 벌교 주민의 조리방식이라는 것.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에서 무당 소화가 꼬막을 익히는 모습을 보자. ‘감자나 고구마를 삶듯 해버리면 꼬막은 무치나 마나가 된다. 시금치를 데쳐내듯 핏기는 가시고 간기는 그대로 남아 있게 슬쩍 삶아내야 한다’며 슬쩍 데쳐서 ‘알맞게 잘 삶아진 꼬막은 껍질을 까면 몸체가 하나도 줄어들지 않고, 물기가 반드르르 돌게 마련’이라 쓰고 있다.

그러면서 ‘양념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도 꼬막은 훌륭한 반찬 노릇을 했다. 간간하고,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고 기술한다. 그렇게 꼬막은 벌교 사람들에게는 벌교음식의 원형으로 인식되고 있다.

기실 ‘꼬막’의 원래 표준어는 ‘고막’이었다. 그러나 조정래 작가가 ‘태백산맥’에서 벌교 사람들이 쓰는 ‘꼬막’으로 굳이 표기하면서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고, 급기야 표준어로까지 등재가 된다. 이렇듯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속에는 꼬막으로 써내려간 벌교 사람들의 음식문화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현재 벌교는 꼬막의 산지답게 읍내 식당의 상당수가 꼬막음식을 파는 집이다. 삶은 통꼬막, 꼬막회무침, 양념꼬막, 꼬막전, 꼬막된장국, 꼬막탕수육… 등 꼬막으로 다양한 요리를 내는 ‘꼬막정식’이 주 메뉴다.

50여 년 꼬막음식을 조리해온 꼬막전문식당에 앉아 ‘참꼬막정식’과 ‘새꼬막정식’을 맛본다. 참꼬막은 말 그대로 ‘간간하고,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다’. 새꼬막은 부드럽고 담담하면서 은근한 감칠맛이 있다.

시장하던 터라 허겁지겁 통꼬막을 까서 먹는데, 주인 할머니가 타박을 준다. “뻘 많은 놈은 먹지 마씨요. 뻘 많이 묵은 놈은 아픈 놈이니께.” “택시 기사님이 깨끗한 뻘에서 잡기 땜에 먹어도 된다던데요.” “그래도, 좋은 놈도 많은디 머땜시 뻘 묵은 놈을 먹어싸~!” 지청구를 들어도 기분이 흔쾌하다. 식당을 나서며 또 들르겠다니까 “여름에는 오지 마씨요~” 한다. 6~8월에는 산란철이라 맛이 덜하단다. “알배면 미끈미끈허고 알도 잘아 못쓰요.” 주인장 얼굴의 깊은 주름이 여자만 노을처럼 곱디고운 저녁이다.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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